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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게 된 동기

늙은 '학생' 에서 젊은 '선생' 으로 변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익히 들어온 바 있기는 하지만, 이 사회에서 인문학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실감하고있다. 도대체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자가 설 자리가 있는가.이 질문에 나는 학생시절과는 달리 매우 회의적인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지원금이 부족하거나 사람들의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 사회가 인문학에 몰두하기에는 매우 좋지 않은 풍토라는 데 있다.

원래 어느 나라에서나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란 겉으로는세상사에 초연한 체하지만 여타의 범용인(用人)들과 하등다를 바 없이 늘 자신의 몫을 챙기려고 바둥거리는 군상들이다. 금전적으로는 넉넉치 못하더라도 이름값만큼은 ..... 두둑이 챙기겠다는 심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때이들은 모순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들의 일상적인 작업이란 너무도 원리적이고 추상적이기에 그것을 통해 '세속적 명예 를얻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따라서 이 전통적 유형의 지식인들은 자신의 고루한 작업과 사회적 요구의 접점을 찾아내려끊임없이 고심하며, 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활로를 개척해가는가는 사실상 그 사회의 전반적 풍토에 달려 있다고 할 수있다. 한 사회가 활기 있게 상승해갈 때 지식인들은 그 선두에 서서 원대한 목표를 제시하고 또 사회가 몰락해갈 때는 초월적 진리라는 고액 주식에 투자함으로써 오직 후대에 그 주가가 폭승하기만을 고대하기도 한다.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지식인들에게 어떠한 유형의 행위를고무하고 있는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인문학자들중 두 부류가 이목을 끈다. 첫째는 아카데미즘의 구름 덮인산봉우리에서 내려와 '민중 들과 함께 호흡하며 가련한 그들에게 자신의 지고한 깨달음을 설파하는 선각자들이다. 이 소신 있는 자들, 우리 삶의 스승과도 같은 존재는 뜻을 널리 알리고자 난해한 경전을 뒤로 하고 지극히 '민중적인 언어로민중의 삶을 말한다. 거룩한 그들에게는 민중의 세계를 지배하는 온갖 조야한 것, 저속한 것, 신기한 것들도 민중의 이름으로 다 포용할 수 있으며 오히려 거기에서 삶의 소박한 진실을 발견한다. 그들은 민중들의 매체 특히 TV와 영화를 사랑하여 그것에 대한 자신의 애정 어린 관심을 피력하

며 - 민중들은 기기에 감동한다. 심지어는 그곳에 출연하기까지 한다. 따라서 그들은 스타 연예인처럼 민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거나 아니면 사회적 기나 폭력 등에 대한 불문 를 신운화의 전 사로 추앙된다.

이들은 주로 학생 시절의 화려한 경력을 지닌 자들로 과거와마찬가지로 현재에도 사회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 그들은 때로는 게릴라 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째 온 누리의 문화전선에 신출귀몰하면서 파괴적인  언어의 총기를 난사하거나 아니면 좀더 진지하고 근엄한 자세로 사회현실에 대한 준엄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데 이들의 어투에는 교수 연구실의 퀴퀴한 책 냄새가 배어 권위를 더한다

이부류의 지식인들은 기회주의를 거부하고 선명한 정치적 목표를 제시함으로 여타의 소심한 골방 지식인들 위에 우뚝 설 수 있게된다.

일반 사람들의 흥미를 돋울 수 있을 정도로 재치 있는 감각도 부족하여 통렬한 사회 비판을 행할 능력도 용기도 결여된나로서는 그와 같은 방식말고는 지식인들이 활로를 개척할 수없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그처 밉살스러울 뿐이다. 얼마 남지않은 전통적 의미의 지식인층에 속하는 인문학자는 그 중에서도 가장 골동품 같은 대한 역사가는 과연 한국 사회에서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가? 그들이 오랜 세월 영위해온 일상적 노동이 이처럼 홀대받고 오로지 대중의 천박한 취향에 영합하거나 선명한 정치적 입장을 떠벌여야만 성공 할수 있는 이 사회는 나와 같이 아직 나무만을 보고 숲을 보지못하는 신한 인문학자에게 얼마나 황량한 민둥산인가?주변머리 없는 나는 어차피 독자의 기회에 부응할 재주가없다면 아예 노골적으로 그것을 저버리자는 약의를 갖월 되었다. 사실 악의는 용기의 못난 사촌 여동생이다. 현실적 요구의 부정이라는 소극적 방법을 통해 대안을 찾으려는 악의를갖기 위해서라도 내게는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왜냐하면그것은 외로움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판적인 독자는 혹 내가 프리드리히 니체가 가히 영웅적으로 수행했던반시대적 고찰을 흉내내려 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능력을 요구하는것이며, 설사 내가 운좋게 그런 잘난 능력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나 스스로 그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한 '금기를 깨는일이야말로 바로 독자가 기대하고 있는 바이기 때문이다.

나의 판단으로 보수 혁명'은 위와 같은 의도에 가장 걸맞은 주제 중의 하나이다. 그것의 일견 형용모순적인 명칭 때문에 이를 통해 남다른 정치적 전망을 제시하려 한다든가 아니면 흥미진진한 기상천외의 지적인 스펙트럼을 펼치려 한다는갖가지 추측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미리 독자에게 밝히건대 이 책은 고답적이며 학술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나의 연구 영역인 독일 지성사에서 중요한 한 장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가능한 한 지루하게 그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특별한 현실정치적 전망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단지 몇 가지 새로운 정보만을 얻게될 것이다. 만약 이처럼 지극히 무미건조한 내용을 예상함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의 책장을 넘길 권리가 있다.

보수혁명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