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는 항구로 들어오는 커다란 증기선을 사랑했다. 강철로 된 몸과, 시커먼 매연의 냄새. 그녀가 증기선보다 사랑한 것은 그 안에서 나오는 것들이었다. 아렌델 시내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것들. 욕심 많은 영국 선원들에게 하루치 일당을 모두 주고 나서야 겨우 하나를 구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손에 쥐는 것만으로 즐거운 얇은 소책자들.

 

항구의 봉제 공장에서 열 네시간을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녀는 새로운 노동을 해야 했다. 그러나 엠마는 밤에도 기꺼이 일할 수 있었다. 그 노동의 결과물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본가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 온전히 자신에게서 나와 자신의 의지로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책을 읽고 필사하며 글을 써내려가는 일들, 엠마가 가진 생산수단은 누구도 빼앗지 못하는 것이었다. 밤의 노동이 시작되기 전에 엠마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앎에도 자신을 표현하지 못했던 어두운 날들은 밤을 소유함으로써 사라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엠마는 동지들을 만났다. 그조차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의 글을 등사기로 베껴내 읽고 묶어 자신이 맡은 구역 곳곳에 몰래 뿌렸다. 어떤 동지들은 경찰에 붙잡혀갔다. 그들은 마법을 부리는 미친 선왕의 영토, 아토할란의 경계로 추방되거나 광장 한가운데에 매달렸다.

 

그래도 엠마의 작업은 성공적이었다. 아렌델 전역을 얼음 운송 노동자들의 눈에 띄게 뿌려댄 것이 잘 먹혀들었다. 공장에서, 거리에서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춰 수군댔다. 누군가는 파업을 이야기했다. 가끔 군중 사이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엠마가 복사한 악보의 노래였다. 프랑스의 코뮌을, 국제 노동자협회를 위한 노래, 그러므로 온전히 노동자를 위한 노래였다. 엠마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아렌델-비요르그먼 왕가의 전제 왕정과 산업부르주아를 몰아내고 노동자가 주인이 될 아렌델.

 

하지만 그건 엠마의 것이 되지는 못했다. 흘리듯 뿌린 전단에 덜미가 잡혔다. 국왕의 남편, 얼음 운송업을 독점한 자본가 크리스토프 비요르그먼의 명령으로 전단과 책을 가진 노동자들은 해고당하거나 체포되었다. 엠마도 마찬가지였다.

 

구치소에서 엠마는 두려움에 떨었다. 울기도 하고 후회도 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이 어린 봉제공의 신념을 꺾진 못했다. 협박과 고문 속에서 엠마는 자기 자신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빼앗긴 삶을 되찾은 프롤레타리아에게 그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목숨을 앗아갈 수는 있어도 그 삶의 소유권을 빼앗진 못할 것이다.

 

재판정에서 예심판사는 엠마 리이스에게 질문했다. 이에 답하고, 그녀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예심판사는 손을 내밀며 저지했다. 엠마가 답할 말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