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경험하는 21세기 사회의 구조적인 난제는 대부분 자본과 지식 기술이 국경의 제약이 없는 반면 국가와 대중, 노동과 사회단체들이 언어와 법리의 국경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이고 국가고, 스스로의 존속을 위해 다른 주체들과 경쟁과 협력을 하다 보니 내쉬 균형점과 파레토 최적점이 어긋나 버린게 아닐까?

자본의 급격한 국제화 이전에야 그게 국가의 개입이던 노조와 기업간의 합의를 포함한 사회운동 등으로 내쉬 균형점을 파레토 최적점에 가깝게 옮길 수 있었지. 지금도 왠만큼 얼추 돌아가는 국가나 사회라면 이런 내부적 문제 해결능력은 어느정돈 괜찮다고 봄. 일례로 환경 문제만 보더라도, 80 90년대 환경오염의 경우 국내 요인으로 인한 문제였고, 00년대와 10년대를 거쳐 어느정도 원만하게 해결되었다고 봄.

반면에 중국발 미세먼지나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한국 정부 사회의 문제해결 역량은 사실상 없지.

마찬가지로 자본소득과 노동소득 사이의 괴리, 줄어드는 비숙련 노동수요가 단순히 정부 개인 기업 세 플레이어 사이의 국내적 문제라면 갈등과 논란을 동반하겠지만 내쉬 균형점을 옮기는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봄.

물론 시장과 자본 기술에는 국경이 존재하지 않고 세계에 우한국만 있는게 아니니, 자본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게임판을 찾아갈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적 손해를 감수해야겠지.

반면에 개인이 새로운 게임판을 찾아가기 위한 상대적 비용은 막대하고, 문화적 언어적 차이를 고려하면 더 유리한 게임판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음.

거기다 그럼 지금 내쉬 균형점을 옮길 수 있는 주체가 있는가 하면 그게 아니라는게 문제의 핵심인듯. G7이나 G20역시 각국이 국민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위해 협력과 걍쟁을 하는 회담에, 제도적 장치로서의 기능도 적고. UN은 뭐 ㅎㅎ...

개인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지금은 좀 거품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어쩻건 정도와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예견된 문제를 불러올 거라는건 기정사실임. 그리고 진통제를 넘어선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선 19세기 미국 주 정부가 제어할 수 없었던 트러스트를 연방정부와 유권자들이 뚝배기를 부숴버린 것 처럼 국제주의 역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물론 현실은 배타적 민족주의 라이징인것 같긴 하다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