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하여 무쏠리니가 한 말이 있다: "이탈리아 경제의 4분의 3은 국가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1934년 5월 26일) 그러나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파시즘 국가는 기업의 소유자가 아니라 소유자들 사이의 중개자에 불과하다. 양자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이탈리아의 『인민』지는 이 주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합주의 국가(corporative state)는 경제를 관리하고 통합할 뿐 직접 운영하지는 않는다 이 체제는 생산을 독점할 경우 집단주의 체제에 지나지 않는다. "(1936년 6월 11일)

농민과 소자본가 일반에 대해서 파시즘 관료집단은 하인을 협박하는 주인과 같이 군다. 그러나 대자본가에 대해서는 그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대사의 태도를 취한다.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 페로치(Feroci)는 올바르게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조합주의 국가는 독점자본의 점원에 지나지 않는다‥‥‥ 무쏠리니는 기업의 위험부담을 전부 지면서 착취의 결과 발생하는 이윤은 자본가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히틀러 역시 무쏠리니의 행위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파시즘 국가는 대자본가 계급의 지배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계획경제의 실제 내용 뿐 아니라 원칙은 뚜렷이 한계가 그어져 있다. 이 체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극소수의 이해를 위해 사회 전체를 착취한다. 무쏠리니는 이렇게 자랑한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국가자본주의나 국가사회주의를 원한다면 필요하고 적절한 객관적 조건들은 전부 갖추어져 있다. " 그러나 하나의 조건이 결여되어 있다. 즉 자본가계급 전체의 생산수단 전부를 국가는 아직 몰수하지 않았다. 이 조건을 실현하려면 파시즘은 계급투쟁의 바리케이드에서 노동자 편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실제 이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다." 이것은 무쏠리니가 한 말이다. 물론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본가 계급의 생산수단을 전부 몰수하는 일은 다른 사회 세력, 다른 지도자, 다른 중핵들을 필요로 한다.

생산수단을 국가의 손에 쥐어준 첫 역사적 경험은 사회혁명을 성취한 노동계급에 의해 현실로 나타났다. 국가에게 생산수단을 의탁하여 자본가 계급이 실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이 간단한 분석을 통해 소련을 자본주의적 국가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짓인지가 충분히 드러났다. 전자는 진보적이며 후자는 반동적이다.
-<배반당한 혁명>, 트로츠키


'그런데 실제 이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다.'

무솔리니는 한때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분명히 배운 것을 모두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떤 계급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파시즘의 '국가주의'와 소련 등의 '국가주의'를 비교하는 사람들은 무솔리니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