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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의 당이자 리프크네히트의 당, 가장 강경했던 좌익들의 당이었던 독일 공산당은 빠르게 스탈린주의화 하였습니다. 그 선두에 섰던 에른스트 텔만은 강경한 반제, 반전주의자이자 노동자 계급의 순교자로 칭송받기도, 스탈린주의적 폭정으로 당을 타락시킨 악마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로자의 사망 이후 독일공산당의 가파른 성장과 내부 노선투쟁, 대중정당화와 스탈린주의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과 그의 노선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은 자코뱅에서 적은 그의 삶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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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텔만은 1886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텔만은 식민지로 수출품을 파는 작은 상회의 노동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환경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불평등과 착취를 싫어하며 자랐다. 에른스트 집안의 가세는 그의 아버지가 장물을 팔았다는 혐의를 받고 체포된 뒤 기울기 시작했고,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린나이에서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 가난에 못이겨 16세에 집을 떠났고 부량자숙소에서 생활하며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에른스트는 곧 그곳에서 약간의 돈을 벌어 반지하로 이사했다. 비숙련 비정규노동자였던 그는 함부르크 항구 이곳저곳을 떠돌며 일자리를 구했고, 이후 큰 상선의 보일러공으로 일하게되었다. 텔만은 상선을 따라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노동했는데 심지어는 미국의 대농장에서 삯일꾼을 하기까지 했다.

이런 경험은 텔만이 급진적 노동계급이론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황제의 정의롭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통치가 날로 강성해지던 1903년,, 그는 사회민주당에 가입하였다. 그의 나이는 17살이었다.

곧 그는 반전, 반제국주의 운동가가 되었으며 사회민주당의 전쟁공채를 찬성하는 행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체포되어 전선에 서야 했고 1918년에 전역했다 : 역자 주). 그는 1918년 수천 수만명의 반전주의자 당원들과 함께 사민당에서 집단탈당하여 독립사민당에 가입하였다.

그는 징집당한 이후에도 반전의 목소리를 계속 내었다. 그는 전장에서 두번이나 부상당했음에도 그의 반골기질을 두려워한 군대에 의해 어떤 추서나 수훈도 받지 못했다.

그의 전훈에도 불구하고 텔만의 반전적 태도는 결국 그를 군사법정에 세웠다. 결국 군사법정에서 그는 무죄로 판명났다. 그는 곧 네명의 동지들과 함께 병사들을 조직하여 탈영을 감행하였다. 그의 동지들은 그를 '테디'라고 불렀으며 곧 그의 탈영과 전투적 투쟁 덕에 함부르크의 노동자들에게 지지받기 시작했다. 그의 선명한 노동자성과 그의 삶에서 나온 말들은 민중이 이해하기 쉬웠으며, 그는 이 태도를 평생 유지했다.

그는 이미 1904년부터 운수노조에서 일하고있었는데, 어린 나이에서부터 용달 기사 분회의 분회장이었다. 탈영한 이후 텔만은 이 운수노조의 조합원들과 탈영병들을 규합해 독일 11월 혁명에 참가했고, 다음해 3월, 그의 정당이었던 독립사민당에서 함부르크도당 위원장이자 시의회의 독립사민당 대변인으로 선출되었다. 1920년, 독립사민당의 좌파가 분화되어 공산당 창당에 합류하자, 그는 함부르크도당을 이끌고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독일공산당또한 그를 당의 중책으로 임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