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에티엔 발리바르(2011; 2014), 장진범 역(2017), ‘공산주의’와 ‘자유’는 양립할 수 있는가?, 웹진 인 무브
https://en-movement.net/60?category=733236
네 번째 공산주의를 이끄는 이념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앞선 공산주의들의 일부 요소를 보존하면서 그 불확실성들과 모순들을 제어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가난도, 평등도, 사회나 사회화도 아닌 공산주의. 나는 그것이 개(인)성individualité 또는 개인화/개성화individualisation의 공산주의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에 이끌린다. ...
[하지만] 맑스의 문헌들에는 공산주의가 개인의 만개 가능성을 열 것이라는 다른 관념 역시 있다. 이 질문은 맑스에게서는 매우 추상적이지만, 오늘날에는 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를 제기하도록 강제받는데, 왜냐하면 오늘날의 사회에는 거대한 모순이 있으며, ... 이 모순인즉, 개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실현하고, 따라서 일정한 자율성을 보유할 수 있게 허용해 준 사회적 조건들은 발달했는 데 반해, 개인적 자유와 자율성을 뒷받침하는 조건의 파괴는 ... 오늘날 극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 그리하여 개인은 자기만의 삶을 경영하는 소기업가처럼 쉼없이 처신하는 가운데 각종 시장에서 자신의 자격증이나 노동력을 협상하라는 독촉을 받는데, 반면 현실에서는 개인의 독립(성)과 자기통제를 뒷받침하는 모든 사회적 조건을 박탈당해버렸다.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것은 이런 지반 위에서다. 지금 이 순간 신자유주의가 공격하는 제도들의 방어에만 몰두하는 것은, 물론 아주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대안은 거기에 있지 않다. 무엇보다 먼저 관련자들의 저항과 투쟁, 상상에서 출발하여 이 지반 위에서 발명해야 할 새로운 것이 있다. 근본적으로 여기에 내가 제안하고 해석하고 싶은 것, 곧 현존하는 상태를 폐지하는 공산주의라는 현실적 운동이라는 통념이 있다. 나는 ‘공산주의 사회’라는 이념에 과도하게 집착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것이 장차 존재할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그 대신 내가 훨씬 관심을 갖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효과에 맞서 창출되는 연대들, 사회의 투쟁들이다. 거기에 가난, 평등, 사회화 같은 오랜 이념들의 무언가를 인계받은, 그러나 오늘과 내일 새로운 것을 덧붙이려고 노력하는 실천적 공산주의가 있다.
원문
https://en-movement.net/60?category=733236
-자유주의자-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발리바르가 독특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텍스트를 직접 읽어보니 확실히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칭하는 사람 중에 유별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