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국가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공부하는 사람—학자와 학생’에 대한 존경을 표해왔다. 이런 전통은 대한민국에서도 지속된다. 주요한 민중, 민주항쟁에서 학생들이 투쟁의 선봉에 섰다. 학생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배움에 대한 열의가 강했다. 4.19 당시 한국의 경제수준은 매우 열악했음에도 교육수준은 높았는데, 이는 혁명의 성공에 기여했다. 문자를 읽고 쓸줄 아는 광범위한 민중들은 혁명의 내용을 쉽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학생의 안타까운 죽음이 혁명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4월혁명에서는 마산상고생 김주열이, 6월항쟁에서는 연세대생 이한열과 서울대생 박종철이, 5월투쟁에서는 명지대생 강경대를 비롯한 열사들의 죽음이 국민들을 분노케했다. 공부하는 사람마저 무자비하게 죽이는 정권을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렇듯 공부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은 남한 민주화, 민중운동 전반에 긍정적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한계도 내포한다. 학생에 대한 존중은 곧 학생이 아닌 사람을 덜 존경한다는 의미도 가진다. 육체-비숙련 노동에 대한 멸시가 그런 의식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배움에 대한 열망은 학군, 학벌주의, 대학서열화로 볼 수 있듯 평등을 위협하기도 한다.
학생의 안타까운 죽음이 혁명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4월혁명에서는 마산상고생 김주열이, 6월항쟁에서는 연세대생 이한열과 서울대생 박종철이, 5월투쟁에서는 명지대생 강경대를 비롯한 열사들의 죽음이 국민들을 분노케했다. 공부하는 사람마저 무자비하게 죽이는 정권을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렇듯 공부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은 남한 민주화, 민중운동 전반에 긍정적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한계도 내포한다. 학생에 대한 존중은 곧 학생이 아닌 사람을 덜 존경한다는 의미도 가진다. 육체-비숙련 노동에 대한 멸시가 그런 의식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배움에 대한 열망은 학군, 학벌주의, 대학서열화로 볼 수 있듯 평등을 위협하기도 한다.
마지막 문단 존경과 존중 바꿔서 보길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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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하면 ‘처음처럼’만 생각난다..
한계가 있지만 혁명의 불씨를 일으킨 큰 의의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