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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을 것이고, 그나마 그 대답 역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사회주의는 n분의 1 배급제인데 무슨 시장이냐는 뒷목잡을 소리를 할 것이고, 누군가는 중국을 언급할 것이며, 그나마 사회주의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깊은 이 일부만이 랑게 모형이나 유고슬라비아, 헝가리식 굴라시 사회주의를 언급할 것이다. 사실 필자 역시 '시장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시장사회주의에 대한 정의를 엄격히 내릴 수 없다. 다만 유고슬라비아의 경제학자 야로슬라브 바넥의 <참여의 경제>가 시장사회주의의 한 형태인 유고식 자주관리 사회주의를 보여주고, 시장사회주의에 대한 어느정도의 개념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이책의 서평을 쓰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에 대해서 언급하고 가야겠다. 내가 이 책을 발견한 것은 지난 여름, 학교 도서관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던 도중이었다. 나는 위키백과 등에서 찾아낸 수많은 시장사회주의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검색하면서 뭐라도 나오길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우연히 바넥을 검색했을 때 이 책을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 책을 입수하고 훑어보면서 느낀 감정은 '이 책 참 기묘하다'는 것이었다. '참여'의 경제라는 제목을 보고 지금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각 없이도 떠올릴 그 노오란 색이 눈에 띄는 표지, 이런 운동권 전집에 있는 것 자체가 수상하게 여겨지는 그 이름....'정갑영 옮김'. 나는 그의 이름을 살면서 두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한국경제출판사에서 냈던 전형적인 친자본적인 어린이 경제교육서가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그가 집필한 산업조직이론 교과서에서였다. 내가 아는 정갑영 교수는 이런 글을 쓸 사람이 아닌데? 연세대의 PD 운동권들이 그를 전설의 연세대 한총련 간부들이 있다는 아지트에 가둬놓고 번역이라도 시킨 것인가? 그런 미스터리를 안고 책을 넘겼다.


그리고 반년이 흘렀다. 그사이 나는 해야갤에서 사회주의를 선전하고 노동운동가를 추모하는 n행시로 갤러리의 임화가 되었다가 신상을 털려 계삭을 해야 했고, 1주일에 부르주아 학문의 글들을 네다섯편씩 읽는 강행군에 시달렸다. 대학원생노조의 산안법 개정 투쟁에 힘을 보태고자 이스타항공 해직노동자들의 농성장과 전태일 3법 통과를 위한 민주노총 중앙의 농성장 사이에서 한 소자본가가 반복재생하는 검찰과 하이트진로에 관한 장광설을 배경음악삼아 논문을 읽으며 농성에 힘을 보탰다. 학기가 끝난 후에는 당의 권유(라지만 사실상 활동가 정당에서 방구석투쟁이나 하는 룸펜들을 보다못한 당 중앙의 강요)로 당 기관지에 전공을 살린 글을 투고하느라 책을 읽고 정리할 새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반납기한을 하루 앞두고 책을 덮고 서평을 쓰려 한다.


바넥은 80년대 동구권의 정치경제적 민주주의의 확대를 요구하는 움직임과 서구권의 노동자협동조합과 우리사주조합의 성장,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민주화 운동 및 노동운동의 성장을 겹쳐보면서, 이것을 전세계적인 정치경제적 의사결정 참여 열의의 증가로 해석했다. 그는 이러한 운동이 노동자 자주관리사회로 나가는 여정에 있다고 보고, 이를 분석하고자 이 책을 썼다. 바넥은 유고슬라비아의 모습에 가까운 5가지 특성을 가진 노동자 자주관리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참여경제라고 이름붙였다. 참여경제는 노동자에게 평등하고 보편적인 기업 경영권과 공정한 기업 순이익 분배권 보장한다. 또한 사회가 기업을 소유하며 노동자가 기업을 경영하고 운영하나 기업의 자본을 처분하여 이익을 볼 수 없다. 각 경제주체는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으나, 정부가 필요에 따라 개입한다. 이 사회에서 노동은 단순한 생산요소가 아닌 경제적 주체가 되어 고용과 입사, 퇴사의 자유를 가지며, 해고는 합의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바넥은 이러한 사회가 시장경제를 채택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같은 경제적 효율을 보장하며, 노사간 이해관계 충돌이 줄어들어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감소한다고 말한다. 또한 경제활동의 동기가 이윤이 아닌 노동자 자신의 이익에 있기 때문에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 가능하며 동기부여가 더 잘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경제개발 측면에서도 소득불평등을 피하면서 효율적인 개발이 가능하며, 외부효과의 이해당사자가 경제운영에 참여하여 외부효과의 악영향이 줄어들고, 시장 경쟁이 과도한 판촉이나 불공정 경쟁과 같은 소모적인 경쟁이 아닌 제품 차별화를 통한 생산적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특성상 의사결정의 속도가 느려지고, 때문에 격변하는 사회에서 어느정도 불리한 점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민주성과 효율성 사이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동시에 대규모 기술혁신과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금조달 문제에 대해서도 독립된 연구개발 조직을 세울 것을 요구한다. 바넥은 유고의 경제체제를 그 예시로 들면서, 유고슬라비아가 체제 변혁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고, 노동력이 지속적으로 유출되었음에도 높은 성장률과 투자비율을 유지하는 점을 들어 참여경제가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어 그는 사회발전론적 분석으로 넘어가 자본주의, 현실사회주의, 개발도상국 사회의 발전상에 대해 논한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는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나 경제적 자율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소수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이것이 정치적 불안정과 균형의 파괴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이어 현실사회주의의 경우 자본주의와 정반대로 경제적 불평등은 적으나 정치적 자율결정권과 경제적 효율성이 부족해 더욱 심한 불균형이 발생한다고 지적하며, 경제적 비효율을 개선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치경제적 자율결정을 확대할 것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개발도상국 사회의 경우, 빠른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자본주의나 현시사회주의보다 참여경제가 더 유리하며, 초기에 참여경제를 채택하는 것이 체제 전환 과정의 비용을 줄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바넥의 이상은 잘 작동하였는가?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동구권의 현실사회주의는 경제적 비효율성을 제거한다는 명분 하에 자본주의를 도입하면서 빠르게 붕괴했고,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자본의 힘으로 억누르면서 폭주하고 있으며, 그가 예찬했던 유고슬라비아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공화국간의 갈등 끝에 유고는 붕괴했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부상하였으며, 민족으로 갈라져 싸우고 학살하는 와중에도 그들은 하나되어 자주관리를 기각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종속을 선언하였다.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바넥의 이상은 무너졌는가?


유고의 실패 원인은 민족주의의 완전한 제거와 민족 융합의 실패, 당 관료의 자주관리 제도 장악, 석유 파동으로 인한 국제 경제 변동 대처 실패, 그리고 자주관리 자체의 결함 등 많은 요인들이 꼽히지만, 여기서는 자주관리 제도 그 자체에 집중하고자 경제학적 분석의 비판을 하나 소개한다. 미국의 법경제학자 헨리 한스만은 그의 저서 <기업 소유권의 진화>에서 노동자소유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을 거버넌스 비용으로 꼽는다. 자본이 이윤이라는 균일한 목표를 갖는 것과 달리, 노동자는 직무, 재직 기간 등에 따라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지며, 이들을 조율하는 비용과 이로 인한 갈등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자주관리의 이점을 상쇄할 정도로 크기 때문에 노동자소유기업의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유고슬라비아는 거버넌스 비용에 있어서 최악의 환경을 안고 있었다. 체제는 하나였으되 문자는 둘이요, 종교는 셋, 언어는 넷, 민족은 다섯, 공화국은 여섯개인 땅의 복잡한 민족 및 종교 문제는 그 자체로 많은 갈등을 안고 있었고, 민주적인 자주관리 체제는 그 비용을 증폭했다. 여기에 풍부한 자원과 산업시설을 확보한 서북부(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와 많은 인구수를 가진 동남부(보스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사이의 갈등, 공업도시의 노동자, 아드리아해라는 훌륭한 관광자원에 기대어 성장한 해안의 자영업자, 그리고 농민들 사이의 갈등, 거기에 근본적인 노동자와 관료 사이의 갈등이 온 유고를 지배하고 있었다. 자주관리는 이들을 조율하기보다는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만을 증폭했고, 관료들은 기회주의적으로 이를 증폭하여 자신의 권력을 확대하는데에만 힘썼다. 노동자들은 관료들이 회유를 위해 내놓은 미래를 담보로 한 높은 소비액에 눈이 멀어 실업문제, 인플레이션 문제를 외면했다. 이로 인해 나날이 증가하던 불안정성은 경제적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한 자본주의화와 정치적 의사결정권 확대를 위한 자유선거 도입을 기폭제로 폭발하였고, 그 끝은 내전과 학살, 그리고 자본주의로의 퇴보였다.


그렇다면 자주관리에 희망은 없는가? 아니, 여느 문제가 그렇듯, 해답은 문제 속에 있다. 거버넌스 비용은 노동자들의 조건이 균일하여 합의가 쉬울수록 감소한다. 한스만은 노동조합과 노총이 독립적인 기업노조에서 산별노조로, 그리고 노총-산별노조-현장지부의 피라미드 구조로 진화하는 것을 거버넌스 비용을 줄이기 위한 과정으로 설명한다. 즉, 기존의 상품을 중심으로 다양한 직무의 노동자들이 협업하는 기업 형태에서 직무를 중심으로 상품이 오가는 기업 형태로 경제 구조가 변화한다면, 노동자소유기업의 거버넌스 비용은 충분히 줄어들 수 있다. 불행 중의 다행으로, 자본의 외주화 경향과 플랫폼 자본의 성장은 기업의 중심을 상품에서 직무로 변화시키고 있다. 어쩌면 외주화와 플랫폼화로 분화된 노동자들이 다시 직무로 뭉쳐 자본을 쓰러트리고 직업 단위의 노조들이 사회를 운영하는 21세기판 생디컬리즘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한편, 조직 혁신 역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한스만은 몬드라곤과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중앙회들의 사례를 들면서, 협동조합중앙회에 강력한 권한을 이양하여 각 기업의 의사결정의 폭을 중앙회가 추구하는 방향 이내로 좁히는 것이 거버넌스 비용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즉, 완전한 자치보다는 민주적 절차를 통한 권력의 집중적 위임이 더 낫다는 것이다. 아나키즘의 완전한 자치보다는 레닌의 민주집중제가 적어도 사회적 효율성에 있어서는 더 낫다는 것이며, 이는 역사적으로도 어느정도 입증 가능한 사안이다. 관료화를 피하면서, 민주성과 권력 집중을 통한 효율성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자주관리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참여의 경제>의 한국어판 서문은 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의 성장에 대한 바넥의 찬사로 시작한다. 그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때 당시의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은, 바넥의 자주관리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은 이 책의 페이지처럼 빛이 바래가고 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맞춰 우리가 이상을 지키면서 계속해서 역량과 투쟁을 진화해나간다면, 이 빛바랜 이상이 다시금 되살아날 때가 올 것이다. 자주관리 사회주의, 시장사회주의 붐은...온다...!


드디어 참여의 경제 서평을 다 썼습니다. 다급하게 쓴데다 효율을 높이고자 옛 NL 선배들이 비급으로 전해주셨던 취권을 동원해서 글이 좀 중언부언합니다. 이해해주시면서 읽어주시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