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근대에 대한 선망은 본질적으로 실패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역사적 풍토를 무시한 흉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근대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해야 -혹은 근대성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이 영국 산업사회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면, 맑스 이론을 분석하고 새로운 역사적 풍토에서 재해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적 근대성은 시대와 지역에 맞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백인을 정점에 둔 인종주의, 서구중심주의, 근대성과 물질문명을 향한 욕망은 그것들에 대한 흉내mimicry를 실행하고 수행하는 식으로 근대성을 성취하려는 욕망으로 표출된다. 흉내내기는 서구 근대성에 대한 숭배와 자신의 과거와 민족성 전부에 대한 부정이 동시적으로 공진하는 양가성의 공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모방을 통한 식민지민의 정체성 구성은 틈새, 과잉, 차이, 균열을 남긴다. 그의 흉내는 애초부터 번역 불가능한 것의 흉내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체성은 균열을 간직한 채 불확실한 것이 되고 만다. 이 불확실성은 식민지민의 정체성을 미완의 가상적인 존재이자 부분적 현존재로 만든다. 흉내는 자신의 흠집을 감추는 '미완의 가상인 동시에 그가 흉내내는 것은 전부가 아닌 단편이거나 파편이고 미지의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체성 효과는 언제나 정적으로 분열적이며 나르시시즘과 편집증이 쌍을 이루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 유선영(2017), 식민지 트라우마, 푸른역사, pp. 293-294.
우리는 근대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해야 -혹은 근대성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이 영국 산업사회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면, 맑스 이론을 분석하고 새로운 역사적 풍토에서 재해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적 근대성은 시대와 지역에 맞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백인을 정점에 둔 인종주의, 서구중심주의, 근대성과 물질문명을 향한 욕망은 그것들에 대한 흉내mimicry를 실행하고 수행하는 식으로 근대성을 성취하려는 욕망으로 표출된다. 흉내내기는 서구 근대성에 대한 숭배와 자신의 과거와 민족성 전부에 대한 부정이 동시적으로 공진하는 양가성의 공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모방을 통한 식민지민의 정체성 구성은 틈새, 과잉, 차이, 균열을 남긴다. 그의 흉내는 애초부터 번역 불가능한 것의 흉내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체성은 균열을 간직한 채 불확실한 것이 되고 만다. 이 불확실성은 식민지민의 정체성을 미완의 가상적인 존재이자 부분적 현존재로 만든다. 흉내는 자신의 흠집을 감추는 '미완의 가상인 동시에 그가 흉내내는 것은 전부가 아닌 단편이거나 파편이고 미지의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체성 효과는 언제나 정적으로 분열적이며 나르시시즘과 편집증이 쌍을 이루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 유선영(2017), 식민지 트라우마, 푸른역사, pp. 293-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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