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코민테른의 저명한 지도자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주장을 들어야 했다 : 물론 일국사회주의 이론은 근거가 없지만, 힘든 조건 속에서 애 쓰고 있는 러시아 노동자들에게 전망을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강령에서 그 계급적 태도 결정의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도덕적 위안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론적 파탄의 깊이를 재기는 어렵다. 모순된 사실에서 위안을 받는 이론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권에나 어울린다. 그런데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우리 당은 일국사회주의가 아니라 전적으로 국제혁명에 방향을 맞춘 강령을 가지고 영웅적 시기를 지나왔다. 공산주의청년동맹은 후진적인 러시아 혼자서, 자신만의 힘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밝힌 강령적 기치 아래 내전, 기아, 추위, 힘겨운 주말노동, 전염병, 보잘 것 없는 배급량에 대한 배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치른 수많은 희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왔다. 당과 공산주의청년동맹원들은 전선에서 싸우거나 원목을 철도역으로 힘들여 운반했다. 이런 원목으로 일국 사회주의를 건설하기를 바랐기 때문이 아니라 국제혁명의 대의에 복무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요새가 굴복하지 않는 것이 국제혁명에서 불가결해졌으며, 모든 추가 원목은 소비에트 요새에 중요했다. 이것이 우리가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쓴 방법이다. 시대가 변했고, 상황이 바뀌었지만(아직까지 그리 급격하지는 않지만), 원칙적인 접근은 지금도 충분한 효력을 지니고 있다. 노동자, 빈농, 열성당원, 청년 공산주의자들은 새로운 진리가 처음으로 선포된 1925년 이전까지 자신들의 모든 행동을 통해 자신들에게는 새로운 진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위에 앉아 대중을 깔보는 관리, 혼란을 원치 않는 말단 관리자, 모든 것을 덜어주고 위로하는 방책의 엄호 하에 군림하려는 기구 신봉자들은 새로운 진리가 필요하다. 이 사람들은 무지한 인민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필요하고, 위안이 되는 교리 없이는 인민들을 대할 수 없다고 생각 한다. 이 사람들은 또한 특권적인 지위, 군림하고 명령할 권리, ‘회의론자들’과 ‘신념이 부족한’ 자들의 비판을 면할 필요 때문에 ‘90%의 사회주의’라는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할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 기를 죽이고 열정을 앗아간다는 취지의 불평과 비난은 완전히 다른 조건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개량주의자들이 항상 혁명가들에게 퍼부어온 비난과 이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량주의자들은 이렇게 말 했다 : ‘당신들은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의 틀 안에서는 그 운명을 실제로 개선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당신은 투쟁하려는 노동자들의 의욕을 앗아간다.’ 노동자들이 실제로 경제적 이익과 의회주의적 개량을 위해 싸운 것은 정말로 혁명주의자들의 지도를 받을 때뿐이었다.


세계자본주의의 생지옥 속에서 오아시스 같은 사회주의 낙원을 건설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소비에트공화국의 운명, 따라서 자신의 운명도 전적으로 국제혁명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노동자는 우리가 이미 90%로 추정되는 사회주의를 획득했다고 말하는 노동자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소련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사회주의를 위해 노력할 가치가 있는가?’ 여기에서도 개량주의적 태도는 언제나처럼 혁명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개량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트로츠키, <레닌 이후의 제 3 인터내셔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