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php?id=26add4&no=24b0d769e1d32ca73ced83fa11d0283109f613b0c2e59fad7a6297a8133482db4a748b02f1eeac46d5c981a7f7cc4cfe2f323f0895ae2c5823fdcd398f3eccd1ddc36641849f4b437ec5f2c32c595c2e92f52d4a6bcf947ad6a1c0d828cb16875af5b87da06c46b39a69a1331c0085917b76a91dc4a61dd88b6965ec32f664621bd3544f15efa9665b17bb992d98cc5144ac5ec64a395995c8a445ed835f9479e020c80fb0482da8ee58524b3cea8b46ec6546048c7720cbefa7128bc689d6b55830a0a0c21e3c98b379c57eb989f53cca0c41a0ea0dd7c9930d92e20a80c4b0a6a2efdcd08e13ab1ed33be0105acab5147a2bf8973658eead258c7be9f382d0

오 들어라 만민들이여

적들은 말한다. 왜 사회주의자냐고

그러고 이 말을 덧붙인다.

사회주의는 실패했다고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모르냐고


그리고 이 담론은 너무 낡은 것이 아니냐고

여성등 소수자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거냐고
너무 감성에 치중한 것이 아니냐고




우리는 말한다.  반론을

사회주의는 실패하지 않았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실패는 그들의 실패지 모든 노동자의 실패가 아니라고

그리고 스탈린과 마오가 죽인 갓보다 자본가가 죽인 사람의 수가 더 많다고 통계화되지 않았을 뿐이 19세기에서 21세기까지 죽은 사람이 수는 저들이 더 많다고

그리고 이 담론은 전혀 낡지 않았다.
저 동남아에서 다국적 기업에게 착취당하는 소녀공이 있는 이상,
자원을 헐값에 파는 아프리카의 군벌이 있는 이상,
남미의 쿠데타를 사주는 정보기관이 있는 이상,
노동법을 위반하는 동북아의 기업이 있는 이상.
이 담론은 아직 살아 있이며 자본주의의 그림자되어서 살아남을 것이다.

사회주의는 소수자 문제에 그리 냉담하지도 읺다.
물론 성소수자 부분에서는 리버럴들의 공을 인정해야겠지만 말이다.
리버럴들은 자주 이 부분에 대해 넘어가질 않는다. 
성별 문제는 성별의 문제가 아니며 민족 문제는 민족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인종 문제는 인종의 문제가 아니다.
그 근본은 자본에 있는 것이다.
만약 여성의 자본을 잡고 있으면 가정에서 폭력이 이루아질까?
만일 소수 민족이 엄청난 자본을 지니고 있다면 그렇게 멸시받을까?
만약 흑인이 부유했다면 흑인을 무시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자본의 문제로 귀결되며 몇몇 문화적 문제도 자본의 문제가 해결되면 대부분 해결된다.

그리고 우리는 감성에 치우친 찔찔이가 아니다.
만일 찔찔이었다면 그리 되지도 않았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제 값을 받고 노동하는 것 뿐이다.
우리 노동자는 사업에서 대부분의 일을 한다. 우리가 물품을 만들고 우리가 고갹을 대접한다.
그러나 주어진 일당은 어떠한가? 시급 만원도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에게 입사 해택이라치고 등록금이라든지 그런 것을 주지말라.
우리에게는 돈과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작업장이 필요하다.
우리 노동자는 사업의 중추지만 결정방향에서는 항상 유리되어 있다.

우리는 그러한 점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하는 것이다

십삼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