밑에 조레스 글 읽는 갤러가 궁금해 하는 부분과도 맞닿는 내용이라 생각나서 간단하게 써봄.
마르크스 이론의 여러 내용 중 흔히 '아 킹직히 이건 틀렸지'라고 말해도, 심지어 좌파 내에서도 절반은 고개를 주억거릴 내용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프롤레타리아의 절대적 빈곤화 경향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프롤레타리아는 빈곤화된다고 보았는데, 대체로 사람들이 아 상대적 빈곤화는 맞는데 절대적 빈곤화는 아닌 듯 뭐 이렇게들 많이 얘기함.
근데 내가 봤을 때 이건 오류임. 절대적 빈곤화라는 개념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
절대적 빈곤화라고 하면 사람들이 쌀이 없어서 배를 곯고 집이 없어서 이슬을 맞는 뭐 이런 걸 생각한단 말이지. 그래서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 계급도 밥 굶을 일은 없어지고 옷도 좋은 거 입고 다니니까 절대적 빈곤화 경향은 틀렸다고 얘기하는 거란 말야.
이런 인식의 문제는 결국 사용가치와 가치를 구분 못한다는 데 있음. 먹을 거 종류가 늘어나고 옷이 좋아지는 건 사용가치가 늘어나는 거임. 핸드폰이 생기고 자동차가 생기는 것도 사용가치가 늘어나는 거임. 마르크스는 이미 사용가치의 증가는 인류사의 위대한 과업이라고 얘기한 바 있고, 문명이 발전하면 당연히 사용가치는 증가하는 거라고 믿었음.
근데 가치는 다르다 이 말이야. 예를 들어 하루 8시간 일하는 노동자 1만 명이 투입되어 1만 개의 스마트폰이 나온다 치자. 그럼 스마트폰 1개가 품고 있는 가치는 8노동시간임. 근데 어떤 방식으로든 같은 투입에 2만 개의 스마트폰이 나오면 스마트폰 1개의 가치가 4노동시간으로 떨어짐. 즉 사용가치와 가치의 양은 정비례하지 않고, 특정 조건에서는 오히려 반비례할 수도 있음. 노동자가 가진 사용가치가 증가하는 동시에 분배받는 가치가 줄어드는 게 가능하단 소리임.
따라서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의 빈곤화 경향이 가진 의미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분배되는 가치가 줄어드는 걸 말한다고 봐야 함. 절대적 빈곤화는 예를 들어 인류 전체 총 1조 노동시간 중 3천억 노동시간이 프롤레타리아의 몫이던 것이 2천억이 되는 것이고, 상대적 빈곤화는 1조 노동시간이 2조 노동시간으로 늘 때 몫이 4천억이 되는 것임. 좀 이해가 되는가?
이걸 캐치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프롤레타리아가 적수공권만 남게 되고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프롤레타리아를 위해 프롤레타리아를 비참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거나, 시대가 바뀌었으니 다른 방식을 모색하자는 개량주의자가 되는 것임.
마지막으로,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의 주역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빈곤화에서 찾지도 않았음.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의 주역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히려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의 도구로서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임. 프롤레타리아가 강하고 성숙하며 자신감 있는 계급으로서 혁명을 선도한다는 개념이 없으면 이상한 룸펜 계층의 비참함을 갖다 대며 빈곤 포르노 찍는 애들이 되기 십상임.
항상 글 마무리가 애매하다. 끝.
마르크스 이론의 여러 내용 중 흔히 '아 킹직히 이건 틀렸지'라고 말해도, 심지어 좌파 내에서도 절반은 고개를 주억거릴 내용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프롤레타리아의 절대적 빈곤화 경향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프롤레타리아는 빈곤화된다고 보았는데, 대체로 사람들이 아 상대적 빈곤화는 맞는데 절대적 빈곤화는 아닌 듯 뭐 이렇게들 많이 얘기함.
근데 내가 봤을 때 이건 오류임. 절대적 빈곤화라는 개념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
절대적 빈곤화라고 하면 사람들이 쌀이 없어서 배를 곯고 집이 없어서 이슬을 맞는 뭐 이런 걸 생각한단 말이지. 그래서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 계급도 밥 굶을 일은 없어지고 옷도 좋은 거 입고 다니니까 절대적 빈곤화 경향은 틀렸다고 얘기하는 거란 말야.
이런 인식의 문제는 결국 사용가치와 가치를 구분 못한다는 데 있음. 먹을 거 종류가 늘어나고 옷이 좋아지는 건 사용가치가 늘어나는 거임. 핸드폰이 생기고 자동차가 생기는 것도 사용가치가 늘어나는 거임. 마르크스는 이미 사용가치의 증가는 인류사의 위대한 과업이라고 얘기한 바 있고, 문명이 발전하면 당연히 사용가치는 증가하는 거라고 믿었음.
근데 가치는 다르다 이 말이야. 예를 들어 하루 8시간 일하는 노동자 1만 명이 투입되어 1만 개의 스마트폰이 나온다 치자. 그럼 스마트폰 1개가 품고 있는 가치는 8노동시간임. 근데 어떤 방식으로든 같은 투입에 2만 개의 스마트폰이 나오면 스마트폰 1개의 가치가 4노동시간으로 떨어짐. 즉 사용가치와 가치의 양은 정비례하지 않고, 특정 조건에서는 오히려 반비례할 수도 있음. 노동자가 가진 사용가치가 증가하는 동시에 분배받는 가치가 줄어드는 게 가능하단 소리임.
따라서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의 빈곤화 경향이 가진 의미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분배되는 가치가 줄어드는 걸 말한다고 봐야 함. 절대적 빈곤화는 예를 들어 인류 전체 총 1조 노동시간 중 3천억 노동시간이 프롤레타리아의 몫이던 것이 2천억이 되는 것이고, 상대적 빈곤화는 1조 노동시간이 2조 노동시간으로 늘 때 몫이 4천억이 되는 것임. 좀 이해가 되는가?
이걸 캐치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프롤레타리아가 적수공권만 남게 되고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프롤레타리아를 위해 프롤레타리아를 비참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거나, 시대가 바뀌었으니 다른 방식을 모색하자는 개량주의자가 되는 것임.
마지막으로,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의 주역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빈곤화에서 찾지도 않았음.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의 주역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히려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의 도구로서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임. 프롤레타리아가 강하고 성숙하며 자신감 있는 계급으로서 혁명을 선도한다는 개념이 없으면 이상한 룸펜 계층의 비참함을 갖다 대며 빈곤 포르노 찍는 애들이 되기 십상임.
항상 글 마무리가 애매하다. 끝.
그렇게 해석할수도 있을듯. 하지만 그렇게 안 해석해온 이유는 있는거지. 맑스엥겔스가 절대적 궁핍화에 대해 글쓴분처럼 가치 차원에서 라고 말한적이 없어서. 그리고 여러 저작들을 보면 확실하게 '사용가치 측면에서 절대적 궁핍' 묘사가 너무 많아서그래. 영국노동자계급의상태, 이스트엔드이야기, 자본론에 농업노동자 이야기, 공장감독관 보고 인용한것들 등등등... 내가 강조할 필요도없이 다들 잘 아는 부분들. 해석처럼 의도한거였으면 그 숱한 절대적 빈곤 서술에 오해하지말라고 각주를 안 달았을리가없지. 결론 부분에는 동의하는데 그럴거면 차라리 자본주의의 그동안의 강해진 적응 진화나 혁명의 실패 등 외부적 요인을 이야기하는게 낫지 않을까
글쎄... 내가 봤을 땐 "직접 언급한 적이 없으니까"는 좀 약한 이유 같음. 애초에 마르크스가 어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때는 이론적 논리 전개와 추상수준이 달라서, 그걸 이론 이해의 단초로 쓰면 오류가 많이 생김. 예를 들어 <이른바 시초축적> 장 같은 것이 그렇지. 이 부분은 마르크스가 서한에서 자기 이론의 전체 체계와 좀 동떨어져 있다고 확인한
바도 있지. "각주를 안 달았을 리가 없다"는 것도 추정에 불과한 거 아닌가? 애초에 마르크스의 저작이 경전도 아니고 언급되지 않은 바는 틀린 걸로 간주한다는 건 조금... 마르크스의 방법론과 이론적 정합성을 고려할 때 유일하게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보는데?
상대적, 절대적 잉여가치 착취의 증가와 관련이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