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php?no=24b0d769e1d32ca73ced83fa11d0283109f613b0c2e59fad7a6297a8133682db34ea3a18630bad5dd9a388572f3de015c2bbca971abfeb92f8e0e0b999133007860b8e4c01ed4b3fe1696b87e5b29210469c8cc5bcfc7996ce61aa350afd986dd394aea8b76efbefcbbd873c46173d82cf237474


공산주의자 에른스트 텔만

1924년 독일공산당은 좌익 분파인 루스 피셔, 아르카디 마슬로프, 베르너 스홀름등이 이끌고있었다(이들은 이미 스파르타쿠스 계열 정파인 브란들러와 칼 라덱의 분파를 숙청하며 갈등을 빚고 있었다. : 역자 주) 텔만은 곧 이들과 합류했다.

새 지도부는 전부 지식인계층이었다. 이들은 지식인 좌파 이미지를 벗기 위해 학력이 없으면서도 능력있고, 노동자성을 가진 텔만을 '프롤레타리아의 표상'으로 이용했다. 이를 통해 그는 함부르크지역의 지지 뿐 아니라 중앙당에서도 강력한 권력을 얻게되었다.

당은 1925년 대선에 그를 대통령 후보로 선정했고, 그는 이 선거를 통해 대중에게도 알려진 정치인이 되었다. 이후 그는 바이마르공화국 의회 내 급진좌익 계열의 공동교섭단체인 '적색 전선 분트'의 수장이 된다.

그를 밀어준 피셔와 마슬로프 지도부는 1925년 8월 스탈린과 지노바예프의 코민테른에 의해 축출당한다. 웃기게도, 스탈린은 독일공산당의 새 당대표에 피셔의 정파였던 텔만을 내정한다. (아마 텔만이 스스로 정파조직을 만들만큼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않았다고 본 듯 하다. : 역자 주) 이후 바이마르공화국이 멸망하는 1938년까지. 그는 독일공산당의 당대표로 존재한다.

놀랍게도 텔만은 당대표가 되자마자 굉장한 성과들을 거두기 시작한다. 그동안에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두던 독일공산당은 텔안의 지도 하에 다음 총선에서 16.9%의 득표를 얻어 민주당과 기독계열을 누르고 제3당의 자리를 공고히 한다.

텔만의 공산당은 대중운동에서도 성공적이었다. 1926년 공산당은 독일 귀족들의 자산몰수를 위한 국민투표운동을 시작해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으며 사민당과 대부분의 노조의 지원을 받기까지 했다.

국민투표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텔만의 대중동원력과 노동계급 조직력은 오히려 성공적으로 평가받았다. 1440만명의 독일인들이 공산당의 국민투표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는 사민당과 공산당 전체 지지자들보다 480만명 이상 많은 숫자였다. 이 국민투표운동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좌파적 선거전술 중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낸 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