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비유인가요? 미국에 비하면 아무래도 체급과 포텐셜이 떨어지는 나란데 미국 이기려고 우주경쟁 군비경쟁 하다가 망했다고 하던데 일견 그럴듯해 보이기는 해서요
댓글 13
절대적인 체급 차이가 있었던 건 맞음. 허나 소련 붕괴의 결정적 요인은 소비에트 주권과 노동자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노동자와 인민의 생산 계획 수립에 있어서 자발적 참여를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관료주의와 수정주의 책동을 막지 못한 소련 지도부의 책임이라고 봄
실존주의자(rosa21c)2020-12-22 08:47
답글
소련 지도부 내에 실재했던 다양한 경향과(베리야/스탈린/흐루쇼프) 급박했던 정세 변화라는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간과하는 것. 30년대 말과 45년 이후 재개되는 관료주의 경향과의 투쟁 속에서 수정주의화를 막고자 노력했음에도 변수들로 인해 가로막힌 점을 감안해야. - dc App
구성주의자(mars1905)2020-12-22 09:21
답글
소련공산당의 수정주의화는 이념적 맹아가 제대로 싹을 틔우기 전에 전쟁이 발발했고, “아래로부터” 붓물처럼 쏟아졌던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이 중도반단으로 되어 차세대 공산당원들이 제대로 육성되지 못한 점에 있었음. - dc App
구성주의자(mars1905)2020-12-22 09:35
답글
http://lodong.org/wp/archives/12907 “단체계약 체결에 바쳐진 회의에는 전체근무자의 90% 이상이 참가하였으며, 8십8만 명 이상의 근로자들이 그 회의에서 발언하였고, 70만 이상의 제안이 제출되었다. 제안의 반은 노동조직의 개선, 노동량이 많이 드는 노동의 기계화, 기술적 과정의 완성, 안전기술의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제출된 제안들은 대부분 실현되었고, 약 20만의 제안은 단체계약에 포함되었으며, 그의 실현은 거대한 효과를 가져왔다.” - dc App
구성주의자(mars1905)2020-12-22 09:44
답글
전국적 생산 계획 수립에 있어 중대한 조건인 위와 같은 사안들이 토의를 통해 이뤄졌으며 자발적 참여는 엄밀히 말해 실재하였음. 이전 사회의 각인의 폐절은 고타강령비판에서 밝히듯 지고한 과정이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봄. 따라서 노동자 민주주의의 부재가 수정주의화와 반혁명의 결정 원인이 될 수 없음. - dc App
구성주의자(mars1905)2020-12-22 09:48
답글
1. 급박한 정세가 영향을 끼쳤다는 거는 부정한 적 없음(이 댓글 말고 다른 여러 댓글들을 보면 알 것). 따라서 첫번째 대댓글의 내용엔 동의함
2. 자발적 참여가 있었다는 사실도 부정한 적 없음. 허나 그것이 노동자민주주의의 구체적 내용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부정적임
실존주의자(rosa21c)2020-12-22 11:00
답글
3. 내가 반혁명을 지도부 책임으로 물린것은 그 모든 '비상상황들(내전, 산업 파괴, 제국주의 포위공세 등)'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
실존주의자(rosa21c)2020-12-22 11:04
답글
2. 자발적 참여 자체로만 놓고 보면 그렇지만,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됨. 토론과 전국적 회의를 통한 의사 반영 구조가 그러함 - dc App
구성주의자(mars1905)2020-12-22 11:06
답글
3. 방향성은 존재했으되 추진력이 45년 이후 사점에 이르러 약화되었음. 군사교육을 이수한 선진적 노동자나, 청년조직 맹원들이 전시에 대거 사망하여 반관료주의 투쟁이 한층 더 어렵게 되었음. - dc App
구성주의자(mars1905)2020-12-22 11:22
답글
여러모로 참 안타깝구만
실존주의자(rosa21c)2020-12-22 13:24
그 비유는 맞지 않음. 냉전 시작 당시 미국에 의해 경쟁으로 내몰린 동네가 소련. 2차대전때 출혈을 많이 강요당한 쪽이었고 수세적 위치에 놓여 있었음. - dc App
구성주의자(mars1905)2020-12-22 09:10
빛련에 비하면 미국은 뱁새긴 하지
익명(156.146)2020-12-22 11:08
시작지점 자체가 빈곤의 제정 러시아였고 2머전도 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경쟁 거의 다 이겨먹은 거 생각해보면 대단하다 봐야지
절대적인 체급 차이가 있었던 건 맞음. 허나 소련 붕괴의 결정적 요인은 소비에트 주권과 노동자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노동자와 인민의 생산 계획 수립에 있어서 자발적 참여를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관료주의와 수정주의 책동을 막지 못한 소련 지도부의 책임이라고 봄
소련 지도부 내에 실재했던 다양한 경향과(베리야/스탈린/흐루쇼프) 급박했던 정세 변화라는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간과하는 것. 30년대 말과 45년 이후 재개되는 관료주의 경향과의 투쟁 속에서 수정주의화를 막고자 노력했음에도 변수들로 인해 가로막힌 점을 감안해야. - dc App
소련공산당의 수정주의화는 이념적 맹아가 제대로 싹을 틔우기 전에 전쟁이 발발했고, “아래로부터” 붓물처럼 쏟아졌던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이 중도반단으로 되어 차세대 공산당원들이 제대로 육성되지 못한 점에 있었음. - dc App
http://lodong.org/wp/archives/12907
“단체계약 체결에 바쳐진 회의에는 전체근무자의 90% 이상이 참가하였으며, 8십8만 명 이상의 근로자들이 그 회의에서 발언하였고, 70만 이상의 제안이 제출되었다. 제안의 반은 노동조직의 개선, 노동량이 많이 드는 노동의 기계화, 기술적 과정의 완성, 안전기술의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제출된 제안들은 대부분 실현되었고, 약 20만의 제안은 단체계약에 포함되었으며, 그의 실현은 거대한 효과를 가져왔다.” - dc App
전국적 생산 계획 수립에 있어 중대한 조건인 위와 같은 사안들이 토의를 통해 이뤄졌으며 자발적 참여는 엄밀히 말해 실재하였음. 이전 사회의 각인의 폐절은 고타강령비판에서 밝히듯 지고한 과정이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봄. 따라서 노동자 민주주의의 부재가 수정주의화와 반혁명의 결정 원인이 될 수 없음. - dc App
1. 급박한 정세가 영향을 끼쳤다는 거는 부정한 적 없음(이 댓글 말고 다른 여러 댓글들을 보면 알 것). 따라서 첫번째 대댓글의 내용엔 동의함 2. 자발적 참여가 있었다는 사실도 부정한 적 없음. 허나 그것이 노동자민주주의의 구체적 내용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부정적임
3. 내가 반혁명을 지도부 책임으로 물린것은 그 모든 '비상상황들(내전, 산업 파괴, 제국주의 포위공세 등)'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
2. 자발적 참여 자체로만 놓고 보면 그렇지만,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됨. 토론과 전국적 회의를 통한 의사 반영 구조가 그러함 - dc App
3. 방향성은 존재했으되 추진력이 45년 이후 사점에 이르러 약화되었음. 군사교육을 이수한 선진적 노동자나, 청년조직 맹원들이 전시에 대거 사망하여 반관료주의 투쟁이 한층 더 어렵게 되었음. - dc App
여러모로 참 안타깝구만
그 비유는 맞지 않음. 냉전 시작 당시 미국에 의해 경쟁으로 내몰린 동네가 소련. 2차대전때 출혈을 많이 강요당한 쪽이었고 수세적 위치에 놓여 있었음. - dc App
빛련에 비하면 미국은 뱁새긴 하지
시작지점 자체가 빈곤의 제정 러시아였고 2머전도 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경쟁 거의 다 이겨먹은 거 생각해보면 대단하다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