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가 노동을 정의할 때, 자연환경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변형시키는 행위 전반을 일컬었고 이것을 인간의 전유물로 사유했음.
그러나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 간의 간극은 모호하며 모든 동물들이 그 나름대로 자연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삶을 영위함. 그렇다면 동물도 노동하는 존재이며, 노동하는 존재들의 생산물을 빼앗는다면 영혼 자체의 강탈이라는 명제는 동물에게도 성립하지 않나?
사회주의자들이 그리는 사회의 청사진은 일반적으로 인본주의적이며, 그 속에서 어떤 단일한 인간 범주를 가정하는 것이 폭력적이라는 비판은 이미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설득럭 있게 제기된 바가 있음.
단일한 인간상을 엄밀히 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그 속에서 장애인, 여성 등에 대한 배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음. 꼭 소수자 문제가 아니더라도 발전하는 과학이 더 사이보그적인 인간상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흐리는 기술적 사례들을 내놓는다면 우리는 기계, 인간, 비인간동뭏의 경계와 그 각각이 수행하는 노동에 대해 새롭게 사유해야만 함.
이와 관련해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인 도나 해러웨이의 고전, '사이보그 선언문'을 다들 읽어보길 추천했는데 아직 읽어보진 못 함. 듣기로는 해당 서적에서는 우리가 이미 사이보그임을 주장한다고 한다. 손목시계를 찬 사람에게 시간을 물어보면 모른다고 하지 않고 시계를 쳐다보지. 내 뇌는 시간을 몰라도, 내 시계는 "알고 있으니까." 시계는 이 사람에게 이미 신체 일부인 거고.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더 사유해봐야 한다.
그러나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 간의 간극은 모호하며 모든 동물들이 그 나름대로 자연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삶을 영위함. 그렇다면 동물도 노동하는 존재이며, 노동하는 존재들의 생산물을 빼앗는다면 영혼 자체의 강탈이라는 명제는 동물에게도 성립하지 않나?
사회주의자들이 그리는 사회의 청사진은 일반적으로 인본주의적이며, 그 속에서 어떤 단일한 인간 범주를 가정하는 것이 폭력적이라는 비판은 이미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설득럭 있게 제기된 바가 있음.
단일한 인간상을 엄밀히 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그 속에서 장애인, 여성 등에 대한 배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음. 꼭 소수자 문제가 아니더라도 발전하는 과학이 더 사이보그적인 인간상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흐리는 기술적 사례들을 내놓는다면 우리는 기계, 인간, 비인간동뭏의 경계와 그 각각이 수행하는 노동에 대해 새롭게 사유해야만 함.
이와 관련해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인 도나 해러웨이의 고전, '사이보그 선언문'을 다들 읽어보길 추천했는데 아직 읽어보진 못 함. 듣기로는 해당 서적에서는 우리가 이미 사이보그임을 주장한다고 한다. 손목시계를 찬 사람에게 시간을 물어보면 모른다고 하지 않고 시계를 쳐다보지. 내 뇌는 시간을 몰라도, 내 시계는 "알고 있으니까." 시계는 이 사람에게 이미 신체 일부인 거고.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더 사유해봐야 한다.
일단 동물들이 투쟁과 저항을 인간에 맞서 시작하면 그때부터 생각해보는걸로.
만일 그리되면 꿀잼각이다 꾸르잼각
" 혹성탈출 "
ㅈㄴ 간단함. 동물들이던 기계던 사이보그던 안드로이드던 저항세력을 만들고 인간에 대항한 계급투쟁늘해서 성공하면 권리가 생기는거고 말면 마는거임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