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프주의자들은 결국 아무리 찾아도 자본주의를 소련 안에서 발견하지 못하자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군사적으로 경쟁하므로' 소련은 자본주의이자 제국주의라는 주장까지 하게 되어버렸다.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이다!  토니 클리프가 쓴 '소련의 국가자본주의'(한국에서는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라는 제목으로 출판됨)라는 소책자에서 내리는 결론이 이것이며, 남한과 영국을 포함해 현대의 클리프주의 조직들은 이 소책자를 자신들의 소련론의 기초라고 홍보한다.

레닌주의자이자 트로츠키주의자이며 혁명가라고 자칭하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권력을 쟁취할 전망을 가지고 있기는 한걸까? 적을 상대할 때 필요한 무력은 자신들의 의향이 아니라 예상되는 적들의 무력에 따른다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자기들이 소련을 운영하면 제국주의 군대의 미사일과 포탄의 위력은 약해지고, 전투폭격기와 항모전단은 느려질 꺼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들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에서는 '군사적 경쟁'의 필요가 없어질까? 오히려 제국주의 국가들은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의 생존에 필수적인 세계 혁명 노선을 스탈린의 계급 협조 노선보다 더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더 강력한 도발을 행하지 않을까?

소련에 실업이 있었느니 자본 축적이 있었느니 하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무직인 인간은 어느 시대에서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무직인 인간은 '노동예비군'을 형성하고 노동력시장에서 임금을 하락시킨다. 소련에서 노동력 시장 같은 것은 없었다. 소련의 '해고'는 기업의 비용절감의 수단이 아니라 국가가 거의 유일한 고용주인 나라에서 굶어죽으라는 정치적 행동이다. 소련의 '실업'은 명목임금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고 실질임금을 하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승'시켰다. 소비재는 수요에 따라서가 아니라 관료집단의 계획에 따라 생산되어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판매되었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소비재 부족으로 인해 돈이 있어도 사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직자의 증가는 고용된 사람들 각각에겐 소비재를 더 많이 돌아가게 한다.

다시 클리프주의자들이 소련을 운영할 경우를 상상해보자(소련 인민에게는 부디 용서를 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하므로, 당연히 노동자들의 직업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려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전 직장을 그만두고 다음 직장을 찾으려 할 때 반드시 조금의 시차도 없이 바로 다음 직장으로 옮길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인간의 능력과 사회에서 필요한 노동력에 대한 고도의 데이터베이스와 체계를 구축해 자본주의에서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원활하게 직업을 옮기는 것은 가능하고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온갖 마찰과 시행착오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일시적으로 노동력을 투입할 곳을 찾을 수 없어서 그 노동자들을 복지로만 먹여살려야 하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실업자'들을 보고 자본주의의 증거라고 할 것인가?  

'노동력에 대한 생산 수단의 비율이 늘어났으므로' 소련에 '자본 축적'이 있었다는 주장에서는 광기마저 느껴진다. 이들에게 사회주의란 도대체 뭔가? 생산수단의 엄청난 규모의 자동화가 아니란 말인가? 인간의 육체노동에서의 해방과 생산력의 증대를 자동화 없이 상상할 수 있는가? 노동력에 비해 생산수단의 비율을 지금의 백배, 천배, 수억배로 늘리는 게 아니라 현재의 초라한 수준의 자동화와 생산력 규모에 영원히 머무르는 게 그들의 사회주의인가?

이것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증가이고 소련에서 '이윤율 저하'가 일어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소련 기업들의 '이윤'은 기업간의 경쟁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비율을 생산가격에 더해서 결정되었다는 답으로 충분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클리프주의자들의 것을 포함해 온갖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의 '논리'를 걷어내면 남는 심리는 결국 이것이다:
자본주의는 악하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악하다. 그러므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 국가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라고! 농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