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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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에서 내가 다루는 저자들을 ‘좌익’이라고 묘사하는지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이 한 용어로 푸코와 같은 무정부주의자, 알튀세르와 같은 마르크스주의적 독단론자, 지젝과 같은 과시적 허무주의자, 드워킨이나 로티와 같은 미국식 자유주의자를 다 한데 포괄하려는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내가 다루는 사상가들 자신이 그 용어로 스스로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세계에 대한 어떤 영속적인 입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은 이 책에서도 다루게 될 정교한 사회 정치적 이론들의 힘을 받아 적어도 계몽주의 이후 서구 문명의 영구적 특징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내가 다루는 인물들 중에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번성하게 된 신좌파와 관련된 사람들이 많다. 또 다른 이들은 사회는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며 사회의 재화를 분배할 권한 또한 국가에게 있다고 말하는 전후 정치 사상의 광범위한 토대를 구성하고 있다.
(/ p.13)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지닌 모순적 본질은 곧 그런 유토피아를 실현하려고 할 때 동원되는 폭력성의 원인이 된다. 즉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것을 하도록 강요하려면 무한한 힘이 요구된다. 이러한 유토피아의 기억은 1960년대의 신좌파 사상가들과, 그들의 기획을 도입한 미국의 좌파 자유주의자들을 무겁게 짓눌렀다. 더 이상 마르크스를 만족시켰던 공허한 추측을 도피처로 삼는 것이 불가능해진 실정이었다. 역사가 사회주의로 향한다는 것 혹은 향해야 한다는 것을 믿기 위해서는 현실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 p.20)

국가와 국가 정체성을 공격하는 신좌파는 정작 자기들의 지적 유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르크스가 계급의식을 즉자적 계급과 대자적 계급으로 분류한 이유는 사람들이 인식하기 훨씬 전부터 근대 사회의 계급구조가 존재해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홉스봄은 산업혁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근대의 ‘계급의식’을 근대에 선행하는 시대에까지 소급하여 투영하는데, 이로써 ‘투쟁’의 오랜 전통에 대한 소속감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오늘의 대학 교수를 첩첩이 쌓인 산업혁명의 망인들과 연결시키고 그렇게 대학 교수의 노동을 미화한다.
(/ p.55)

사법부가 없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프랑스 대혁명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고인의 재판에서 제3자가 없을 경우, 증거를 면밀히 살피는 사람이 없을 경우, 당사자들 사이를 중재하며 사실을 공정하게 검토할 사람이 없을 경우, ‘정의’는 모든 무기가 한쪽에만 몰려 있는 ‘사활적’ 투쟁이 되어버린다. 모스크바 재판과 프랑스 대혁명의 혁명 재판소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이것이다. 푸코는 역사가로서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 p.175)


대충 왜샀는지 알겠지

황제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