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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를 비롯한 자민통 계열의 골수인사들을 보면, 한가지 눈에 띄는 특징이 보인다. 그들이 외대 용인캠퍼스(현 글로벌캠퍼스)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처럼 학벌주의가 공고화된 나라에서 캠퍼스 출신이 지도적 역할을 맡는거말이다. 자민통 학생운동이 한참 잘나갔던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는 외대 용인캠퍼스 학생들이 외대 서울캠퍼스 학생들을 지도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전대협-한총련 간부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서울대와 연고대 학생들이 지도적 역할을 하던 80년대 후반에 한양대생 임종석이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전남대생 송갑석이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주도권은 지방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광주전남지역은 신념의 강자들이 모인 남총련이 된다. 조선대에서도 한총련 의장이 배출되었다. 한대련 시기에는 이화여대를 제외한 여대에서 의장이 선출되기도 했다.


한편 좌파그룹은 학벌주의가 강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의도적으로 그러지는 않았다. 다만 토론과 이념 논쟁을 즐겨하던 좌파 그룹 특성상 캠퍼스와 지방대학에 뿌리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90년대 내내 서울대와 연대가 좌파그룹의 주요 거점이었고 이외에 좌파그룹(PD + IS)이 유의미한 세력을 확보한 대학은 경희대, 서강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정도였다.

이처럼 NL은 토론과 논쟁보다는 인간관계와 품성, 조직에의 헌신을 중시하는 분위기 덕에 지방까지 세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
“엘리트주의는 대중주의를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과거 자민통 학생운동이 증명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