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연극론


브레히트는 1898년에 태어났다. 독일의 극작가, 시인, 연출가인 그는 소격효과라는 개념을 연극 연출에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뮌헨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1차대전 동안은 잠시 병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극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바알>, <도시의 정글 속에서>등으로 연이어 성공을 거두었는데, <서푼짜리 오페라>는 그가 극단에서 결정적인 지위를 굳히게 해주었다. 독일에 나치의 그림자가 드리운 뒤 긴 망명생활을 하였고, 망명 중에서도 반나치주의 활동을 해나갔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망명지 미국에서 동독으로 돌아온 그는 1956년 사망했다. 현대 극에 그가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그의 서사극은 연극적 환상을 일으키는 전통에서 벗어났다. 특히 소격효과라는 개념을 연극 연출에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격효과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내려온 기존의 극작법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소격효과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낯설게 보이도록 거리를 만드는 수단이다. 관객이 스토리에 빠져들면 연극에 동화되지만, 그렇게 되면 비판을 잃어버린다. 브레히트는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에서 무대 위에 도덕 문제와 현대의 사회현실을 재현하여 관객의 지성에 호소하려 했다. 그는 관객의 감정적인 반응을 차단하고자 했으며, 관객이 등장인물의 감정이입을 통하여 연기에 사로잡히는 경향을 방해하고자 했다. 브레히트는 자주 관객에게 회상에 젖거나 연극에 빠져들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밤 장면조차 강한 조명을 썼다.

서사극이란 정통연극에서처럼 카타르시스를 통해 우리의 정신을 정화하고 스스로 승화된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한 관찰을 통해 관객 스스로에게 판단력을 부여해야 한다는 이론으로 감정보다 이성에 호소하는 연극이다. 브레히트는 ”사실주의 예술이란 투쟁의 예술이다. 그것은 현실의 그릇된 개념과 싸우며 인류의 진정한 이익에 거슬리는 모든 충동과도 싸운다“라고 주장하며, 연극의 현실참여를 강조했다. 브레히트는 현실개혁의 방법을 연극을 통한 교육에서 찾았는데, 이러한 점에서 그의 연극론은 <변증법적 연극> <교육적 연극>이라고 한다. 브레히트에게 있어서 소격효과란 희곡의 서사화(敍事化)를 위한 예술기법으로 대상을 인식하게 하되 그 대상을 낯설게 하는 묘사방법이다. 즉, 대상을 인식시키되 그 인식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일상적이고 평범한 측면을 생소하게 만들어 비일상적이고 낯선 것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소격효과의 성립과정에서, 브레히트는 동·서양을 포괄적으로 받아들여 그의 연극론을 완성시켰으며, 특히 중국과 일본의 연극기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기법의 발전과 아울러 예술적 사고의 원리, 즉 기법의 사용에 우선한 사고의 원리는 러시아 형식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브레히트의 이러한 관점은 어떤 사상적인 측면을 떠나서 진정한 예술의 사회적 기능, 연극의 사회적 기능을 재인식시켰다고 할 수 있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러시아의 감독 콘스탄틴 스타니슬라프스키가 발전시킨 서사극과는 완전한 대조를 이루었다. 스타니슬라프스키는 연출방식과 자연스러운 연기로써 관객들에게 무대 위에서의 행위가 '현실'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중국 연극의 전통에 영향을 받은 브레히트는 배우들에게 그들 자신과 그들이 연기하는 극중인물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가르쳤다. 그의 배우들은 내적 생활과 감정을 무시하고 사회적 관계의 표시로서 틀에 박힌 외적 행위를 부각시켜야 했다.

이러한 ‘소격’ 개념은 헤겔의 인식과정에서 출발한다. ‘어떤 사실을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대상이 바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의 부정을 통한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하면 올바르게 인식의 길에 도달하게 된다.

브레히트는 자신의 서사적 연극을 ‘비(非) 아리스토텔레스 연극’이라고 부르다가 때로는 ‘자연과학시대의 연극’, 만년에는 ‘부정의 부정을 통한 변증법적 연극’ 등으로 불렀다. 브레히트는 이러한 서사기법으로 무장한 무대를 통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관객과 함께 토론하며, ‘변화시켜야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관객을 설득하고 선동하는데 브레히트의 특징이 있다. 이런 기본입장이 브레히트 작품의 주제이다.


2.<서푼짜리 오페라>를 통해 보는 브레히트 연극론



이제 그의 작품을 통해 앞서말한 그의 연극론을 이해해보도록 하자.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세기말 런던. ‘걸인의 친구들’ 사장 조나단 피첨의 딸 폴리는 악명 높은 신사 강도 칼잡이 매키와 야밤에 남의 집 마구간에서 부모 몰래 결혼식을 올린다. 하객으로는 매키의 일당, 킴볼 목사와 경시청장 브라운이 찾아오는데, 매키와 브라운은 인도에 함께 종군했던 전우 사이로 아직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거지들에게 의상과 의족을 대여해주는 대가로 그들을 야비하게 착취하는 피첨은 딸의 상실을 묵과할 수 없다. 미모의 폴리는 그에게 가족의 일원이라기보다는 영업상 필요한 전시물로 더 가치가 있고, 또 매키가 결혼 후 ‘걸인 동지회’의 내막을 알아 그 운영권을 탈취하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리하여 피첨은 여왕의 대관식 행렬에 걸인을 동원하겠다고 브라운을 위협, 매키를 체포하게 된다. 브라운의 딸 루시는 매키와 결혼한 것과 다름없는 사이인지라, 감옥에서 그를 구출한다. 그러나 매키는 이 기회를 빌어 피신하지 않고 종래의 습관대로 창녀들을 찾아가며, 다시금 피첨의 위협에 견디지 못한 브라운은 그를 재차 체포한다.

이제 아무도 그를 도울 용의가 없다. 강도 일당, 루시와 아내 폴리마저도 교도관을 매수할 돈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매키의 처형은 피할 길이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교수대 위에서 목에 밧줄을 맨 순간, ‘국왕의 말 탄 사자’가 출현하여 사면과 귀족 신분의 수여를 통보한다.



2 – 1. 반영론적 관점에서 본 <서푼짜리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는 1728년 영국의 <거지 오페라>를 원작으로 하여 재구성한 극이다. 원본과 다른 점은 일차적으로 시간적 공간의 차이이다. 원작은 172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브레히트는 19세기 중반 빅토리아 여왕 시기를 배경으로 하였다. 이는 원작의 역사적 시간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당시 현실과 가까워서 쉽게 비유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더 큰 차이는 작품의 테마였다. 당시 영국의 정치적 상황과 귀족 사회, 그리고 이태리 오페라를 비판하려는 원전의 의도와 달리, 브레히트는 이 작품에서 도둑들이 바로 시민이며, 시민이 도둑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당시 시민이 경멸하는 하층민이지만, 이들이 하는 행동은 일반시민들의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청중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중적 도덕관을 생각해 보기를 바랐다. 브레히트는 19세기 중반 영국이라는 외형을 빌려왔지만, 실제로는 1920년대 독일 사회를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1920년대 독일 사회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였다. 후발자본주의 국가로서 부르주아계급의 형성이 늦어졌던 독일은 1차 대전 패배의 그늘로 인해 초유의 인플레이션이 벌어지며,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양극화가 심화되던 시기였다.

‘서사극’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등장했다. 1910년대부터 독일은 표현주의 사조의 영향에 휩쓸렸다. 브레히트도 초기작품에는 표현주의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 표현주의의 연극의 허무한 도취가 반성되어 보고형식이나 르포르타주를 주제로 한 신즉물주의라 부르는 풍조에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등장한 작가는 표현주의와 신즉물주의라는 두 경향의 영향을 받았다. 브레히트는 이 두 경향을 넘어 20년대에 이미 서사적 연극의 이론을 발표하기 시작하여 기존의 연극을 혁신하려 하였고, 그리하여 1928년에 <서푼짜리 오페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이른바 나치가 정권을 잡게 되자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표현주의 작가 요스트 등을 제외한 대다수의 재능있는 극작가들은 해외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고, 독일 연극의 싹은 모두 잘리고 말았다.


2 – 2. 내용 분석


<서푼짜리 오페라>의 연출은 소격 효과를 충실히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장치 중 하나로 브레히트는 음악이 연극의 줄거리와 직접 관계가 없는 듯, 고립된 상태로 연출될 것을 제안하였다. 먼저 음악은 사건 진행을 중지시키는 요소로 등장한다. 노래의 내용은 줄거리 진행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 이를테면 매키와 브라운이 오랜만에 만나 결혼파티에서 이전에 인도에서 군복무 하던 시절의 동지애를 회상하며 부르는 노래는 <대포의 노래>이다. 이 노래는 ”존은 죽었고, 지미도 사망했으며, 조지는 행방불명되어 썩어 문드러졌네, 하지만 피는 여전히 붉다네 군대에는 지원병이 끊이지 않으니까“라는 가사에서처럼 상황에 맞지 않다.

<서푼짜리 오페라>의 연출은 가능한 한 노래 부분을 고립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것들이 시도되었다. 배우들이 노래하는 동안은 무대 조명은 배우와 악기 연주자만 비추고 그 외에는 아주 어둡게 했다. 이로써 연극 중의 무대라는 느낌을 최대한 줄이고자 했다.

또한 노래는 작가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노래하는 배우는 연극이 줄거리 진행에서 뛰쳐나와 관객에게 직접 호소한다. 피첨이 결말 부분에서 청중을 향해 ‘우리는 다른 결말을 생각 했습니다.’라고 제안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장치로 관객은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도전을 받으며, 허구적인 연극 줄거리에서 벗어나 잠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연극의 중단을 체험하게 됨으로써, 청중은 줄거리에 몰입하지 않고 거리감을 확보하며, 깨달음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브레히트가 고안한 전통적 장치인 나레이션, 배우가 배역에 몰입하지 않는 객관적 태도 등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는 이 작품에서 가감 없이 사용되고 있다. 나레이션을 맡은 뱅우는 간이막과 함께 각 장면들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며, 진행될 장면의 내용을 요약하여 들려준다. 또 각 장면을 대표하는 상징물들, 이를테면 꽃다발, 술통, 모자와 지팡이, 새장, 아기 인형 등을 무대 전면에 차례로 진열한다. 그는 나레이터이면서 동시에 극 중에서는 역할을 맡은 등장인물이다.

인물의 관계에서는 대립적 구조가 드러난다. 거지들을 고용하여 부도덕한 영업을 하는 조다난 제레미아 피첨, 온갖 범죄자들의 우상이자 희대의 악당인 매키스, ‘호랑이 브라운’으로 불리는 경찰청장은 삼각형 구조를 이룬다. 이중 주목할 것은 매키스와 피첨의 대립이다. 매키스는 분명 악역이지만, 브레히트가 의도한 것처럼 ‘시민’의 범주에 들어가 있다. 제레미아 피첨은 걸식행위를 사업으로 변화시킨다. 이렇게 독점자본주의적인 특성을 가진 사업가 피첨과 갱단의 두목인 매키스의 대결 구도를 통해 자본주의 시민 사회의 질서를 약탈과 착취의 질서로 폭로한다. 그들에게는 우정도 사랑도 결국 수요와 공급이라는 자본 논리에 포섭된다. 극중에서 일어나는 부도덕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부르주아 도덕의 위선이 교차하는 것이다. ”은행을 세우는 것에 비하면 은행을 터는 것이 뭐 대수요?“ 라고 묻는 작중 대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은행이란 효과적으로 도둑질을 하는 도둑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시민은 곧 도둑이고, 도둑은 곧 시민이다. 하루아침에 귀족 신분이 되는 매키스, 성공한 사업가이자 거지인 피첨은 ‘시민 계급’과 도둑과 강도의 차이를 허문다. 이렇게 브레히트는 약탈과 착취에 의해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를 폭로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