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위대한 운동권 전사를 만드는 기계를 허투루 날려버렸던 나는 (운동권 프랑켄슈타인 편 참조) 이제 이 세계에 실망하고 새로운 세계선으로 향할 기계를 만들어 실험하고 있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물어보지 마라, 문과생들인 당신들은 어자피 설명해주어도 모른다.


아직 내 기계는 프로토타입이었기에, 다른 세계선의 로갤에 접속할 수준의 전파만이 세계관의 벽을 뚫을 수 있었다.


한 두 곳의 세계선에서는 로갤이 폐쇄되어있거나, 아예 없었다. 어떤 곳에서는 정말 진지하게 '동지들 바리케이드로 모입시다. 민주공화국을 수호하라!'라는 절절한 모멘텀 고닉의 호소글이나, '이번 긴급조치엔 또 몇명 탈갤(물리)함?', 혹은 '고닉 <민족민주일꾼> 동지의 분신을 헛되히 말라!', '주딱 <연쇄혁명> 몇주전 계엄령 이후부터 왜 갤관리 안함?' 같은 진보당 고닉의 글이 보이는 안타까운 세계선도 있었다. 저번 미국 대선 시간대에 '트럼프 당선 좆되노'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어떤 온라인 노이즈도 없이 방사능의 가이거계수기만 탁탁거리는 곳도 있었다.


물론 몇 개의 지구에서는 로갤에 너무 많은 접속자가 잡혀서 접속조차 할 수 없는 흐뭇한 세계선도 있었다. 그곳의 로붕이들이 동접이 터지기 전 조금씩 흘리는 짤막한 전파들은 '집권 공산당 한심하네', '아나키스트 코뮌이 항상 망하는 EU' '후타바혁명렬사공원 영구차단 요청', '샌더스 개량주의자 반대한다.' '갤주님 손자가 스딸린주의자 실화냐' 같은 배부른 불평들을 담고 있어 나를 미소짓게 하였다.(그중 한 곳은 진보너머와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인민전선이 온라인 연속혁명에 성공한 듯 보여 잠시 모든 의지를 잃기도 했다.)


그러나 단 한곳, 지구-942의 로갤은 기본적으로 지구-1의 로갤과 차이가 별로 없었다. 아니, 그냥 없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곳에 올라오는 글은 지구-1의 로갤의 글과 토시 하나도 틀리지 않고 같았다.


두 세계선이 똑같을리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이 지구-942에 더더욱 관심을 가졌다. 나는 항상 하듯 전파기계에 밤낮없이 매달려 차이점을 찾으려 하였다. 두 세계선에 갤에 똑같은 질문글을 쓰느라, 내 손가락은 바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이 '악의 축' 국가들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한다는 신문기사 펌이 올라오자, 첫 차이가 등장했다. 그 글의 추천수가 지구-1의 로갤보다 조금 더 높은것이였다.
'왜 이 글엔 추전이 높음?'
내가 덧글로 적자
'로갤공산당 고닉추분배위원회'이라는 대댓글 하나만 딱 달릴 뿐이었다.


나는 이 세계선 로갤의 '악의 축' 글을 몇번이고 뒤졌지만, 추천이 더 높은 것 빼곤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결국, 나는 실마리를 찾았다. '악의 축'으로 묘사된 세 국가가 모두 '붉은 색'으로 그려진 지도가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1의 로갤에는 이란은 초록색으로 되어있었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나는 차이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구-942 로갤에서 나온 이란 관련 신문의 언급은 지구-1과 똑같이
'경제제재'
'이란혁명'
'무역금지로 인한 빈곤'
'이란 지도자 미국과 언쟁'
'핵무기 수출'
'국제적 봉쇄'
'악당 국가, 테러국가'
등으로 천편일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계선은 단지 이란의 지도가 붉은색인 것 빼고는 모든게 같은 세계선인 것일까? 나로써는 알 수가 없었다.
==================================================================
그 모든 사태가 일어나던 와중에, 지구-942에 위치한 인천의 한 음습한 사무실에서는 한 무리의 애국 투사들이 모여 이란인민공화국 동지들의 반미 반제 반봉건 투쟁과 언론의 이란에 대한 편파적 보도와 맹공이 남한 정세와 통일 전선에 끼친 영향에 대해 열심히 학습하고 토론하고 있었다. 이번 사태로 조직적 이득을 보는 것은 그들이었다. 항상 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