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정의당 좌파를 중심으로 성폭력 사태, 임금체불, 각종 의혹들이 폭발하는 상황, 지지율이 제자리인 진보정당과 이해하기 힘든 개념을 쏟아내는 한국 페/미니스트 운동, 진보정치에 관심이 없는 대중과 특히 갤러리의 다수를 차지하는 고학력 20/대 남성층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혁명 등 의회정치를 통하지 않은 방법을 통한 사회주의 실현이 당장 힘들다고 생각하고, 또 사회주의 운동을 관두기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 퀴어운동과 환경정치 등 신좌파들이 사회운동에 장애물이 된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배진교 등 정의당 내 우파나 진보너머 등 진보정당과 밀접하게 결합된 시민단체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비전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진보너머가 처음에 내세운 "다수 청년을 대변하는 정치"의 비전과 한국 페/미니스트들의 "검열적", "엘리트주의적"인 성향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분명 타당한 점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인원 구성으로는 그러한 정치를 실현시킬 만한 능력과 정치적인 로드맵이 부족하며, 실제로 무능한 행보를 보여 왔다. 진보너머에서 내세운 후보인 배준호가 정의당 비례경선에서 최하위권을 얻고, 정혜연은 전국위원에서 탈락했으며, 박창진은 3위로 결선도 통과하지 못한 채 대표 당선에 실패했다. 진보대중화를 이루겠다는 비전과 모순되게도 회원수는 100명을 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1. 고학력 20/대 남성들은 문재인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이에 뒤따르는 자영업자의 충격과 불경기를 직격으로 겪었으며, 이로 인해서 경제적인 이슈에서 재정보수적이고 구조적인 재분배적 해결책을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진보너머에서 경제정책의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논객 박가분은 대학원에서 현대화폐이론을 전공했으며, 일자리보장제와 슈퍼리치에 대한 세금 인상 등의 공약을 내고 있는데, 이는 청년의 입장에서 비현실적이고 포퓰리스트적이라고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고학력 20/대 남성은 유승민의 새로운보수당과 유사하게 MMT 등 비주류경제학에 의지하지 않는 전문가 집단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또, 진보너머는 강령상 진보 포퓰리즘을 추구하며, (성향상 격차에도 불구하고) 샌더스나 AOC 등 미국 좌파 포퓰리스트들을 롤모델로 삼는 경우를 많이 보이는데, 고학력 20/대 남성이 가장 싫어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팬덤정치와 포퓰리스트적 성향에 지친 사람들이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대안에 관심을 가질까?
2. 고학력 20/대 남성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소리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느끼며, 이를 위하여 의회정치 내에서 신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세력이 자신을 대변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진보너머의 구성원 대다수는 박가분/이석현 등의 석박사 출신 연구원, 정의당과 한국의 운동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이를 개혁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운동권/시민단체/정치 고관여층 출신이 대다수로 실제적 권력을 쥐고 청년 세대의 의견을 실제로 반영하여 정치효능감을 회복시킬 만한 위치에 있는 경우가 없다. 국회의원 하태경과 20명짜리 시민단체 회장 배준호 둘 중 어느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을 쥐고 더 적극적으로 청년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3. 진보너머의 활동가들은 20/대 남성의 경험을 공론화하지 못한다. 이전 문단에서 말했듯이, 진보너머의 구성원은 연구자거나 사회운동가 출신으로, 진보너머가 인터넷에서 좋아요를 받으면서 항상 마주치고, 조직하고자 하는 대학을 다니면서 스펙을 쌓고 취직을 걱정하는 "평범한" 20/대 남자들이 아니다. 진보너머가 인터넷 컴니티에서 주목받는 의견 역시 한국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비난이나 "PC주의"에 대한 반박에 그치며, 경제정책이나 비전, 생활의제 등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대다수 진보너머의 논평 역시 정혜연 대표 시기 일부를 제외하면 페/미니즘 관련 이슈에 대한 논평이 대다수이며, 논평의 청자를 청년 대중보다는 정치적으로 의미가 없는 젊은 페/미니스트 및 기성 진보정치인으로 두는 경우가 지나치게 많다. 대중에게 맞는 정치를 제공하고 그들에게 정치효능감을 주고 조직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경험과 당사자로서의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보너머는 그것에 실패했다. 대신 그들은 정치효능감이 이미 존재하고 아들뻘이 되는 20/대 진보정치가 쇠퇴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꼰대 586 참여계의 지지를 얻고 있다. 대단한 청년정치다.
4. 진보너머는 20/대 여성의 조직을 획득하기 힘들다. 20/대 여성은 생활 속에서의 오래된 성차별 경험과 페/미니즘 리부트로 인한 일정 수준의 의식화 경험, 또 돼지발정제로 대표되는 보수 세력과 디씨, 루리웹, 인벤, 펨코로 대표되는 같은 세대 남성의 세련되지 못함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진보너머가 주장하는 "반PC주의" 등의 메시지에 비해서 진보너머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대안이나 성차별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 등을 독자적으로 내세운 적이 없다는 점은 20/대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지나치게 축소하며, 자신의 일상에 존재하는 차별적 구조를 침묵으로 재상산하는 데 불과한 20/대 남성만의 조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진보너머는 경제적 불평등 의제를 내세우면 남녀 갈등이 사라지고 모두 진보정치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남녀의 경제사회적 배경 자체가 차이나는 상황에서 그런 말이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복지정책으로 진보세력을 통합하겠다던 주대환이 생각난다.
5. 진보너머는 복지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수준의 대책이나 구체적인 해결 방안 및 해결 사례를 논하지 않는다. 진보너머 선언문에서는 주거, 의료, 교육의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언급을 수 차례 하고, "엘리트 진보운동가가 PC주의에 매몰되어 민생의제를 챙기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수번 반복하지만, 그들도 다르지 않다. 현재 진보너머를 탈퇴한 정혜연을 제외하고는 보건의료 차원에서 현장 중심의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정책 실행 방향을 제기할 수 있는 인사는 없으며, 박가분을 제외한 나머지 회원 역시 대다수가 정치학이나 인문학 계열 출신으로, 그들이 원하는 실제 민생의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 방안을 주도적으로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인사는 거의 없다. 따라서 진보너머의 논평 역시 청년세대가 겪는 문제를 논하면서 이에 대한 진보너머의 대안을 소개하는 방안으로 쓰여지지 않고, 20/대 남성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캡쳐본이 올라왔을 때 빼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비난만으로 도배되는 경향이 있다.
6. 진보너머는 적대층으로 내세우는 586엘리트에 정작 비판을 제대로 못하고, 협력주의적인 세력에 힘을 붙었다. 이선옥을 비롯한 많은 안티페/미니스트들이 586 페/미니스트들의 위선을 비난하지만 정작 자신은 각종 논란을 일으키는 김용민에 붙어 아무런 비판 없이 가는 것을 생각해 보자. 20/대 청년이 김용민과 한패인 사람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할 수 있을까? 진보너머 역시 선언문에서 위선적인 586엘리트를 지목하면서 그들이 세대적 부채감으로 인해 PC주의를 주장한다는 주장을 편 경우가 있다. 하지만, 박가분과 진보너머는 정의당 내 천호선, 송치용 등 586엘리트를 대변하는 참여계와 행보를 같이하는 경우를 지나치게 많이 보였고, 우원식, 이인영, 우상호 등 비전문적인 정치로 20/대 남성의 공분을 사고 있는 민주당 내 "586엘리트"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들이 운동권으로만 자신의 인생을 규정하지 않는다"라면서 옹호하기까지 하였다.
7. 진보너머는 독자적인 정치적인 기획을 추진할 인적/물적 기반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타 정파와 연대하려는 방안을 거부하며 오히려 적대시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권수정을 PC주의자로 몰아 적대시하던 진보주의자들이 결집하여 정혜연의 서울시의원 당선을 좌절시킨 일들이 있겠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략적 제휴나 연대 등으로 이 상황을 타계하려는 노력을 하긴커녕 자신에게 맞지 않는 정파들에게 비난만을 계속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 비판이 정당한지를 떠나서 이러한 행보는 그들에게 일부 공통점이 있는 집단과 협력하여 그들이 원하는 정치를 추구할 방안을 제거시키며, 그들이 원하는 진보정치의 변화와 "PC주의" 반대 움직임으로 가는 실질적인 진전을 한 발짝도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고, 그들의 정치적인 역량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보인다. 결국 이러한 행보는 그들이 훗날 "그때 우리 말을 들었으면 이미 진보정치가 집권을 했을 텐데!"라고 탄식하는 데만 도움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안을 추구해야 할까? 나는 새로운 진보정치 조직에 대한 비전으로 다섯 가지를 생각해보고 싶다.
1. 남녀노소가 관심있어할 만한 보편적인 민생의제를 다루는 조직.
2. 활동가가 아니어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크고 조금 빻을 수 있는 조직.
3.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는 전문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 조직.
4. 체계적인 전달 체계를 가지고 프로페셔널하게 운영되는 조직.
5. 적극적 연대를 통해 결과적으로 중앙정치에 실제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조직.
빻다는게 뭐임
무언갈 빻았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이미지로 떠올리고 빻아지는 대상에 얼굴이나 뇌를 넣어보셈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목표치에 약간 미달할 수 있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