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마르크스주의의 두 딸들인 사회민주노동당과 공산당(이후 좌파당으로 명칭을 바꿨다)는 자매들 답게 사이가 아주 나빴다.

1990년 북구 경제위기 당시, 사민당은 급격하게 제3의 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었고, 좌파당은 그 틈을 타 강력한 국유화를 통한 고용보장을 주장하며 지지율이 떡상하고있었다.

그 둘은 전혀 사이가 좋지 못했고, 좌파당이 떡상했음에도 제 3의 길을 가는 사민당과의 연정을 반대하여 우파연립에게 정권을 내주며 꼬셔하는 머리채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솔찍히 혁사인 나는 좌파당이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덕에 떡상중이던 몸값을 더 불렸기 때문이다.)

이시기를 스웨덴에서는 '장미전쟁'이라고 불렀다. 빡친 스웨덴노총이 "씨발 사회적 합의고 뭐고 좌파당이랑 손잡고 투쟁이다 개새끼들아"를 외쳐서 좌익들 사이의 붉은 내전이라고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 맑시즘의 두 딸들 앞에, 아빠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원나잇으로 낳은 사생아가 등장했다. 바로 '신좌파'라는 녀석이었다.

1999년, 좌파당 내 신좌파들은 보수당 일부와 스웨덴을 뒤집어엎어놓을 지면 토론을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기본소득 논쟁'이었다. 좌파들의 개싸움 속에서 실망하기 시작한 스웨덴의 진보성향 유권자들은 기본소득 논의를 복지국가의 보완책으로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가 되면 인구의 절반이 기본소득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충격적 결과가 나오기까지 하였다.

맑시즘의 두 딸들은 이 사생아가 둘의 권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충 경제위기가 정리되자, 두 딸들은 겁없이 언니들의 위상을 노리는 신좌파를 두드려패기 시작했다.

먼저 포문을 연 건 역시 노조였다. 1999년, 스웨덴 노총의 위원장 군나르는 '기본소득은 보수당과 신좌파들의 사악한 신성동맹'이라는 논지로 성명을 발표했다. 2000년도에 들어서자 좌파당 내의 신좌파 파벌들이 당권을 잡았고, 당원들은 신좌파 파벌들의 계파정치를 비난하며 후드려까기를 반복, 결국 좌파당 내 신좌파 지도부는 '페미니스트 인터랙티브 당'과 녹색당으로 분화되었다. 어디에선가 많이 본 광경이다.

언론을 꽉잡은 사회민주당도 기본소득의 허구성에 대해 연신 맹폭을 가했으며, 여러 논란이 합쳐져 결국 적적록 동맹은 적적/록으로 쪼개졌다.

대중들 또한 신좌파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제가 스웨덴 복지체제를 완전히 갈아엎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 스웨덴은 세계에서 기본소득제에 대한 국민여론이 가장 안좋은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순위는 매년 바뀌지만 1-2-3위가 다 노르딕 국가들이다.)

페미니스트 인터랙티브는 스리슬쩍 강령에서 기본소득을 빼냈고, 이들 중 기본소득에 꽂힌 운동가들은 스웨덴 기본소득당을 창당했지만, 한국 기본소득당보다도 지지세가 못하다.

맏언니 사민노당은 신좌파들을 때리다 보니 좌파당이 어느새 더 커져있고, 자신은 집권을 못할거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스웨덴 사민노당은 스리슬쩍 '한시적 기본소득실험'을 주장하며 녹색당과 연정을 하는데, 집권후에는 보수당 반대때문에 못하겠다며 '더불어민주당'했다.


이것이 스웨덴 기본소득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