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데이 : 얼렁뚱땅에 경의를
1. mayday는 기독교계 국가들이 공유하는 휴일 중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한 유일한 날이다. 프랑스혁명의 온갖 잡스러운 '시민종교적 의례'는 전멸했으나 별달리 기획된 것도 아니었던 메이데이는 100개가 넘는 국가에서 살아남았다.
2. 소련을 논외로 하면, 5월 1일을 노동절로 처음 공식 지정한 정권은 프랑스 인민전선도 영국의 노동당 정권도 아니다. 히틀러가 처음이고, 비시정부가 두번째다. 노동절이 공식 기념일이 된 건 타협의 필요성을 느낀 반(反)사회주의자들의 성과고 가장 앞장선건 보다시피 파시스트들이었다. 그러니 메이데이에 파시스트를 기념하는 것도 웃기는대로 말은 되는 짓이다.
3. 메이데이의 출발은 1890년 5월 1일에 벌어진 세계의 동시다발 노동자 시위였는데, 이걸 (얼떨결에) 제안한 제2인터 양반들은 이 전통이 한 세기를 넘기는건 고사하고 다음해까지 이어지리라고도 상상하지 않았으며, 그 한번이나마 별 중요한 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뭐 어쨌거나, 요구안은 8시간 노동제였다. 날짜가 5월 1일이었던 이유? 미국노동총동맹이 그날 같은 주제로 집회를 하기로 해서 묻어가기로 했단다. 이 위대한 '노동자의 부활절' 탄생 스토리란 게 대체로 이런 식이다.
4. 그나마 일사불란한 맛도 없었다. 영국 최초의 메이데이는 5월 1일이 아니라 5월 4일이었다. 문제는 집회날 하루짜리 파업을 할지 여부였는데(그러니까 낮부터 공장 째고 집회나갈지가 문제였는데), 영국의 사회주의자들과 대형노조들이 그냥 귀찮은 일 벌이지 말고 그 주 일요일에 하자고 해버렸다.
5. 그 말인즉슨, 원래 제2인터의 전세계 시위 결의안에도 이날 시위가 파업인지 퇴근후 동호회인지가 안 나와 있었다는 이야기다. 홉스봄은 그 특유의 삐딱한 문장으로 이렇게 썼다. "문제는 그 시위를 즉흥적으로 결의한 모든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그 최초의 메이데이가 마침 평일이었다는 데서 발생했다." 메이데이, 참 아스트랄하게 탄생했다.
6. 날로먹는 기획의 전형을 보여주는 메이데이가 그러고도 세계 최대의 비종교적 휴일이 된 까닭 중 첫째가 이것, 어버버 하다가 결정해 버린 손잡고 공장째기였다. 이게 말하자면 하루짜리 세계총파업인데, 제2인터는 이런 간 큰 기획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말렸으면 말렸지. 그런데 이 공장째기가 어처구니없이 대성공을 거둬버린다. 소뒷발에 쥐잡듯 당대 노동자의 욕망을 정확히 대변한 이벤트였던지라 참여가 폭발적이었다. 일이 되려면 이렇게도 된다.
메이데이는 "어떤 달력에도 없는 휴일"이란 멋들어진 별명으로 불렸다. "같이 째고 같이 논다"야말로 메이데이의 출발이었다. 수업 째고 잔디밭에서 막걸리판 벌이는 대학생처럼, 비행/일탈과 축제를 동시에 공유한 경험이 끈끈한 연대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을 열어제친 제2인터의 얼렁뚱땅에 경의를.
세계 최대의 노동자기념일은 대학생 수업 째듯 공장 째고 꽃놀이를 갔기 때문에 탄생했다. 오월 봄날씨야말로 메이데이 탄생의 두번째 공신이다. 헤이마켓 사건이 1월 15일에 일어났다면 노동절이란 게 생기기는 했을까? 화창한 봄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쟁취한 여가, 꽃과 케이크와 맥주.
7. 메이데이의 기원으로 교과서에 흔히 나오는 1886년 5월의 시카고 헤이마켓 사건. 그런데 정작 이 비극을 계승하자고 나선 이들은 꽃놀이 메이데이를 엄청 싫어했다. '순교자'를 기리는 검은 옷의 대중 속에 붉은 깃발이 장중하게 휘날리는 치명적 총파업의 하루를 상상했던 건데, 이들은 꽃과 케이크와 맥주로 혁명을 할 수는 없다고 믿었다. "상징적 행동일랑 집어치워라. 세계 혁명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서라 아서.
이 한없이 진지한 양반들이 지금 우리에게 더 유력한 메이데이의 이미지다. 우리가 공장 째고 꽃놀이 나서는 사람들 대신 헤이마켓의 희생자와 검은 옷의 장중한 총파업 대오를 기억하는 건, 그냥 그렇게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
덧1. 9년 전에 썼던 글을 살짝만 만져서 재활용. 19세기 역사가 그새 바뀌었을것 같지는 않으니 뭐 괜찮겠지. 요즘 누가 19세기 노동사를 하겠어(...)
이 글은 걍 홉스봄의 (개그포인트를 좀 과장한) 카피-요약. 원 텍스트는 홉스봄, 메이데이의 탄생 : 5월 1일. 이 에세이는 홉스봄 논문집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에 실려 있음.
덧2. 재활용하는 김에 원텍스트를 펼쳐봤다. 대번에 눈을 잡아끄는 문장. "사실 일부 국가에서는 메이데이 준비에 혼신의 힘을 다하기는커녕, 좌파 정치에서 대개 그렇듯이 시위의 적법한 형태가 무엇인지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논쟁과 분열 때문에 지역 정당과 운동은 오히려 방해를 받았다."
시대도 국가도 가리지 않는 유구한 전통(...)
기원 얘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여성의 날이든 노동절이든 축해해도 된다. 우리의 기념일이니까.
오호
흠터레스팅
천관률 별로 좋아하지는않는데... 흠...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