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에서 수원방향으로 가다보면 도로에서 우연히 보게되는 장소가 있다. 그곳이 바로 한국전쟁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다국적군을 편성하여 참전했다. 총 16개국이 참전했는데, 이 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프랑스도 포함되어 있었다.프랑스가 한국전에 참전한 것은 1950년 11월쯤이었다. 부산항에 상륙한 프랑스군은 중공군의 참전 이후 그들의 진격을 막는데 투입됐다.
프랑스군이 본격적으로 투입된건 1951년 1.4후퇴 이후였다. 이들의 활약은 중공군의 공세를 뒤집고 반격에 나섰던 지평리 전투가 대표적이다. 그 이후에도 휴전협정 과정에서의 38선 부근 전투에서도 참여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프랑스군은 총 4,000명이다. 이 중 288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부상자까지 합치면 총 1,124명의 사상자를 냈다. 당시 참전했던 인물로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드골 휘하의 자유 프랑스군으로 참전했던 랄프 몽클라르가 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위에서 언급한 지평리 전투에서 활약했다고 한다. 아무튼 프랑스 또한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유엔군 치고는 적잖은 사상자가 나왔던 것 같다.
그러나 한국전쟁에 참전한 프랑스군을 자유투사로 얘기할 수 있을까? 동시대에 프랑스가 참전했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전쟁을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면죄부를 주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거기다 한국전쟁과 같이 진행되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는 '자유주의 대 공산주의'의 대결로 포장하면서 미국의 지원을 얻어냈고, 자신들의 식민지화 정책을 합리화 했다.
이런 점을 보았을때 한국전쟁 자유수호 운운은 우습기 짝이 없다.또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프랑스군은 휴전 이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투입되기도 했다. 그리고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보 응우옌 잡 장군이 이끄는 혁명군대에게 패배했다. 또한 그 시기 이승만은 "우리 자유우방 프랑스를 돕기위해 인도차이나에 한국군 1개 사단을 파병하겠다."라며 미국에게 빌었다.
이런 역사를 알면 수원에 있는 기념비는 그냥 우습다. 용인에 터키군 참전기념비가 있다고 한다. 다음에 한번 거기도 방문해보고 싶다. 아무튼 오늘의 관광 단상을 마치도록 하겠다.
프랑스군이 본격적으로 투입된건 1951년 1.4후퇴 이후였다. 이들의 활약은 중공군의 공세를 뒤집고 반격에 나섰던 지평리 전투가 대표적이다. 그 이후에도 휴전협정 과정에서의 38선 부근 전투에서도 참여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프랑스군은 총 4,000명이다. 이 중 288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부상자까지 합치면 총 1,124명의 사상자를 냈다. 당시 참전했던 인물로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드골 휘하의 자유 프랑스군으로 참전했던 랄프 몽클라르가 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위에서 언급한 지평리 전투에서 활약했다고 한다. 아무튼 프랑스 또한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유엔군 치고는 적잖은 사상자가 나왔던 것 같다.
그러나 한국전쟁에 참전한 프랑스군을 자유투사로 얘기할 수 있을까? 동시대에 프랑스가 참전했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전쟁을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면죄부를 주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거기다 한국전쟁과 같이 진행되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는 '자유주의 대 공산주의'의 대결로 포장하면서 미국의 지원을 얻어냈고, 자신들의 식민지화 정책을 합리화 했다.
이런 점을 보았을때 한국전쟁 자유수호 운운은 우습기 짝이 없다.또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프랑스군은 휴전 이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투입되기도 했다. 그리고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보 응우옌 잡 장군이 이끄는 혁명군대에게 패배했다. 또한 그 시기 이승만은 "우리 자유우방 프랑스를 돕기위해 인도차이나에 한국군 1개 사단을 파병하겠다."라며 미국에게 빌었다.
이런 역사를 알면 수원에 있는 기념비는 그냥 우습다. 용인에 터키군 참전기념비가 있다고 한다. 다음에 한번 거기도 방문해보고 싶다. 아무튼 오늘의 관광 단상을 마치도록 하겠다.
비추 누르려다 추 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