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쇼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며 민주세력의 정치화는 합법정당 건설이 아니라 민족민주전선 강화와 제도정치공간에서 공개정치부대를 구축, 단일한 민주연합당을 건설해야 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과 변화, 체제의 개량은 어느정도는 성취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다음 지배세력이 양보를 통해 헤게모니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는 측면을 같이 봐야 한다. 물론 지배세력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상황의 변화에 대해 본질이 변화하지 않았다고만 주장하는 것은 무능한 고집이다." - 김근태

민청련이 창립된 1983년 이후 이에 자극 받아 노동운동, 농민운동, 문화운동 등 운동조직들을 중심으로 민중민주운동협의회를 결성했다. 한편으로 재야의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민주통일국민회의가 결성됐다. 그리고 이 두 연합체가 다시 통합해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약칭 민통련)을 만들었다.

그런데 민통련이 제 역량을 갖추고 활동력을 키워나가는 도중에 김대중, 김영삼을 주축으로 한 야당 세력이 재기해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격을 개시했다. 그 순간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그 여세에 떠밀려 민통련과 양 김 세력이 연합전선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약칭 국본)였고 이 연합전선의 깃발 아래 6월 민주항쟁이 전개됐다.

그러나 6월 민주항쟁으로 쟁취한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양 김이 분열하고 그에 따라 운동 세력도 분열함으로서 국본이라는 연합전선은 붕괴됐다. 운동 세력 내부를 보면, 연합체인 민통련이 대선에서 김대중 비지의 노선을 취했기 때문에 민통련이 예전과 같은 운동 세력 총연합체의 위상을 가질 수는 없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운동 세력의 새로운 연합에 대한 논의가 촉발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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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세력 내부에서 각 그룹 마다 논의해 오던 '새로운 민중운동연합'에 대해 김근태는 출옥 후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그러한 자기 생각의 대강을 9월 3일 성만민청련 창립식 기념강연에서 '80년대 후반 민족민주운동의 전망과 과제'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얼마 뒤 기관지 <민주화의 길>과의 특별대담 '민족민주운동의 현 단계와 과제'를 통해 밝혔다.

김근태 생각의 핵심은 운동 세력의 재편에 대한 논의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연합전선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정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전선을 두 개로 나누어 생각하자고 제안했다. 하나는 민족민주운동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전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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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전선은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사회 계급에서 차이가 있었다. 민족민주전선은 다수의 노동자, 소생산자, 농민, 도시빈민, 중소자본가를 토대로 한 전선이고, 현실 정치세력으로는 민중운동역량과 재야운동의 일부로 구성된다. 반면 국민전선은 중소자본가와 비독점대기업을 주 토대로 하며, 현실 정치세력으로는 제도정치의 야당 세력과 재야운동의 일부로 구성된다.

각 전선이 기반하고 있는 토대의 차이는 이들의 정치노선의 차이로 나타나는데, 국민전선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성취에 중점을 두지만 민족민주전선은 민중의 이익이 실현되는 민주주의, 그리고 분단의 극복을 추구한다.

김근태는 국민전선이 비록 불철저한 민주주의에 자족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들이 군사독재와의 비타협적 투쟁에 앞장서는 한 그들을 배척해서는 안 되며 함께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운동세력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민족민주전선을 튼튼하게 꾸려내는 것이라고 했다. 튼실한 민족민주전선을 구축하고 그 힘으로 국민전선이 이끌어 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근태의 이러한 구상은 지난 대선에서의 운동 세력 간 대립과 분열을 해소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이는 군사독재정권과의 투쟁에서 운동세력의 전선과 제도정치권의 전선이 이중으로 존재함을 인정하고 전략을 전개해야 된다는 것을 받아들인 현실주의적인 노선으로, 운동세력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했고, 민중의 정치역량이 강화되었으며, 사상의 통합성이 높아지고 지배체제가 고도화되었으므로 대중정당이 필요하며 그것은 합법적 지위를 갖고 활용하여야 한다" - 장기표

"지하정당은 사노맹의 활동에서 보이듯이 존립 자체가 어렵고, 활동의 의의도 크지 않다. 국민대중 속에서 사랑받는 조직으로 당을 건설해야 한다. 당은 반합법, 비합법 운동의 지도기관이 아니고 민중권력 창출을 위한 전략적 자리매김이란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 김문수

이렇듯 두 개의 전선론은 장기표와 김문수를 중심으로 한 합법정당론자들의 반발을 샀고, 합법정당론자들은 재야를 이탈하여 민중당을 창당하게 되는데, 민중당은 1991년 1월에 치뤄진 지방선거에서 42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1명 당선, 1992년 3월에 치뤄진 14대 총선에서 51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한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한채 정당법에 의해 해산된다. 처절한 실패였다. 당 지도부였던 이재오, 김문수 등은 민자당에 입당한다.

이에 김근태는 합법정당론에 대해서 재야의 일부가 제도권내에 어떻게 자기의 교두보를 구축하는가의 문제를 정치세력화로 잘못 해석했다고 비판하며, 통합된 재야의 강력한 힘과 제도정치권이 연합해야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거대여당의 횡포에 맞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민주대연합론의 등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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