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은 분노로 움직이지만 적어도 무언가 만족 시켜줄 방법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만족을 시켜줄 방법이 전혀 없다. 


파시즘은 민족의 국가의 영광을 강조하면 사람들이 따를 거지만


이들에게 민족과 국가의 영광을 강조한다고 잘 따라오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자신들의 일시적인 포퓰리즘적 요구 사항을 들어주면 일시적으로 만족하겠지만, 


이내 다른 요구... 심지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모순되는거라고 해도 요구할 것이다. 


그저 감정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굳이 인터넷 용어를 써서 비유하면, 파시즘은 중2병에 가깝다면, 대안우파는 쿨병환자에 가깝다.


파시즘은 그들의 환상을 채워줄 무언가를 제시하면 모두 열광했지만


대안우파는 그런 환상으로 자신들을 채우기에는 너무 많이 배웠다. 대신 그저 1회성으로 자신들의 감정적 욕구를 채워줄 무언가를 요구할 뿐이다.


그게 좌파적 논제이건 우파적 논제이건 말이다.



복지의 부재로 불의한 사태를 보면 바로 복지 국가 추종자로 돌변하며, 외국에서 무슨 일이 생겨서 자국에 뭔 일이 생길거 같으면 국수주의자로 변했다가, 노조들이 무언가를 (보통은 자신들이 쉬이 쥘 수 없는 것) 요구를 하는거 보면 바로 자유의지주의자로 변하는 등의 변덕이 대안 우파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 내에서 이들의 불만을 해소 시킬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런 변덕을 모두 만족시킨다고?


대신 이들은 파시즘처럼 실질적인 행동력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환싱이 아니라 감정을 쫒는것이기 때문에 억압적인 요인만 있다면 이들은 바로 침묵할 것이다. 아마 대안 우파에 대한 기득권의 대응은 타협보다는 폭력과 대립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