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년기 : (https://m.dcinside.com/board/kpd/4776?headid=&recommend=&s_type=all&serval=에른스트 텔만)
2. 공산주의자 테디 : (https://m.dcinside.com/board/kpd/4778?headid=&recommend=&s_type=all&serval=에른스트 텔만)
텔만 하의 공산당이 선전한것은 오직 그에 대한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는 1920년대 중후반기의 스탈린주의화의 최선봉으로써 독일 공산당의 구조, 조직, 조직문화의 뿌리부터 스탈린주의로 바꾸어 놓았다.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잡을동안, 독일 공산당은 망가지고 있었다. 창립 초기 공산당은 내부적 토론과 찬반이 혼재하며, 이를 모두 수용하는 생동감 넘치는 조직이었다.
당론은 민주적으로 결정되었으며 당 기관지에는 당론과 반대되는 입장과 여러 이론들이 자유롭게 오갔다. 전당대회는 토론과 논쟁으로 뜨거웠으며 반대파들과도 충분히 긴 논쟁과 설명, 견해 피력의 기회가 주어졌다.
텔만이 조직 재편을 끝냈을 때, 독일공산당은 비민주적이고 관료주의적 당으로 변모했다. 당중앙의 리더쉽은 신성불가침적이고 권위적이었다.
내부 토론은 극소수만 허가되었으며 모든 당내 갈등은 정치적이 아니라 조직적인 비난과 위협을 통해 '해소'당했다. 텔만의 지도부는 내부의 좌익반대파들에게 재갈을 물렸고 간단하게 출당당하기도했다.
조직의 뼈대는 이론적 침체기에 빠졌으며, 도그마화되었다. 역사학자 지그리드 코흐는 독일공산당 내에서 소련이 '성지'화 되었으며 맑스와 엥겔스, 레닌은 종교적 창시자가 되었다고 묘사했다.
독일공산당의 변화는 소련에서부터 시작한 모든 공산주의 세력 '스탈린주의화'의 시작이었다. 1920년대 중반, 스탈린은 러시아공산당의 서기장이 되었고, 교활한 전략으로 그의 상대들을 서로 맞붙게 하여 자신의 정파가 상처입지 않게 보호했다.
이후 몇년간 그는 그의 당이 주장한 모든것을
돌려버렸다. 노동자권력과 노동자 직접정치의 마지막 보루들은 전부 해체되었고 공장에는 감독관들이 들어섰다. 임노동제가 다시 공장에 돌아왔다. 노동자들은 공장의 개선과 공장민주주의, 파업 그 어떤것도 할수없게 금지당했다. 이러한 행위들은 사형으로 처벌당했다.
경제적 위기를 핑계로, 러시아 혁명이 이룬 대부분의 사회적 성과는 파괴되었다. 이혼은 어려워졌고 낙태는 금지되었으며 전통적 가부장제와 '모성적 영광'이 출산률 증가를 위해 반동적으로 돌아왔다.
혁명적 입법을 통해 합법화된 동성애는 다시 처벌받게 되섰다. 볼셰비키에 의해서 장려받던 문예부흥또한 생명력 없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대체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정책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스탈린은 공산당들 내의 사회주의적 전통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볼셰비키 지도부는 숙청당하거나 사형, 유배당했다. 1923년경의 당 지도부중에서 자연사한 사람은 레닌, 스탈린, 몰로토프 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처형당하거나 살해당하거나 자살 '당했다'.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라덱, 부하린 등 수많은 볼셰비키의 지도자들이 1936~38년 사이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트로츠키같은 소수만이 소비에트에서 살아 도망쳤지만, 이들도 결국 대부분 암살당했다. 50만여명의 러시아 코뮤니스트들이 대숙청 기간동안 살해당했다. 위대한 독일어권 코뮤니스트운동사 전공 교수인 헤르만 베버는 스탈린의 숙청이 역사상 가장 거대한 반공운동이었다고 서술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독일공산당원이었다.)
이러한 당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서는 공산주의 자체에 대한 해석 왜곡이 필요했다. 스탈린은 맑시즘을 국가 내부로 한정해버렸고 그 유명한 '일국사회주의' 이론을 만들어냈다.
스탈린은 실제로 사회주의가 러시아 강역만을 가지고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는 세계적 사회주의운동에는 절충불가했지만 각국의 당권을 유지하려는 공산당 간부들에게는 괜찮은 타협책이었다. 공산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이들은 자본주의 세력들과도 연대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것이다. 세계혁명은 더이상 소비에트 내에서 발딛을 자리가 사라졌다.
2. 공산주의자 테디 : (https://m.dcinside.com/board/kpd/4778?headid=&recommend=&s_type=all&serval=에른스트 텔만)
텔만 하의 공산당이 선전한것은 오직 그에 대한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는 1920년대 중후반기의 스탈린주의화의 최선봉으로써 독일 공산당의 구조, 조직, 조직문화의 뿌리부터 스탈린주의로 바꾸어 놓았다.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잡을동안, 독일 공산당은 망가지고 있었다. 창립 초기 공산당은 내부적 토론과 찬반이 혼재하며, 이를 모두 수용하는 생동감 넘치는 조직이었다.
당론은 민주적으로 결정되었으며 당 기관지에는 당론과 반대되는 입장과 여러 이론들이 자유롭게 오갔다. 전당대회는 토론과 논쟁으로 뜨거웠으며 반대파들과도 충분히 긴 논쟁과 설명, 견해 피력의 기회가 주어졌다.
텔만이 조직 재편을 끝냈을 때, 독일공산당은 비민주적이고 관료주의적 당으로 변모했다. 당중앙의 리더쉽은 신성불가침적이고 권위적이었다.
내부 토론은 극소수만 허가되었으며 모든 당내 갈등은 정치적이 아니라 조직적인 비난과 위협을 통해 '해소'당했다. 텔만의 지도부는 내부의 좌익반대파들에게 재갈을 물렸고 간단하게 출당당하기도했다.
조직의 뼈대는 이론적 침체기에 빠졌으며, 도그마화되었다. 역사학자 지그리드 코흐는 독일공산당 내에서 소련이 '성지'화 되었으며 맑스와 엥겔스, 레닌은 종교적 창시자가 되었다고 묘사했다.
독일공산당의 변화는 소련에서부터 시작한 모든 공산주의 세력 '스탈린주의화'의 시작이었다. 1920년대 중반, 스탈린은 러시아공산당의 서기장이 되었고, 교활한 전략으로 그의 상대들을 서로 맞붙게 하여 자신의 정파가 상처입지 않게 보호했다.
이후 몇년간 그는 그의 당이 주장한 모든것을
돌려버렸다. 노동자권력과 노동자 직접정치의 마지막 보루들은 전부 해체되었고 공장에는 감독관들이 들어섰다. 임노동제가 다시 공장에 돌아왔다. 노동자들은 공장의 개선과 공장민주주의, 파업 그 어떤것도 할수없게 금지당했다. 이러한 행위들은 사형으로 처벌당했다.
경제적 위기를 핑계로, 러시아 혁명이 이룬 대부분의 사회적 성과는 파괴되었다. 이혼은 어려워졌고 낙태는 금지되었으며 전통적 가부장제와 '모성적 영광'이 출산률 증가를 위해 반동적으로 돌아왔다.
혁명적 입법을 통해 합법화된 동성애는 다시 처벌받게 되섰다. 볼셰비키에 의해서 장려받던 문예부흥또한 생명력 없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대체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정책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스탈린은 공산당들 내의 사회주의적 전통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볼셰비키 지도부는 숙청당하거나 사형, 유배당했다. 1923년경의 당 지도부중에서 자연사한 사람은 레닌, 스탈린, 몰로토프 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처형당하거나 살해당하거나 자살 '당했다'.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라덱, 부하린 등 수많은 볼셰비키의 지도자들이 1936~38년 사이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트로츠키같은 소수만이 소비에트에서 살아 도망쳤지만, 이들도 결국 대부분 암살당했다. 50만여명의 러시아 코뮤니스트들이 대숙청 기간동안 살해당했다. 위대한 독일어권 코뮤니스트운동사 전공 교수인 헤르만 베버는 스탈린의 숙청이 역사상 가장 거대한 반공운동이었다고 서술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독일공산당원이었다.)
이러한 당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서는 공산주의 자체에 대한 해석 왜곡이 필요했다. 스탈린은 맑시즘을 국가 내부로 한정해버렸고 그 유명한 '일국사회주의' 이론을 만들어냈다.
스탈린은 실제로 사회주의가 러시아 강역만을 가지고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는 세계적 사회주의운동에는 절충불가했지만 각국의 당권을 유지하려는 공산당 간부들에게는 괜찮은 타협책이었다. 공산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이들은 자본주의 세력들과도 연대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것이다. 세계혁명은 더이상 소비에트 내에서 발딛을 자리가 사라졌다.
자코뱅의 글을 번역하고있는데 예상외로 반스탈린주의가 아주 강력하게 베어나와서 놀라는중입니다.
텔만은 32년 나치와의 베를린 연대가 레전드지 ㅋㅋㅋ 잘 찾아보면 괴벨스랑 같이 연설하는 사진도 찾을 수 있을거다
텔만이 읽어보니 대중적 정치 감각은 좋았으나 주요 정치적 타격방향을 못잡고 정치방식에선 코민테른의 지령만 따라버린게 문제였던듯요
나치와의 연대도 당면 타격방향을 '사회파시스트'들에게 몰면서 생기는거죠?
(트로츠키가 거품무는 소리)
23~24년쯤되면 룩셈부르크주의자들은 대부분 숙청당해있더라고요
스탈린 관료집단의 최대 피해자
부역자잖아
피해자 말고 피해 국가라고 했어야 됬네. 독일 말한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