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주제에 대한 우리의 고려의 주요 목표는 기본적 "이론"들에서 기억되는 사실들을 반복하는 것을 불가결하게 만든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 "예기치 못했고" 변형된 매우 현대적인 자본주의가 우리의 관점과 마르크스주의적 방법 그 자체에 대한 재검토하게 한다는 주장의 열풍을 비판하는 경우엔 똑같은 단어와 문구를 반복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
이 잘못된 입장은 우리 교리(doctrine)의 기초적 개요와 기본적 요점에 대한 인식을 거부하거나 심지어 완전히 무시하는 것과 쉽게 관련될 수 있다.
현재 러시아와 중국의 혁명적 형태에 관한 모든 논의는, 과거에 전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지배하던 세계의 많은 지역에 산업화와 기계화가 등장하는 역사적 현상에 대한 판결로 귀결될 수 있다.
산업주의를 건설하고 기계화를 행하는 것이 국가적 중앙 계획이 수립되는 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과 같다는 것은 잘못된 테제다.
고전적으로,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와 기계화를 동일시한다.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에서 기계적 힘을 사용하는 차이는 양적인 것이 아니며,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관리가 한정된 써클에서 완전한 써클로 넘어간다는 사실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인간 사회가 기계 사용의 자본주의적 특징을 타도하는 데 있다. 그것은 훨씬 더 철저한 것이며, 저주받은 "공장제"와 노동의 사회적 분업과 반대되는 "사람들 간의 관계"로 구성되는 것이다.
세 가지 역사적 형태 : 자율적 기업의 산업주의, 더욱 더 집중된 기업들과 일반적으로 관리되는 기업들의 산업주의, 사회주의. 마르크스는 "아주 처음부터" 이 세 가지를 예견하고 설명했다. 예견되지 않은 것과 이 모든 것의 윤곽을 그려낸 분석의 틀을 벗어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교조주의"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엿이나 먹으라 해라. 이 단어를 사용한 이들은 모두 배신자였다. 마오쩌둥은 그것[교조주의를]을 "소똥"과 비교했다. 음, 맛있는 식사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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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