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이뤄진 모든 연구에 의하면 독일과 다른 선진국에서 학교 등 교육 체계를 성공적으로 수료하고 노동 시장에서 성공한 사람과 사회적 지위는 큰 관련이 있으며, 특히 부모의 수입에 크게 좌우되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ED)의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는 특별히 경제·사회·문화 지위 지표(Index of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Status, ESCS)를 개발했다. 이것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요소를 고려하여 학생의 출신 가정이 어떤 사회적 지위에 속하는지 파악하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울 지경이다. 직업학교(Haupstschule)에 다니는 학생 가운데 45퍼센트가 ESCS 하위 범주에 속하고, 인문계 학교(Hymnasium)에 다니는 학생 중 절반은 ESCS 상위 범주에 속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누가 대학 수준의 학문 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물었을 때의 숫자다. 독일 연방 정부의 제2차 「가난과 부에 관한 보고서(Armuts-und Reichtumbericht, ARB)」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속한 가정에서 출생한 자녀가 나중에 대학 수준의 교육을 받을 기회는 낮은 지위에 속한 가정에서 출생한 자녀보다 7.4배나 많다.
만일 누군가 이런 숫자는 사회적 요소가 아니라 '유전적 재능'에 기인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는 틀렸다. 물론 나를 포함하여 누구도 다양한 사람이 서로 다른 자연적 재능을 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평균 이상의 교육을 받았고 자녀도 어린 시절부터 푱균 이상의 인지 능력을 보여준다고 해도, 가난한 집 아이들은 이미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가난을 체험해야 하고, 이어지는 교육 과정에서 소질과 재능을 충분히 펼칠 기회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이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왜냐하면 물질적 가난은 분명히 아주 어린 나이부터 아동의 행동 가능성과 활동 범위를 크게 제한하기 때문이다. 친구를 원하는 만큼 집에 초대할 수도 없으며, 동물원 등으로 마음대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예외적인 일에 속한다. 어린이 축구 클럽 등에 가입하려면 대개 돈이 들고,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 장난감과 아동 도서는 아무튼 비싸다. 이 모든 것이 가난한 배경을 지닌 아이들의 학습 공간과 체험 공간을 상대적으로 좁게 만든다. 그래서 이미 입학할 때부터 초등학교 1학년생의 작은 어깨에 큰 부담을 지우게 된다.
선진국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인도의 경제학자이자 개발이론가인 아마르티아 센은 앞 장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경제적 예속은 사회적 예속의 온상이 된다."라고 밝혔다. 이른바 '지식 사회'라고 일컫는 사회에서, 특히 개인이 미래에 좋은 직업을 얻으려면 오직 자격 증명서와 졸업장에 의존해야 하는 세상에서, 교육 체계의 실효성(Durchlässigkeit)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 더 많은 말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독일에서 직업학교의 발전과 직업학교 졸업생들의 운명을 들여다보면 교육 체계와 이어지는 노동 시장에서 하죄거 배제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알 수 있다. 내가 학교에 들어갈 때만 해도 독일에는 (초등학교와 직업학교를 합쳐 6~14세 학생이 다니는) '국민학교(Volksschule)'에 대략 학생들 3분의 2가 들어갔다. 직업학교는 철저히 실천적이고 현장 중심의 교육을 실시해서 숙련공을 배출하여 졸업생들이 직업을 수월하게 얻도록 만드는 곳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물론 내가 어린 시절부터 이미 학교 풍경이 변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2006년에 이러러서 직업학교가 그동안 얼마나 극적으로 발전했는지 알게 되었다. 트리어에 있는 한 직업학교 교장선생님이 쓴 공개 편지가 계기가 되었다. 그는 현재 교육 현장의 상황에 주의를 끌고자 편지를 썼다. 그에 따르면 졸업생 가운데 단지 20퍼센트만이 견습생 훈련 과정(Ausbildungrsplatz)으로 진출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학교의 책임자들을 만나 대화했고, 정확히 홍보하고 교육 현장의 상황을 바로잡는 일에 도움을 주었다.
직업학교는 교육 체계의 가장 큰 패배자다. 오늘날 직업학교 학생들은 4분의 1 이상이 일 년을 채우지 못한다. 특히 도시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불우한 가정 출신으로 가정에 다양한 문제가 있거나 이민자들이다. 수많은 학생이 동기부여되지 않은 채로 학교에 오고, 그런 학생들에게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도 지원하지도 못한다고 교장 선생님들은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재능을 펼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하여 직업학교는 최근 몇 년간 점차 '휴식학교(Restschule)'라는 별명을 얻었다. 궁극적으로 교육받을 능력이 없는, 특별히 취약한 학생들을 모아놓은 곳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육체 노동이나 산업현장의 직업에까지 인문계를 졸업한 사람들이 몰려드는 오늘날, 직업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이 견습생 훈련의 자리로 진출하는 일이 도시에서는 특히 어려워졌다.
이렇게 미래가 부이지 않으니 직업학교 학생들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숫자가 학업을 완전히 포기하고 학교를 그만둔다. 전반적으로 오늘날 매 학년 약 8 퍼센트의 학생들이 학교를 떠난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수가 직업학교 학생들이다. 그들은 묻는다. 나중에 일자리를 얻는 길이 닫혀 있는데, 졸업장은 따서 무엇하나요?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교육 체계에서 배척되고 나아가 경제 체제에서 배척된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물론 이것은 독일만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다. 사회학자들은 최근 선진국에서 이런 위험한 추세를 공통으로 관찰하고 있다. 대개 일반 대중은 사회적 폭탄이 발생할 때가 아니라 발화되고 폭발했을 때에야 비로소 주목한다. 2005년 파리의 소요 사태는 극적인 현장이었다. 파리 등 프랑스 대도시의 변두리 빈민가를 뜻하는 '방리유(Banlieue)'에서 폭동이 발생하여 수천의 젊은이들이 도시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경찰과 진짜 시가전을 벌였다. 폭동의 결과 자동차 1만여대가 불탔고, 학교와 관공서 300여 곳이 파괴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부분적으로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해야만 했다. 폭동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중앙 경찰과 지방 경찰 1면 명 이상이 투입되었고, 진압 작전 중에 200명 이상이 중상을 입었다. 폭도와 구경꾼 사이에서도 많은 수가 부상을 당했다. 유감스럽게도 최악의 경우마저 발생했다. 불붙은 쓰레기통을 끄려던 어떤 연금수령자가 폭행당하여 사망하고 만 것이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너무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증오와 끔찍한 폭력이 폭발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사회학자들과 사회복지사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들은 사실 최근 몇 년간 방리유의 청소년이 겪는 사회적 문제와 위험성을 지적해왔다. 공식적으로 프랑스에는 750개의 '민감한 도시 구역'에 거의 500만의 사람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부류가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 출신인 이민자들이다. 방리유 청소년들의 실업률은 거의 40퍼센트나 된다. 성적이 아무리 좋더라도 변두리 출신 학생들은 견습생 훈련 자리를 얻지 못한다. 독일처럼 이렇게 미래가 없는 젊은이들은 세상을 부정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15만명의 학생이 학교를 그만둔다.
그 젊은이들은 대개 주변 사회에서 자신을 위한 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들은 한가운데에 살고 있지만 함께하지는 못한다. 가난에 대한 새로운 사회학적 연구는 이런 현상을 '배척(Exklusion)', 곧 사회 배제의 개념으로 파악한다. 현대의 사회적 갈등은 같은 사회에 살면서도 사회 중심부의 여러 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데서 비롯한다. 그들은 경제적·문화적, 더 나아가 정치적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다. 옛날의 사회 문제는 계급투쟁을 다뤘다. 그것은 '위'와 '아래'의 사회적 갈등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회적 삶에 '들어간'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 묻는다. 이것은 '통합(Inklusion)'과 '배제'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배제가 점점 '물려받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교육 체계는 사회적 약자를 완전히 거부하기 때문이고, 노동 시장은 그들에게 기회를 거의 주지 않기 때문이며, 복지 국가는 그들에게 몫을 나눌 일관된 기회를 제공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독일과 선진국 대부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배척 현상은 최근 수십 년간 만연한 대량 실업이다. 실업은 당사자에게 혹독한 운명의 타격일 뿐만 아니라, 대규모 사회적 현상으로서 전체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독일인처럼 잘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31년 당시 세계 경제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비오 11세 교종은 사회적 회칙 『사십주년』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실업이, 본인의 재임 기간 동안 겪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특히 광범위하고 장기적이며 무서운 두통거리이다. 실업은 노동자에게 불행과 유혹을 유발하고, 각국의 번영을 파괴하고 전 세계에 걸쳐 공공질서와 평화와 안녕을 위태롭게 한다."
당시 세계 경제 위기로 인해 독일만큼 타격을 입은 나라는 없었다. 1931년 당시 '독일 제국'의 실업률은 평균 23.9퍼센트였고, 1932년에는 30.8퍼센트였다.
교종이 이런 대량 실업의 위험성을 경고한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1933년 1월 30일에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독일의 수상이 되어 권력을 차지했다. 그날 그의 돌격대(SA)는 횃불을 들고 행진하며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소름 끼치는 재앙의 전조가 퍼져나갔다.
나는 결코 국가사회주의(나치)가 세계 경제 위기와 그에 따른 대량 실업 사태의 결과였다고, 또는 필연적 결과였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동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당시에 활약했던 많은 기관과 개인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히틀러와 그의 동지들은 특유의 강렬한 구호를 앞세워, 실망하고 근심하고 희망이 없던 거대한 무리를 독수리처럼 이끌고 돌진했다. 그들은 사람들의 실존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약한 국가'를 상대하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마르크스(Reinhard Marx) 추기경, 《자본론(Das Kapital)》 한국어판 148-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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