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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령으로 알아보자! 日共의 변화[22년 9월 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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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령으로 알아보자! 日共의 변화[22년 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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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민테른 집행위원회(E. C. C. I.)(1) 의 일본판 테제
1927년 7월 15일의 E. C. C. I. 의 상임 간부회 세션에서 채택됨.
I. 일본 제국주의와 전쟁.
전후 극동의 세계경제와 세계정치에서의 큰 상대적 힘의 성장은 일본 제국주의에 관한 문제를 특히 중요하게 만든다. 지난 10년간의 일본 제국주의의 강화, 그 성장하는 공격성은, 중국, 인도, 근동, 태평양 도서들, 소련 영토 등으로의 침투는, 일본을 넓은 아시아 대륙에서 1급의 제국주의 열강으로 변화시켰다.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에 대한 주요 시점 중의 하나는 태평양에서 스스로 형성되고 있다. 동시에, 이 시대에서 가장 강력한 혁명적 움직임의 하나가 중국에서 발전하고 있으며, 그것은 세계 혁명의 진전에 특별한 중요성을 가질 것이다. 일본 자본주의의 운명은 더욱 세계 자본주의의 운명과 합류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다가오는 전쟁의 대비에서 가장 활동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의 중국 개입이 확실한 사실인 한에 있어서는, 그들이 이미 이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 자본주의의 중국 혁명에 대한 중립적 입장이라는 점에서 이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데, 그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관심이 중국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철과 석탄의 매장량이 한정된 일본의 주요 원자재 출처이다. 중국은 일본 공업의 중요한 시장이며 35%의 일본의 수출품은 중국의 항구로 운송된다. 중국은 또한 일본 자본 투자의 중요한 영역이다. 일본의 부르주아지는 25억엔가량을 중국에, 특히 만주, 공장, 제조업(2) , 광산과 철도에 투자했다. 자연적으로, 일본 제국주의는 중국 혁명의 발전을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보며, 노동과 농업 운동을 옥죄기 위해 무엇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지출 혹은 연합도 감내할 것이다.
중국 혁명의 가장 위협적인 적이 되고 특히 교활한 외교의 게임을 추구하며, 일본 제국주의는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얻을 수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더욱 공개적이고 활동적인 반혁명적 정책을 중국에서 도입하고 있으며, 특히 장개석에 의해 지도되는 중국 부르주아지가 반혁명의 진영으로 넘어갔을 때부터 더욱 그러하였다.
중국 혁명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적대성은 혁명의 발전이 일본의 식민지적 점령에 직접적 위협이 되기에 더욱 격화되고 있으며, 그것은 일본의 가장 중요한 식민지 특히 조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중국 혁명에 대항하는 투쟁은 이미 상당 부분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현재의 중국 노동자와 농민들에 대항하는 공동 행동을 위해 또한 더욱 혹은 덜 임박한 미래의 소련에 대한 전쟁에 대한 공동 준비를 위해서 영국 제국주의자들과 블록을 형성하도록 이끌었다.
중국 혁명과 소련에 대항하는 투쟁을 위한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 그리고 영국의 블록은 그들 사이의 영원히 깊어지고 날카로워지는 갈등을 없애지 못할 것이다. 일본과 영국의 제국주의의 관심은 이미 중국에서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다. 싱가포르의 영국 해군기지 설립은 일본 언론에 의해 공개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일본을 향한 공격으로 간주되는 점에서 헛된 것이 아니다. 일본과 미국 간의 적대감은 여전히 날카롭다. 미국의 이민법은 일본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미국의 태평양 확장의 과정과 일본의 태평양 확장의 과정이 갈등하여 두 강대국 간의 충돌을 더 가깝고 더 피할 수 없는 것을 만들고 있다. 중국 혁명에 함께 맞서 싸우고 소련에 대한 전쟁을 함께 준비하며, 미국, 영국 그리고 일본은 동시에 그들 간의, 태평양 지역에서의 제국주의적 분할을 위한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II. 내부의 상황
유럽과 비교될 때 상대적으로 나중에 발전한 일본의 제국주의 발전 – 19세기의 60년대부터 발전한 – 은 흔치않은 급진성으로 진행되었다. 단지 일본 자본주의의 성장률이 전쟁에 의해 지연되지 않은 것만이 아니라 또한 그 시기에 일본 자본주의는 막대한 진전을 이루었다. 영국과 대조되게, 그리고 다른 유럽의 자본주의 국가와 대조되게, 비록 자원과 그 발전의 가능성은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제한되어 있지만, 일본 자본주의는 이제 의심의 여지없이 발전의 상승 곡선에 타고 있다. 일본의 무역 톤수는 1912년에 비해 1926년에 2.5배나 증가했으며, 그 철도망 또한 1912년보다 273% 증가했으며, 전력의 생산은 6배나 증가했다.
산업의 비상한 급속 성장은 자본주의적 관계의 급속 성장과 연결되어 있고, 정부의 변화에서의 귀족과 부르주아지 간의 내부 분쟁과 타협 이후에 발생한 성장하는 일본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중요성과 상대적 힘과도 연결되어 있다. 현재의 일본 정부는 자본가와 지주의 블록의 수중에 있다. 자본가와 지주 블록은 일반적으로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극도로 특유한 특징이지만 지난 60 년 동안의 독특한 개발 조건에서 비롯된 특정한 특수성을 제기한다.
1868년의 혁명은 일본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길을 열었다. 정치적 힘은 그러나 봉건적 요소의 손에, 대지주의 손에, 군 및 귀족 무리들에게 남아 있었다. 일본국의 봉건적 특성은 단지 전통적인 유물이 아니었고, 과거의 미발달 요소의 생존이나, 또한 그것의 장래 발전의 모든 과정에서 일본 자본주의에 의해 능숙히 조직된 초기의 자본주의적 축적에 아주 편리한 기구이다.
구 일본국의 부르주아지 국가로의 전환은 두 개의 다른 길을 통에 진행되었다. 한 쪽에는 공업적, 상업적 그리고 재정적 부르주아지의 상대적 힘과 정치적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던 것이고 다른 한 쪽에는 봉건적 계층과 새로운 부르주아지 간의 섞임의 과정이 경제적 이유에 의해 자극되며, 노동자 농민 운동에 대한 공포와 제국주의 정책의 필요에 의해 매우 빠르게 증가하던 것이다.
일본국은 그 자체로 일본 자본주의의 강력한 요소이다. 어떠한 유럽 국가도 몇몇 연구에 따르면 이미 정부의 손에 거의 다 들어가 있는 철도를 제외하고 30%의 전체 자본이 공업과 금융에 투자된, 일본과 같은 그러한 국가자본주의(3) 와의 유사성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천황(4) 는 대지주일 뿐만 아니라, 많은 주식회사 그리고 조합에서의 매우 부유한 주주이기도 하다. 최종적으로, 그는 10억엔의 자금을 가진 자신의 은행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자본주의적 집중의 과정과 산업과 은행 자본의 금융자본에로의 병합, 트러스트화와 집중의 과정은, 또한 일본에서 굉장히 많이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한 면으로 일본국은 거대한 자본주의적 기업이며, 다른 면으론, 일본 부르주아지의 두 지도적 당 – 입헌정우회(5) 와 헌정회(6) – 하나는, 각료 또한, 미쓰이 사에 의해 유지되고 있고, 다른 하나도, 각료 또한, 미쓰비시 사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그러므로 구 봉건 형태에 부르주아적 내용을 빌려주는 이중적인 과정이 있고 부르주아지를 반혁명적 요인으로 바꾸는 병렬 과정이 있는데, 그것이 봉건주의자들과 충분히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으나, 그럼에도 그들과 함께 공동행동으로 노동 및 농민 운동에 반대하고 있다.
일본국에서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 봉건주의의 청산, 현재 정부를 운영하는 무리들을 제거하는 것은, 높은 단계의 트러스트화가 되어 있는 나라이므로, 그것은 확실히 봉건 잔재에 대한 투쟁으로부터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투쟁으로 변화할 것임이 틀림없다. 일본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매우 빠르게 사회주의 혁명으로 성장할 것인데, 그 이유는 정확히 현재의 일본국이, 그 모든 봉건적 자질과 잔해들과 함께, 일본 자본주의의 가장 집중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가장 중요한 근간의 전체를 구현하고 있기에, 그것에 대한 타격은 일본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에 대한 큰 타격이 될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빠른 전환의 전망은, 물론, 보통 말하는 그런 부르주아지 민주주의 혁명의 문제점을 일절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부르주아지와 지주간의 합류가 얼마나 진행되었는가와 관계없이, 대규모 토지 소유는 계속 국가의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삶에서 아주 중요하고 고도로 독립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도시에서의 자본주의의 폭풍과도 같은 발전을 개의치 않고, 촌락들은 아직도 기술적 그리고 사회경제적으로 극도로 낙후된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토지의 부족과 막대한 빈곤은 농민 사이에 만연해 있다. 550만의 농민 가정들이, 즉 80%의 농민들이 1.1정보(약 3 에이커)(7) 의 땅을 경작하며, 0.1%의 농민이 모든 경작지의 8%를 소유한다. 고리대금의 대여 시스템은 일본에 널리 퍼져 있다. 전체 경작지의 40%에서 수확된 거의 반의 곡물이 소작인으로부터 지주에게 소작료로 바쳐진다. 이러한 몇 가지 특성은 일본에서의 극심한 농민의 문제를 나타낸다. 그들은 농업의 혁명이 이미 무르익었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문제가 진짜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일본에는 명확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정부 국가 구조에서의 봉건 잔재, 극심한 농업 문제)을 위한 전제 조건과 명확한 그것의 사회주의 혁명(높은 단계의 자본의 집중과 트러스트화, 국가와 트러스트 간의 긴밀한 유착, 국가자본주의와의 상대적으로 강한 유사성, 부르주아지와 지주 귀족 간의 연대와 블록)으로의 급속한 전환을 위한 전제 조건이 있다.
그러나 만약 일본 경제가 바로 혁명을 향한다면, 반동적 사상 – 레닌이 말했던 ‘객관적 혁명 상황’(8) 과 반대되는 ‘주관적 혁명 상황’(9) – 은 큰 장애이며 발에 걸리는 블록이다. 일본의 프롤레타리아와 농민들 그 누구도 혁명적 전통이나 투쟁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광범위한 대중들은 이제서야 정치적 의식이 깨어나고 있으며, 그것도 오직 중요치 않은 영역에서나 그러하다. 노동 및 농민 조직은 거의 없고 흩어져 있으며, 지금껏 그리 활동적이지도 않았다. 계급 정서, 그리고 계급 투쟁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것은, 아직도 광범위한 대중 사이의 애국주의적 독약과 평화주의적 환상에 의해 억압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의식은 – 농민은 말할 것도 없이 – 그것의 계급의식, 혁명적 조직은, 이제서야 막 그들의 배아기에서 벗어나기를 시작하고 있다. 정확히 이 방향에 일본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가장 진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그들의 전력을 다해야 한다.
현재에는 두 개의 주요 부르주아 정당 – 입헌정우회와 헌정회 – 이 정부에서 돌아가며 자리를 차지한다. 그들 둘 모두는 대자본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기업 – 미쓰이와 미쓰비시 – 의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정치적 대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입헌정우회는 정부에서의 역할이 매우 큰 귀족계급과 군사적인 왕실 파벌(10) 과 더 가깝게 연결된 반면에, 헌정회는 자본주의적 착취에 있어서의 더 ‘자유주의적’ 방법의 도움으로 정부기관의 강화와 지원을 목표하는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의 대변인으로 활동한다. 그러므로, 1925년에, 헌정회는 독점 사업권을 확장했다. 입헌정우회와 대조되게, 헌정회는 또한 소련에 대해 더 온건한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없이, 일본의 식민지 그리고 일본 자체에서의 혁명적 운동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두 당 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아직도 발전의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상태의 모순, 커져가는 추가 성장의 어려움은, 위협적인 특성을 가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런데, 극심한 자본주의 위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일본의 부르주아지들이 이미 전쟁 후 위기들 그리고 1923년의 지진의 영향도 상당 부분을 극복하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에서의 혁명의 발전은 일본 산업을 위한 원자재의 주요 원천을, 중국에 투자된 자본으로부터 생기는 막대한 자본들을 불안정한 상황에 위치하게 했다. 그것은 또한 일본의 조선, 포르모사, 만주 등에서의 식민적 차지를 위협하였다. 영국과 미국에 대항하는 투쟁, 제국주의적 강대국 정책은, 생산력의 발전을 의심의 여지없이 차례로 방해하는, 군사주의와 해양주의의 막대하고 피할 수 없는 부담을 대다수 인민들의 어깨 위에 지웠다.
농민과 1926년에 상당히 임금이 감소한 노동자계급의 빈곤은, 국내 시장을 해치는 것이 해외 시장의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만들도록 한다. 초자본화에 대해, 국내 시장의 흡수 가능성을 결코 유지하지 못하는 산업 장치의 확장에 대해, 일본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헛되이 쓰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미국의 이민법에 의해 격화된 막대한 과잉 인구는 아직도 더욱 일본 자본주의의 사회 시스템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모든 요소는 ‘주관적 혁명 상황’의 요소들에 해당하며, 그것은, 또한 동시에, 광범위한 노동자와 농민 대중을 혁명화하며 ‘객관적 혁명 상황’을 생성하고 발전시킬 수 있게 돕는다.
프티부르주아 계층의 프롤레타리아화는 지금 일본에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자본주의 발달의 높은 단계에도 불구하고, 반식민지적 노동시간의 길이와 반식민지적 저임금은 아직도 널리 퍼져있다. 이른바 ‘노동 규제’는 순전히 노동자들을 겨냥해서 기획되었다. 파업과 노동조합은 아직도 불법이다. 여성은 정치적, 사회적 권리가 전혀 없다. 공산당은 지하로 내몰렸고 단지 당원이라는 것만으로도 1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은 대중을 급진화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공산주의 선전과 조직의 토지를 비옥하게 했고, 앞으로도 계속 비옥하게 할 것이다.
III. 일본 혁명의 추진력들
일본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부르주아지와 지주들의 블록에 의해 통치된다 –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 하의 블록에 의해서. 그렇기 때문에, 부르주아지들이 어떤 식으로든 혁명적 요인으로 활용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은, 심지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첫 단계에서도, 버려져야만 한다. 중국에 대한 분석은 비판의 여지가 없다. 일본의 부르주아지가 그 자체로 최상급의 제국주의 강대국이란 사실이 있으므로 중국은 예전도 그리고 지금도 제국주의 정책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에서 ‘내셔널리스트’부르주아지는 혁명의 초기에는 권력을 위해 싸우고 있었으나, 일본 부르주아지가 이미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이미 전체 정부 기구를 그것의 모든 봉건적 자질과 잔재와 함께 자본주의적 착취를 조직하고 방어하는 데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 점에서의 막대한 요인은 일본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의 단계가 너무 높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곧바로 사회주의 혁명, 보통 말하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혁명이 될 것인 상황이다.
일본 혁명의 원동력은 프롤레타리아트, 농민들과 도시의 프티부르주아지들이다. 첫째로, 하지만,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들이다. 일본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의 사회 혁명을 위한 투쟁과 모든 일본에서의 피착취자들의 투쟁에서의 헤게모니를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위해 결합하여야 한다. 반동적 지주와 자본가 연합을 상쇄할 노동자와 농민의 혁명적 연합을 위한 조건이 일본에서 전부 갖춰져 있다. 노동자 계급과 농민의 관계에서 정확한 당파는 일본에서의 혁명의 성공적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구조건 중 하나이다.
농민들은 땅을 위한 투쟁에서, 봉건 잔재에 대한 투쟁에서, 오늘날의 집중된 자본주의의 억압에 대해서, 특히 노동자 계급의 리더십 아래에서 승리할 수 있다. 모든 국가의 역사는 노동 운동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의해 지도되지 않는 한 패배한 것을 보여준다. 반면에, 일본과 같은 반 이상의 인구가 농민인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 간의 괴리는 크나큰 위험투성이일 것이며, 부르주아지의 손에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넘겨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연합은 두 계급 모두의 이익에 있어 그야말로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연합은 노동자 계급이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을 때만 혁명적이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 계급에게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단지 사회 혁명으로 가는 길의 한 걸음일 뿐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지도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는 그것의 계급적 관점을 잃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특히 그것을 사회 혁명으로 바꿀 전망이 모든 투쟁의 단계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결정적 요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오직 하나의 일관된 혁명적 계급이다 – 최후까지 혁명적인 계급. 노동자와 농민의 연합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헤게모니는 또한, 어중간한 마음씨, 망설임 그리고 주저와 동요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하다. 프티부르주아지에 속하는 농민들과 프티부르주아지의 힘은 ‘동요의 힘’(11) 이다. 노동자 계급과 공산당은 이를 항상 염두하고 있어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일본에서 ‘동요의 힘’을 활용하기 위해 항상 분투했고 또한 의심의 여지없이 시도할 것이다. 이러한 동요는 혁명의 특정 단계에서 혁명에 굉장한 위협이 될 수 있으며, 특히 그것의 사회 혁명으로의 변화 단계에서 부르주아지들이 격렬하게 농민 속의 소-소유주(12) 의 본능과 선입견을 이용할 때 그러하다. 오직 단련되고, 계급의식이 깨어있으며 일관적으로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만이, 공산당의 영도 아래서, 이러한 동요를 누그러뜨리고 극복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재앙적이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농민과의 연합이 의미하는 것은, 물론, 우선 지방 빈민과의 연합이다. 빈농에게 지지되고 그들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연결을 설립하고, 농민의 주된 대중을 인도한다.
일본의 노동자 계급과 농민의 혁명적 연합을 위한 명확한 필요조건은 의심의 여지없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명확한 필요조건은 조직적으로 인지되어야만 한다. 일본의 농민들은 높은 세금과 임대료로 최고의 빈곤으로 고통받고 억눌려지고 있다. 혁명적 움직임은 지방 프롤레타리아와 반프롤레타리아(13) 간의 유별난 급진성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이미 농민들의 12%가량은 농민 연합으로 조직되어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을 혁명적인 공산주의 리더십 하의, 노동자 농민의 당으로 결집하는 데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지주와 자본가들의 반동적 연합은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연합으로 상쇄되어야만 한다.
IV. 공산당과 그 역할
노동자 계급은 가장 진보되고, 혁명적이고, 깨어 있고 조직적인 부문인, 공산당의 리더십 아래서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독일, 특히 바이에른, 헝가리 그리고 이탈리아의 경험은 굳건히 통합되고 사상적으로 일관적인 대중적 공산당 없이는, 어떠한 성공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도 불가능하다는 레닌의 이론의 압도적 정확함을 보여주었다.
어디서도 노동자 계급은 완벽한 동질의 대중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이것은 일본에도 적용된다. 그곳에는 수많은 다른 층이, 각기 다른 삶,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다른 발전들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들 계층의 모든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관심사를 가질 수 있고, 또 실제로 가지는데, 이 관심사는 정치적으로 가장 후진적이고 가장 계급의식이 낮은 노동자들이 프롤레타리아의 일반적인 계급적 관심을 몽롱하게 만들 수 있으며 실제로 자주 몽롱하게 만든다. 오직 장기적인 대중 투쟁을 통해서만 이러한 기능 차이들(14) 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심지어 영국과 같은 국가에서도, 프롤레타리아트의 기능 분열(15) 은 사상적 그리고 조직적인 면 모두에서 단연코 청산되지 않았다. 부르주아는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조합 대리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러한 기술 차이를 정력적으로 육성하고 촉진한다.
이러한 기술 분열과 함께하는 것은 또한 가까이 묶여 있고, 부분적으로 이에 의한, 또다른 위험인데, 이름하여 ‘경제주의’(16) 이다. 노동자 계급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후진적인 부분에게는, 일상적 투쟁과 구체적 요구는 경제적 갈등 중에 발전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 즉 혁명을 통해서만,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국가 권력 획득에 의해서만,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성립을 통해서만 가능한 자본주의적 착취로부터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방을 몽롱하게 만든다. ‘경제주의’는 노동 운동의 소아병임과 동시에 가장 좋지 못한 부류의 기회주의를 기르는 토양이며, 프롤레타리아트를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대해 혁명적으로 투쟁하도록 일으키는 것이 아닌 그것에 적응하게 하는 사상이다.
공산당은 전체로서 노동 계급의 기본적인 역사적 이해관계를 위해 싸우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전위대이다. 공산당 없이는 계급적 한계와 ‘경제주의’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공산당 없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은 있을 수 없다. 이의 연장선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가장 주된 임무 – 독재의 수립 – 에 대한 시각을 놓치는 것은 인정할 수 없으며, 또한 이의 연장선에서 모든 투쟁의 단계에서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주요 혁명적 관점과 그 관점의 선호를 지키는 것은 필수적이며, 또한 이 연장선에서 공산당은 일상 투쟁에 열성적으로 참가하고 그것을 인도하며, 대중 조직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지도하는 동시에 당의 사상적이고 조직적, 독립성, 당 자신의 정체성, 노동계급의 혁명적 전위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 이외의 모든 지향은 실질적으로 기회주의를 향해 허리를 숙이는 것을 의미하며, 최종적 분석으로는, 자본주의의 폐지를 위한 투쟁의 포기로 이어진다.
일본의 공산주의자 리더십의 주요한 오류 중 하나는 공산당의 역할에 대한 저평가와 몰이해, 또한 노동 운동에서의 그것의 특정한 중요성에 대한 저평가에 있다. 공산당이 어떤 점에서든 좌익적 노동조합의 부분들이나 광범위한 노동자와 농민의 당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생각은 틀렸고 기회주의적이다. 독립적이고, 사상적으로 건전하고, 규율을 갖추고 중앙집권화된 대중 공산당 없이는 승리로 끝나는 혁명적 운동은 있을 수 없다. 모든 형태의 청산적 경향(17) 에 대항하는 투쟁, 특히 Hoski동지(18) 의 정책에서 그들의 표현을 찾는 자들은 그러므로 일본의 공산주의자들의 첫 번째 임무이다. 모든 노력자들의 투쟁에서와 같이, 가장 발전된 혁명적 부문인, 노동자 계급이, 주도권을 쥐어야 하며, 노동자 계급의 투쟁에서의 이익에서도, 공산당, 그것의 혁명적 전위대가, 지도적 위치에 서야 함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이제 일본에서의 주된 임무는, 공산당의 수적이고 질적인 발전의 성취이다. 당의 사상적이고 정치적인 단계를 높이는 문제에 집중적으로 임하는 동시에, 당은 더 많은 당원을 얻어야 한다. 일본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요소를 그 대열에 포용하고 조직하며, 단계적으로, 일본의 노동 운동에서 주도적 지위를 강화하고 점해야 한다.
V. 공산당과 사회민주주의.
현재 상황 하에서, 공산당은 오직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으로써만 발전할 수 있다. 이는 일본에서도 정확히 적용된다. 일본의 사회민주당에는 12,000명의 당원과 약 150,000명의 지지적 노동조합에 조직된 노동자들이 있다. 사회민주당의 지도자들은 부르주아지에게 고용된 대리인들이며, 그들의 지령은 대중을 기회주의, 애국주의 그리고 사회적 제국주의로 더럽히는 것이다. 대중을 위한 투쟁, 그리고 특히 사회민주적 노동자들을 위한 투쟁은, 사회민주당의 지도자들을 영구적으로 그리고 열성적으로, 그들의 기만적 정책인 장개석으로의 지향과 연계된 중국 혁명에 대한 경의, 의회주의적 환상의 확산, 사이비 자유주의자적 부르주아지에 대한 그들의 협력자적이고 동조자적인 역할을 공개하는 것 없이는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들은 특히 이른바 ‘좌익’사회민주주의자들의 기만적 역할을 공개해야 한다. 이 중도주의자 집단은 현재로서는 일본노농당(19) 의 지도하에 있으며, 그것은 약 6000명의 당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5000명의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 당의 지도자들은, 모든 ‘좌익’사회민주주의자처럼, 그들의 우익 형제들과는 오직 그들의 기회주의적 경향을 공산당의 눈으로부터 숨기는 좌익적 문구로만 구분된다.
일본 자본주의의 객관적 위치는, 일본의 노동 운동의 역사적 발전과 마찬가지로, 사회민주적 영향에 대한 투쟁에서 대단히 호의적인 상황을 만든다. 일본에서 노동계급은 수십년간 존재한 강력한 사회민주적 조직이 없으며 깊이 뿌리내린 사회민주적 전통 또한 없다. 개혁주의가 대체로 그리고 주로 기초하는, 숙련공의 ‘상위 계층’은, 일본에서 비교적 사소하다. 평균 임금은 극단적으로 낮다. 빈곤한 지방 구역들에서 막대하게 쉴새없이 밀려드는 노동력과, 미국으로의 이민의 닫힌 문에 의해 격화되는 농업 인구 과잉의 막대한 압박은, 자본주의하의 일본 노동자들의 생활수준 개선을 매우 있을 수 없게 한다. 물론, 일본의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적 자본주의가 되며, 노동계급의 상위 계층들의 몇몇 부분들을 사들이는 것의 확실한 가능성을 지닌다. 그럼에도, 미국의 기회주의적 노동조합주의를 일본에 이식하려는 개혁주의적 시도는 실패를 맞이할 것이라는 건 이미 예견될 수 있다.
VI. 공산당과 노동조합들. 공산당과 대중 노동 조직들. 통일 전선 문제.
공산당의 독립적 조직으로써의 성장이 일본의 혁명적 운동에서의 결정적 요인이란 점은 이미 언급되었다. 이 일에 관해서, 공산당 지도자들의 낡은 실수, 특히 Hoski동지가 강조했던 것에 의해 대표된 일탈을 빠르고 결단력있게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엔, 하지만, 또다른, 정반대의 일탈이, 당에서 많은 영향을 얻고 있다. 이 경향의 지도자는 Kuroki동지(20) 이다.
일본 공산당은 오직 대중정당으로서만 역사적 과제의 해결이 가능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 일본 공산당이 자신의 사상적 단계를 끌어올리는 데에 열성적으로 임해야 함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은 반드시 확실하게 ‘혁명적 이론 없이는 혁명적 운동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혁명적 대중 투쟁과, 대중과의 확실하고 강한 연결이 없는 한, 이론은 무익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일본공산당은 목표뿐만 아니라 구성에서도 노동자들의 당이 되어야 한다. 당의 프롤레타리아적 핵심은 가장 먼저 고도로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좌익적 노동조합 운동에 공산당을 해산하는 과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잘못되고 재앙적이라면, 프롤레타리아 대중조직에서 분리되는 것 역시 잘못되었다. Kuroki동지에 의해 발전된 ‘분열과 단결 이론’은 그러한 정책의 입증이자 레닌주의와 가장 급진적이고 결정적으로 다를 뿐이다. 일본공산당이 마주한 구체적인 임무를 분석하는 것 대신, 그리고 역사적으로 제시된 그에 대한 해결 방법을 분석하는 것 대신, Kuroki동지는 인위적으로 그리고 독단적으로 만들어진 관념에서 나아가며 그 관념은 그자를 실질적 관계에 대한 이해 대신 논리의 원칙을 발전하고 적용하는 것으로만 채우고 있다.
대중 조직은 한편으로는 공산당이 새로운 동력을 가져오는 저장소이고 다른 편으로는 계급의 전위대를 노동자 대중 전체와 이어주는 연결 벨트이다. 프롤레타리아 대중조직이 크면 클수록, 공산당의 저장소로서의 가능성이 커지고, 공산주의자들이 연설할 수 있는 대중 또한 넓어진다. 대중 조직을 분열시키자는 정책은 그러므로 저장소를 부수며, 활동의 반경을 제한하고, 대중들과의 연결을 약화시키는 것이자 대중으로부터 스스로 격리되는 정책이다. 그러한 정책이 볼셰비즘과 가지는 공통성이 없다는 것을 입증할 필요는 거의 없다.
동시에, 대중 조직을 분열시키는 정책은 사실상 사회민주적 노동자에 대한 투쟁을 버리는 것, 중도주의적 노동자들을 극복하는 데 대한 투쟁을 버리는 것, 자인한 우익의 개혁주의와 ‘좌익’사회민주적 구호에 가려진 ‘좌익’의 암묵적 개혁주의의 폭로를 버리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의심의 여지없이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볼셰비즘에는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에서의 노동운동은, 일본 프롤레타리아의 가장 발전한 부문들이, 순수 생디칼리슴과 노동조합주의의 단계를 넘어서서, 정치적 계급투쟁 – 일본 프롤레타리아의 전위에게 최근에 수용된 – 으로 급속히 사상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성숙하고 저조하게 조직되었다. 일본의 프롤레타리아에게는 혁명적 전통이 없다. 그들은 계급 투쟁에서의 대단한 경험이 없다. 일본의 450만 공장과 수송 노동자 가운데, 약 30만 정도만이 나누어져 서로 경쟁하는 몇몇의 노동조합과 정치적 정당에 가입되어 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상황에 맞서서, 그리고 일본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 조직의 창설을 위해 싸우는 것은 임무이다. 조직들을 노동총동맹(21) , 농민조합(22) 등과 같은 조직으로 분열시키는 일본 공산주의자들의 정책은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틀렸다. 대중 프롤레타리아 조직의 존재는 공산당의 정상적이고 건강한 발전을 위해 강력히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기회주의와 개혁주의 지도자들에 대한 투쟁은 노동조합과 대중정당의 좌익 분파들을 멀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들에 대해 폭로하고 그들에게서 대중을 포섭하여 이들 조직들과 함께 싸우는 것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산주의자들은 대중 노동 운동에서 괴리될 위험이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노동 계급의 일상 투쟁에서 적극적 위치를 취해야만 하고 그러함으로써 그러한 투쟁에서 지도적 위치를 맡아야 한다.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참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위하는 오직 하나의 충실하고 한결 같은 투사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이는 부르주아지가 노동자들을 향해 광범위하고 열렬한 공격을 전개하고 있는 지금 특히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광범위한 대중 조직은 공산당을 위한 오직 하나의 가능한 기반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젊은 공산주의 운동에 가장 위험한 오류가 될 것이다.
Kuroki동지에 의해 지지된 노동조합들을 기계적으로 정치화하는 것은 그러므로 반드시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것은 정당과 노동조합 사이의 구분에 대한 절대적인 오해, 그리고 다른 것으로의 대체에 그 기초를 둔다. 현실에서는 이것은 대중 운동에서의 자가 격리, 대중 프롤레타리아 조직의 획득을 위한 개혁주의자들에 대항하는 투쟁을 버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기계적 정치화가 아니라 그들 중의 좌익 분자들의 강화이고, 그들 중의 평의회(23) 의 영향력의 강화이며, 평의회 자체의 강화와 조직적 보강이다.
노동조합을 강화하고 보강하는 정책과 이를 내부에서 확보하는 정책 또한 광범위한 노동자 농민 정당과 관련하여 확장되어야 한다. 공산당은 특히 적절한 때에 일본노농당이(24) 중도주의적 영향 하에 있는 와중, 이제 대체로 공산당의 영향하에 있는 노동자 농민의 당 –노농당(25) – 을 합병하는 것을 시도해야 한다. 일본노농당이 보여준 그러한 합병에 대한 필사적 반대는 노동자들에 의해 부수어져야만 한다. 이것이 일본 공산주의자들의 가장 급박한 과제 중 하나이다.
당을 대중으로부터 전략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으로 이어지는 Kuroki동지의 관점은, 대중정당으로써의 공산당이라는 것에 대한 실질적 파멸로도 이어진다. 이 ‘분열과 단결 이론’은 우연히 엄청나고 부적절한 규범적 이데올로기적 측면에 대한 강조,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조직적 측면의 완전한 무시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결국, 인정할 수 없는 지식인들에 대한 과대평가로, 노동대중으로부터의 괴리로, 파벌주의로, 당이 ‘마르크스주의적 사람들’ – 주로, 물론, 지식인들 – 의 그룹이고 노동계급의 전투적 조직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공산당은 Kuroki자신이 이미 거부한 레닌주의에 대한 이 서투른 모방을 단호히 끝내야 한다.
사회민주적 그리고 중도적 노동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노동조합과 대중정당을 차지하기 위해서 제안된 통일전선 전술은, 당연히, 몇몇 난관에 봉착한다. 여기서, 특히, 계급투쟁에 대해 많은 경험이 없는 젊은 당에 의해 큰 실수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 점에서 일본의 공산주의자들은 중국 공산당이 저지른 국민당에 관한 실수를 특히 배워야만 한다. 중국과 일본 간의 상황의 차이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통일전선 전술을 도입함으로써, 공산당은 결코 그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싸우고 있는 자들의 영향력에 결코 복종해선 안된다. 당은 사상적 그리고 조직적으로 자신의 확실한 독립을 지켜야 한다. 통일 전선에 대해 말할 때, 노농당이나 Toitsu Domai(26) 와 같은 합법적 대중 조직과의 소규모 불법적 공산당의 통일전선뿐 아니라 공산당의 영향아래의 대중 조직(예를 들자면 노농당 같은)과 대중적 사회민주적 그리고 중도주의적 조직과의 통일전선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통일전선이 노동계급 문제에 엄격히 영향을 받고 계급 노선을 따라 싸워야 하며, 게다가, 이데올로기적 성격에 대한 양보도 없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노동계급을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위해 조직함으로써, 공산당은 동시에 그저 팔짱끼고 있을 것이 아니라, 혁명적 노동자와 농민들의 블록을 만드는 데에 그리고 그 블록의 노동 계급에게 헤게모니를 보장하는 것에 힘써야 한다. 공산당은 농민들의 징세 제한과 임대료 삭감을 위한 투쟁을 지원하고 조직해야 한다. 당은 전쟁 위협에 대항하는 농민들의 혁명적 투쟁운동을 활용해야 한다. 당은 일본의 모든 피착취자의 일본국의 봉건적 특성의 청산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이끔과 동시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전환에 관한 일반적 관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산당은 일본 식민지의 해방 운동과 긴밀한 연결을 유지해야 하며 그들에게 모든 가능한 사상적 그리고 조직적 지원을 빌려줘야 한다.
공산당은 리더십에서의 지금까지 최악의 불운과 결점, 즉, 종파적 정신을 전력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대중과 더 가까이’라는 슬로건은 지금 일본에서 매우 중대하다.
특히, 이 연결에서, 청년 사의의 완전한 노동의 부재는 가능한 한 빨리 극복되어야 하는 가장 심각한 오류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 일은 임박한 전쟁 위협과의 연결에서 특별한 중요성을 가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산당은 국제 혁명가의 조직으로서, 현재에 가장 중요한 임무, 즉 일본의 중국 간섭과 소련에 대항한 전쟁 준비에 반대하여 싸우는 것에 당의 모든 기력을 소모하여 이행해야 한다.
이에 기반하여, 일본공산당은 이하와 같은 활동계획들을 실행하고 이하와 같은 슬로건을 제시해야 한다:
1.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에 맞서 싸우자.
2. 중국 혁명에서 손 떼라.
3. 소련의 방위를 위해.
4. 식민지에게 완전한 독립을.
5. 국회의 해산.
6. 군주제의 철폐.
7. 18세 이상 남녀 모두에게 보통선거권을.
8. 집회, 결사, 연합 등의 권리. 언론 출판의 자유.
9. 8시간 근무.
10. 실직자 보험.
11. 반(反)노동법의 폐지.
12. 천황, 지주, 정부와 종교기관의 사유지의 몰수.
13. 누진소득세의 도입.
이러한 부분적 요구와 슬로건은 노동자 농민의 정부의 슬로건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슬로건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슬로근의 체계적 프로파간다의 도움이 있어야만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정치적 교육, 노동자 농민의 블록의 조직, 그리고 참된 혁명적 대중투쟁의 준비에 있어서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요구를 위한 투쟁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투쟁은 건전하고 사상적으로 일관적인 레닌주의 규율, 중앙집권화된 대중 공산당, 전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어깨를 맞대고 행진하며 세계 공산당과 함께 싸워야만 성공적일 것이다.
일본 대표단에 의한 그들의 실수에 대한 인정과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지시와 결정의 전적인 도입은, 일본 공산당이 당 내부의 일탈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작업에서의 정확한 정치적 그리고 조직적 과정을 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역사에 의해 제시된 원대한 임무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증표이다.
출처- INTERNATIONAL PRESS CORRESPONEDNCE vol. 8 No.2 12th January 1928, p50~54.
각주
1.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Executive Committee of Communist International
2. 원문 mills
3. 원문 State Capitalism
4. 원문 The Mikado
5. 원문 The Seiyukai
6. 원문 The Kenseykai
7. 약 4451.54제곱미터
8. 원문 subjective revolutionary situation
9. 원문 objective revolutionary situation
10. 원문 military royal cliques
11. 원문 power of vacillation
12. 원문 petit-proprietor
13. 원문 semi-proletarians
14. 원문 craft differences
15. 원문 craft division
16. 원문 Economism
17. 원문 liquidatory tendencies
18. 야마카와 히토시, 山川 均 1880.12.20~1958.3.23, 대중운동과의 연결을 중시한 ‘방향전환론’ 이른바 야마카와이즘을 제창함.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론의 중심이 되었음. 후쿠모토이즘에 따라 재건된 공산당에 거리를 두고 불참하여, ‘기회주의자’, ‘해당주의자’등의 비판을 받음.
19. 원문은’Nihiroto Party’이나, 정확히 그런 당명은 보이지 않으나 문서에 드러난 특징을 고려할 때 일본노농당일 개연이 높다고 보임. 오탈자로 추정
20. 후쿠모토 카즈오, 福本 和夫 1894.7.4~1983.11.16, 제2차공산당기의 간부이자 그 이론적 지도자. 추상적이고 난해한 레토릭을 사용한 문장이 지식인의 인기를 끌었으나, 코민테른의 27년 테제(본 문서)에 의해 후쿠모토이즘이 비판되어 실각함
21. 원문 Rodo sodomei 일본노동총동맹, 2차대전 이전의 노동조합 전국조직. 여러 차례 분열되어 중일전쟁시기부터는 제국주의에 협력했음.
22. 원문 Nomin kumiai, 전일본농민조합연합회
23. 원문 Hiogikai, 일본노동조합평의회, 1920년대의 노동조합
24. 원문 Nichiroto, 쇼와 시기의 중도파 무산자 정당.
25. 원문 Ronoto 노동농민당, 2차대전 이전의 일본의 합법 좌익 무산자 정당.
26. 도무지 뭔지 모르겠음. Toitsu는 ‘통일’일 가능성이 높고, Domai는 domei, 즉 동맹의 오타일 가능성이 있는 것 같은데 ‘통일동맹’이란 1920년대 이전에 존재한 ‘합법’단체에 대한 기록을 못 찾음. 기껏해야 한국항일전선통일동맹이라는 조선 단체 정도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게 맞나 싶음. Domai를 그 자체로 받아들여도 그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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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에 코민테른에서 일본공산당내의 '야마카와이즘'과 '후쿠모토이즘'을 둘 다 비판하기 위해 쓰인 일본공산당강령입니다. 이전의 강령들이 정말 강령 그 자체에 가까웠던 것에 비해 27년 강령은 비판에 초점이 더 맞추어져 있는 듯 합니다.
다음에는 31년 강령초안으로 찾아뵙겠읍니다.
개추
참고로 일본어 원문을 못 구하고 영어로 번역된 판본을 구해서 중역한 것이라 오류가 많을 수 있읍니다. IPC판본 자체도 오역이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만, IPC판본밖에 구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지적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