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노연에 있는 《백철현의 조잡한 진영논리와 흑백논리를 비판한다》를 보게 됨 그 내용 중에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내용을 인용하자면 이렇씀.
(백철현은 스탈린을 “2차대전에서 히틀러 나찌즘을 분쇄한 최고 사령관”이라고 치켜세운다. 그러나 반나치 투쟁과 관련한 스탈린의 전력은 오히려 아주 해악적이었다. 스탈린이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 사이에 독일공산당에 지령한 ‘사회파시즘’론은 최악의 재앙이었다. 사회민주주의가 파시즘의 일종(또는 2중대)라는 것이었다. 이 초좌파적 종파주의 정책은 독일 공산당원들이 독일 사회민주당원들과 반(反)나치 공동전선을 구축하기를 거부하게 했다. 독일 노동자 운동의 치명적 분열 덕분에 1933년 1월 히틀러는 손쉽게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도 스탈린이 내세우기에는 볼품없는 시간이었다. 스탈린은 처음에 나치와의 동맹 유지에 미친듯이 매달렸다. 그래서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었다. 1941년 4월 스탈린은 대(對)히틀러 제스처 정치의 일환으로 코민테른 해체를 계획했다. 심지어 추축국들(독일, 이탈리아, 일본)과 협정을 맺으려고도 했다.
반면, 소련 인민은 엄청난 용기로 히틀러에 저항했고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28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스탈린의 리더십은 소련 인민의 저항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특히, 스탈린이 전쟁 직전에 주요 군사 지도자들을 대거 숙청하는 바람에 소련의 전투 수행 능력이 크게 저하됐다. 군 최고 지도자 미하일 투하체프스키의 처형이 대표적인 사례다. 투하체프스키는 1918∼1921년 내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붉은 나폴레옹’으로 불렸다. 그러나 스탈린은 1937년 ‘나치 독일의 스파이’, ‘군사적 트로츠키주의 음모’ 혐의로 투하체프스키를 처형했다. 이런 숙청들의 결과로 스페인과 극동 지역에서 전쟁 경험을 쌓았던 군 간부들이 거의 제거됐다. 제2차세계대전 개전 초기에 소련이 독일에 일방으로 밀렸던 것도 주로 이 때문이었다.
또, 소련인 희생자 중 상당수가 자기 편에 의한 희생자였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NKVD(내무인민위원부; 보안경찰)가 겁이 나서 도망치는 병사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전쟁은 소련의 승리라기보다는 독일의 패배였다.)
원문은: 백철현의 조잡한 진영논리와 흑백논리를 비판한다
https://wspaper.org/m/21869
라는 것인데, 본인들이 수정 트로츠키주의를 추종하는 것과는 별개로 역사적 사실과 학계의 주장까지도 부정하는게 느껴짐. 스탈린이 처음에 나치와의 동맹 유지에 미친듯이 매달렸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반공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일치함. 애초에 독-소 불가침 조약은 어디까지나 불가침 조약이었지 군사적 동맹이 아니었음. 서방의 배신도 굉장히 컸고. 그리고 추축국과의 4국 협졍을 맺지고 않았고, 애초에 1930년대 목표가 파시즘에 맞서 군비증강을 하는 것이었음.
본문에서 스탈린의 리더십이 소련 인민의 저항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건 진짜 제2차 세계대전사를 하나도 공부 안했다는 게 본문에서부터 느껴짐. 물론 독일군의 진격에 초반의 대응은 너무 속수무책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스탈린의 연설은 수많은 소련인민들을 전선으로 자원하게 만들었고, 이들은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영웅적으로 투쟁했음. 군부 숙청의 경우 대숙청 자체가 그렇듯이 억울한 희생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계급투쟁적 면모도 있었는데 그런 사실은 깡그리 무시. 그리고 스탈린도 상당한 지도력을 보여서 주코프, 로코솝스키, 바실렙스키 등과 같은 명장들을 잘 활용함. 이 점에서 본인의 군부숙청에서의 실책을 인정한 것이었고. 군사학자 데이비드 글랜츠도 모스크바 전투와, 스탈린그라드 전투 그리고 쿠르스크 전투에서 스탈린의 지도력이 효과를 보았다고 얘기했음.
마지막에 단 글도 웃긴게, 무슨 에너미 엣 더 게이트에 나오는 그런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활용한 거임. 실제로 소련 참전용사들은 그거보고 굴라그의 형벌부대도 저정도로 막장은 아니었다고 비판하고 항의했는데 뭘...........
계급 투쟁!!!엄청 많은 소련 인민들이 죽었군요.이때 선진노동자들이 많이 죽어서 문제 생겼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대독전쟁 시기 30년대 문화혁명 등으로 형성된 선진 노동자들이 대거 사망하였음. 그 빈틈을 비대화된 관료세력이 채워나가기 시작한 것 - dc App
비대화된 관료세력이 채워 나가다니 어허
2천 8백만이 죽었는데도 눈 깜짝 안하고 항복 안한 건 전적으로 스탈린 깡따구 덕분이라고 봐야
사건의 다층적 성격을 무시하면 저리도 판단할 수 있는건가 싶음. 그리고 노연 친구들은 "사회파시즘론" 이전에 독일공산당이 사민당에 통일전선을 제안한 사실은 전혀 언급을 하지 않더라.
노연은 본인들이 만든 국자론에 입각한 '답'을 미리 정하고 정세나 역사를 파악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음. 심지어 그 국자론조차 몽롱한 인상이라서 사회과학적 논의를 한다고 부르기도 부끄러움. 미친놈들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