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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는 각각 한국영화와 R등급(19금) 영화라는 큰 제약 속에서도 세계적으로 크나큰 성공을 거둔 영화로 평가된다.
기생충의 오스카상은 말할 것도 없고, 조커 역시 역사상 R등급 영화 중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로 기록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 관람객들은 조커와 기생충을 비교하거나 혹은 비슷하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적으로도 비슷하며, 실제로 조커와 기생충을 비교하는 리뷰 유튜버 영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측면에서 두 영화는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첫번째로는 중립적인 부유층이다. (위는 기생충의 박동익이고 아래는 조커의 토마스 웨인이다)
이들은 흔히 영화에서 나오는 클리셰적 '부르주아'와 많이 다르다. 보통 영화에서 부유층은 주인공이 아니라면 아군의 물주이거나 호구 혹은 인성이 파탄난, 마치 사회주의 국가 프로파간다와 유사한 아주 사악한 자본가이다.
하지만 위 영화에서 둘은 그런 종류의 부자들이 아니다. 이들은 중립적이거나 혹은 오히려 선량한 축이 속하는 부자에 가깝다.
박동익은 아에 주인공 입에서 '선량하다'라고 언급이 되며, 실제로 백동익은 딱히 주인공에게 위해나 모욕을 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관객의 눈에는 후반부 이전까지는 적어고 잰틀하고 신사적인 부자에 가깝다.
토마스 웨인 역시 박동익보다는 부정적으로 묘사되지만, 그렇다고 사악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누군가를 죽이거나 암살을 사주하지 않으며, 심지어 조커에게조차도 처음 조우했을때에는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물론 결국에는 조커를 때리거나, 일방적으로 살인마 광대 (조커)를 비난한 점은 문제가 있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전자는 조커의 어머니의 망상에 오랫동안 꾸준히 시달렸다는 점. 후자는 하필 자신의 직원이 살해당했기 때문에 이를 '중립적인' 관점에서 볼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한 사항이다. 오히려 자선 기부가라고 묘사하는 점에서 그렇게 나쁘다고 볼 여지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완전히 선량한 인물은 아니다.
박동익은 '냄새'의 문제 때문에 본의는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주인공 집안을 무시하거나, 그저 주인공 가족의 모함만을 믿고 직원들을 해고하며, 비록 가족의 일이지만 엄연히 직장을 가진 주인공에게 주말 출근 및 감정 노동 강요하는 사실상의 갑질을 했다. 이는 영화에서는 가볍게 언급되는 부분이지만 그냥 무심결에 지나칠 수는 없는 부분이다.
토마스 웨인 역시 딱 봐도 불안정해보이는 조커를 형식상의 위로라도 해주는 대신 주먹질로 응수한다는 점. 고담 시장 후보임에도 자신을 향한 시위를 보고도 영화 감상을 하며 마치 고담 빈민층의 불만이 자신의 일이 아닌거마냥 무시하는 점. 그리고 조커 어머니와 토마스 웨인간의 암시적인 복선을 생각하면 그 역시도 굳이 선악을 나누면 악에 가깝지 선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는 단지 두 인물만 그런 것이 아니다. 비슷하게 위치의 최연교와 머레이 역시 완전히 선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일반적인 영화의 부유층 묘사와는 확실히 동떨어져있다.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으며, 그러면서도 작중에 중심에 놓여진 어쩌면 어울리지는 않지만 소 시민적인 부자들의 존재가 이 영화들의 첫번째 공통점이라고 본다.
두번째로는 악에 가까운 주인공들이다.
김기택의 경우는 사실상 위장 취업으로 백동익 집안에 들어 온 것이며, 그 위장 취업의 방법 역시 원래 취직을 하고 있었었던 기사와 가정부에게 없던 죄나 병을 뒤짚어 씌워서 해고시킨 다음에 취업했다. 이는 영화 상에서는 코믹하게 묘사하여 악을 가렸지만, 다른 영화나 드라마면 분명히 상당한 악인들의 비열한 수법으로 묘사될 내용들이었다. 그 이후에는 아에 집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사실상 무단 칩입하며 무단으로 남의 재산을 강탈하고 이를 이용하였다.
조커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살인! 비록 정당방위적 측면은 있지만 3명이나 살해했다. 그래놓고 일말의 죄의식을 느끼긴 커녕 즐거운 것마냥 춤을 추었으며, 어머니를 죽이는 패륜아 짓을 저지르고, 전 직장 동료를 잔인하게 찔러 죽였으며 심지어 경찰들을 간접 살인까지 했다. 그리고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도 머레이를 향해 총을 쏘았다. 즉 그 역시도 김기택보다 더한 살인마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런 부분을 별로 부각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빈곤하고 힘든 환경을 부각 시키며, 이에 대해 납득을 시키게끔 유도한다. - 몰론 그렇다고 정당화를 시키지 않는다.
또한 주인공 근처의 동료들 역시 선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아에 가족사기단이 된 김기택 집안은 말할 것도 없으며, 조커의 어머니 역시 사실 가정 폭력범이고, 그의 동료 역시 필요하면 주인공을 배신 할 수 있는 소시민이다.
그리고 이에 두가지 공통점이 마지막 공통점과 만났을때,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추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자들은 주인공에 의해 죽는다. 그들의 사회 역시 파멸한다.
결국 클라이막스에서 박동익은 김기택에게 살해당하고, 토마스 웨인 역시 조커가 만든 혼돈에 의해 살해당한다. 사실상 조커에 의한 간접적인 살인을 당한 것이다.
사실 이들이 살해당할만큼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당장 백동익의 죄는 가벼운 갑질과 오해로 인한 해고지만, 이게 살인을 정당화 할 정도일까?
토마스 웨인이 좀 오만했다고 그 것이 그의 끔찍한 죽음을 정당화 할 정도일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화 상에서도 개인도 사실상 이러한 살인에 이해하게 만든다.
수많은 불행한 사건으로 충분할 정도로 김기택의 감정을 극한으로 몰고 갔으며, 결국 어찌보면 당연한 백동인의 무례하고 무신경한 행동에 분노가 충격을 받아 확김에 살인을 하게 만들었다록 이해하게 만들었으며 끝내 영화 내 거의 모든 주연들이 파탄을 맞이하고 만다.
조커 역시 머레이의 모욕과 불안한 조커를 통해서 머레이를 살해하는걸 동조하게 유도하고, 불안한 고담 상황을 계속 암시적으로 보여주면서 도시를 파괴할법한 폭동이 일어나도 납득 하겠금 관객을 유도했으며, 어쩌면 그 폭동에서 토마스 웨인이 살해 당하는고 고담이라는 사회 역시 파괴되는것 역시 이해할 수 있게 유도한다
과거 대부분의 소설과 영화에서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은 대부분 살해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충분히 설명한 다음에 죽이는 것을 합리화 시킨다.
한국 교과서에 나오는 벙어리 삼룡이를 혹시 기억하는가? 삼룡이가 왜 방화를 저질렀는가? 그리고 그러면서도 지주가 자신을 쫒아냈음에도 과거에 많이 신경 써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살려 준 것을 기억하는가? 삼룡이가 노린 타겟은 어디까지나 자기를 괴롭힌 지주의 아들이다.
그 외에도 영화 베테랑에서 악역 부자가 어떤 끔찍하고 사악한 일을 저질렀는지 모두가 알고, 그 때문에 우리는 그 악역이 두들겨 맞는걸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수많은 매체에서 묘사되는 혁명과 체제 개혁은 결국 좋은 사회로 귀결되지, 조커와 기생충이 암시한거처럼 누구의 이득도 되지 못하는 파멸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두 영화화에서는 어떤 합리화도 포기했다. 그저 평범한 부자를 끔찍하게 살해했다. 그나마 있던 질서는 모두 혼돈으로 밀려나갔다.
그렇다고 주인공을 철저한 악역으로 만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관객들은 이 악역 주인공들을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마치 조커가 어려 세계 시위의 상징으로 쓰이는거처럼, 김기택의 우발적인 살인에 대한 여러 분석글처럼 말이다.
물론 단순한 영화상 감정 몰입 유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 몰입에 수많은 사람이 알면서도 따라서 몰입해준다면, 그건 단순한 영화상의 문제가 아니다.
죄없지만 조금 무례했던 부유층
책임은 다했지만 결국 악을 저지른 하층민
그리고 정당화 하기 어려운 살인에 대한 공감
무의미한 세상의 파멸
아마도 사람들은 이제 '나쁜 부자와 체제가 싫다'라는 감정을 넘어서
'죄가 있든 없든 무례한 부자 새끼들은 죽어도 싸며, 나에게 손해를 주는 체제는 일단 전복 되고 봐야 해' 와 같은 감정을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라고 과감하게 추측해본다.
실제로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양극화 현상. 그리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빈곤층으로 떨어질거 같다라는 절박감 속에 사는 시민들이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노력하지만 안되고 결국 범죄로 빠져드는 주인공 빈곤층에게 몰입하고, 그 반대급으로 '일단 죄는 없지만' 그러건 말건 자신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거 같은 부자를 처단하는 것에 공감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 이후의 혼돈조차 말이다.
즉 양극화 현상이 단순히 물질적인 차원을 넘어 사람들의 심리 차원에서조차 점차 일반적인 윤리의식보다는 좌파적으로는 계급적 의식 혹은 우파적으로는 질투에 가까운 의식 어쩌면 좌우를 떠나서 영화 말미에서 보여주는 허무주의적 의식에 사람들이 더 공감한다는 신호가 아마 이 두 영화가 유행을 타는 이유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는 좋든 싫든 과거보다 극단적인 의식에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 그냥 조커와 기생충 보고 느끼는거 써달라길래 써봄. 계급의식과 관련되어 있으니 정치갤이자 사회주의갤인 로자갤에 올려도 되겠지?
감사합니다. -(*★*)
다시 보니 맞춤법이나 오타가 좀 많네 밤 늦게 쓴 글이라 검토 안하고 올려서 미안함.
왠지 조커를 보면서 후반부에 쾌감을 느낀 이유가 설명되는 거 같아서 더 무섭네. 좋은 리뷰다.
프롤레타리아와 하층민의 승리가 아닌 공동몰락..
골든 정답. 그리고 이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게 어쩌면 이 영화가 가진 조금 소름 돋는 부분일듯. 모든 것에 좌절하여 그냥 이 세상을 야만으로 돌려 놓자라는 선동이 먹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