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셔요. 평소 로갤 눈팅질만 하다가 처음으로 글 써봅니다.
유동 주제에 이런 글을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자면 올해 20살 된 대학생인디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못 가고 집에만 쳐박혀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도 집에만 있는 덕분에 혼자 책이나 실컷 읽고 있었는데, 겨울 내내 읽었던 몇 권의 책들을 로갤러 여러분께 조금 소개시켜드리고 싶었습니다. 대체로 맑스주의 관련 저작들보다는 좀 소프트(?)한 책들이 많긴 합니다. 사실 이런 책들을 소개해드리는 것이 조금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이 반동새끼는 뭐야, 하고 가볍게 무시해주셔도 괜찮답니다.
일단 빨간 책은 로갤러 여러분들이 저보다 더 많이 읽으셨을 것이니까 굳이 추천드리지는 않을 겁니다. 저 역시도 이 좆같은 세상이 너무 빡쳐서 빨간 책 위주로만 읽고 그러고 살고 싶었는데 사실 좌파 운동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것에 대한 분노 같은 정념을 쏟아내기 이전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감수성 거기에 이성을 더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박사 학위 논문이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 대한 연구죠. 그래서 빨간 책 보다는 겨울 동안 진짜 재밌게 읽었던 책들을 몇 권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1.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 진은영 지음, 그린비.
처음부터 너무 뜬금없죠. 모름지기 좌파란 관념론자들 뚝배기를 깨부셔야하는데 로갤에서 왠 칸트?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적을 잘 알아야 전술을 짤 수 있다는 옛말이 있듯이, 근대 유럽인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는가를 알아야 그 근대철학을 해체하고자 했던 맑스의 시도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라타니 고진 같은 경우에는 칸트와 맑스의 친연성을 밝혀내고자 하기도 했죠. 칸트는 근대 유럽 철학을 집대성해서 완전히 체화한 철학자니까요. 이 책은 칸트 입문서로 아주 최고의 책인 것 같습니다. 평소 철학에 관심이 있던 분이라면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으실 겁니다.
2. <비철학자들을 위한 철학 입문> / 루이 알튀세르 지음, 현실문화.
프랑스의 맑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르의 저서입니다. 상당히 신간이라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알튀세르가 로갤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이 책은 상당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평생을 맑스주의 유물론 철학자로 살며 동시에 프랑스 공산당에서 정치활동에 몰두하기도 했던 알튀세르가 관념론/유물론의 기원과 차이, 그리고 더 나아가 맑스 철학과 자신의 철학에까지 나아가 철학의 계보를 그리는 책입니다. 또 철학이라는 것이 실천의 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탐구하기도 합니다. 번역과 문체가 다소 어지럽고 철학이 익숙치 않으신 분이라면 읽기 어려우실 겁니다. 400여 페이지라는 분량의 압박도 있구요.
3. <생각하는 마르크스> / 백승욱 지음, 북콤마.
드디어 마선생 관련 책이 등장했습니다. 이 책도 역시 528페이지라는 분량의 압박이 있기는 합니다만.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라는 책의 부제 말마따나, 맑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달달 외우기 보다는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 알아보자는 책입니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시작해서 <자본>, 그리고 알튀세르, 라캉, 발리바르 등 현대 맑스주의 철학까지 소개하는 맑스 입문서로는 아주 제격인 책입니다. 책의 깔끔한 편집과 저자의 명료한 설명은 덤이고요.
4. <발터 벤야민: 화재경보> / 미카엘 뢰비 지음, 난장.
맑스주의 미학 연구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저작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를 해설하는 책입니다. 벤야민은 비단 미학 뿐 아니라 철학, 역사 등 다양한 학문에 발을 걸치고 있는 아주 흥미로운 여지가 많은 사상가입니다. 그의 짧은 비극적인 생애 때문에 더 주목받기도 하고요. 벤야민 본인은 문필가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서 그런지 막상 원전을 읽으면 읽어내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학자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의 말년 저작인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서술로 가득차있기 때문에 더욱 이해하기 까다로울 것입니다. 책의 제목처럼, 벤야민의 대부분의 저작들은 동시대에 보내는 '경보'의 성격이 강합니다. 본인이 파시즘이 도래해오는 독일에 사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진보하기보다는 파국으로 흐르는 역사 속에서, 사민주의자들은 왜 파시즘의 도래를 막지 못했는지, 이 역사의 거역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우리(공산주의자)들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탐구한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를 저자의 흥미로운 해석과 함께 재미있게 풀어낸 책입니다.
5.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조지 레이코프 지음, 와이즈베리.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가 쓴 책입니다. 진보 진영이 왜 보수 진영에게 항상 휘둘리는지, 따라서 진보 진영은 어떤 프레임을 짜야 정치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지를 인지과학적, 언어학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조지 레이코프 본인이 민주당 지지자이고 책의 내용 대부분도 미국의 사례와 리버럴 중심이기는 하지만, 현실 정치에 대한 고민이 많으신 로갤러라면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혹시 더 관심이 있으시다면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라는 책도 함께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6. <스피노자의 뇌> / 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음, 사이언스북스.
또 뜬구름 잡는 책이 등장했습니다.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가 쓴 책인데요. 스피노자의 사유와 현대 뇌과학/인지과학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 본 책입니다. 스피노자가 근대 합리주의 철학자로 분류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렇게 환원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많은 상당히 흥미로운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데카르트가 정념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주장하며 심신이원론을 주창했지만, 스피노자는 오히려 충동, 동기, 정서, 감정을 인간성의 중심으로 보며 심신일원론을 주창했습니다. 당시로서는 너무 급진적인 사유를 한 탓에 속해있던 유대인 공동체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파문당하기까지 한 철학자입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모든 생물은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러한 필연적인 노력이 곧 현실적 본질을 구성한다고 합니다. 이를 정치적으로 끌고 오면, 모든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노력해야하며, 정치와 사회 그리고 국가는 이러한 인간의 경향을 돕는데 일조해야만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쩌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모든 생물의 존재를 보존시키는' 공산주의 사회가 인간에게 과학적으로도 아주 적합하다는 얘기도 될 수 있습니다. 에티엔 발리바르나 안토니오 네그리 등 많은 현대 맑스주의 철학자들이 스피노자에 강한 관심을 보여온 만큼 이 책을 통해 스피노자를 알아가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7. <복잡성 사고 입문> / 에드가 모랭 지음, 에코리브르.
짧은 책이지만 완전히 체화하기는 꽤 어려운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복잡성 사고를 입문하는 책입니다. 물질/정신, 전체/부분 등 근대 서구 철학/과학은 세계를 이분법으로 나누고 정확하게 환원시켜 인식하는 데에 천착했지만, 현대 사회는 더 이상 이러한 이분법적/환원적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우리는 세계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직시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세계의 층위를 탐구하는 맑스주의적 관점을 체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이분법적/환원적 사고 보다는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복잡성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알튀세르의 과잉결정 개념과 관련 있을지도?
8. <앎의 나무> / 움베르또 마뚜라나 & 프란시스코 바렐라 지음, 갈무리.
드디어 마지막 책입니다. 이 책 역시도 약간 뜬구름 잡는 책일 수도 있는데요. 이 책은 생명체가 실현되는 과정 자체 - 외부 환경과의 교류를 포함하여- 를 통해서 생명체를 이해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인식현상이 어떻게 생명체 내부에서 발생하는지를 규명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생명체의 인식능력에 대한 생물학적 탐구를 이어가다 종래에는 윤리적 테제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생명체의 행동은 기실 목표지향적인 산물이 아니며, 외부 환경과 다른 생명체들과의 상호작용과 섭동작용을 통해 생명체는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인간 중심적으로 바라보자면,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활동인 인지 활동은 결국 수동적인 적응과 맹목적인 생존과정이라는 목표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스스로 발현하고 변화하는 생명체라는 것입니다. 인간 각자는 인식하고 행동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투영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들을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 생명체가 생존하는 길인 것입니다. <스피노자의 뇌>와 같이, 뇌과학과 인지과학을 통해 인간에게는 과학적으로 무한경쟁을 기제로 한 자본주의 사회보다는 상호 간의 협력과 섭동작용으로 움직이는 공산주의 사회가 더 적합할 것이라는 좌파적인 테제에 까지 이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총 8권의 책들을 소개해드렸습니다. 로갤에서는 다소 뜬금없는 도서 목록일지도 모르지만, 다음 책들을 통해 로갤러 여러분도 다양한 관점들을 체화하여 좌파 운동의 경향을 다각적으로 이끌어나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길고 두서없는, 다소 반동적일지도 모르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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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도 중요하지만 사상, 철학 없는 투쟁은 폭동에 불과하지 개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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