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로 인해 반교권주의가 확산된 이래, 농촌의 보수주의 세력에 대한 대결을 마다하지 않는 혁명적 자유주의 세력은 낙후 지역 대중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충격은 유럽 사회 진보를 크게 촉진시켰따. 그러나, 그 충격에 반발하는 반동은 혁명적 자유주의가 사탄의 무신론, 타락과 방종을 갖고 올 것이며, 종국에는 기존의 '성실한 사람'들이 고수하던 모든 '상식'을 파괴해버릴 것이라는 내용으로 그 정체성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위기감에 힘입어, 자유주의에 대항할 목적으로서 새로운 형태의 '민중의 보수주의'가 만들어졌으니, 이게 포퓰리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포퓰리즘은 스페인, 독일 동부 지역, 동유럽 및 남유럽에서 성행하였는데, 과거 정치적 역량의 모든 기반을 구 귀족 세력에게 맡긴 기존의 보수주의와 달리, 포퓰리즘은 농촌의 대중을 그리스도교와 낭만주의(엄밀히 말하면 그리스도교 교리 자체보다는 봉건적인 낭만주의에 더 쏠려져 있었다)라는 가치로 선동하여 이들을 동력으로 갖고 있는 대중적 보수주의 운동이었다.
유럽 포퓰리즘의 이러한 역사는 유럽의 보수주의 정당이 유독 '인민당'(people's party)이라는 당명을 고집한 기원이 되었다.
전근대 시기 포퓰리스트 운동은 산업 사회가 발달하지 않은 농촌 지역에 국한이 되어있었고, 그 동력은 농촌의 중농, 이른바 농촌 폭력배를 주축으로 갖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산업 발전에 관한 비전이 없었다. 이 운동은 자유 무역에 반대한 동시에 봉건 사회에서 특수하게 강조된 형태의 '그리스도교 이념'을 기점으로 뭉친 공동체를 강조하였다. 한편으로, 자유주의의 확산이 유럽 사회를 부패하고 타락하게 만든다고 믿고 있었다.
때에 따라서 농촌의 포퓰리스트는 도시에서 부상하는 사회주의 담론을 일부 흡수하여 외형적으로는 약육강식에 반대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구 체제의 유제를 유지, 복구하려는 반동 세력이었다.
유럽에서 산업화가 촉진된 이후 포퓰리즘의 기원으로서 농촌 포퓰리즘은 그 힘을 급속히 잃었지만, 농촌 포퓰리즘이 추동했던 일련의 그리스도교 사고관과 폐쇄주의, 단순무지한 룸펜적 사고는 유럽 사회에 강렬한 영향을 주었다. 이후 농촌 포퓰리즘은 파시스트 운동에 급격히 빨려들어갔다.
파시스트 운동은 대중을 정치 운동 일선에 동원하기 위해 대중이 갖고 있던 기존의 포퓰리즘 사고를 자극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는 범죄자에 대한 무자비한 사형 확대를 주장했고, 한시적이지만, 외형적으로는 과도해보일 정도의 시혜적 복지 정책을 옹호하였다. 한편으로, 외국인의 범죄로 인해 생겨날 혼란의 가중과 기존에 유지되던 전통의 파괴로 인한 타락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들의 행동 방식은 단순했고 그 행동이 '상식'이라는 이유로 스스로의 운동을 정당화했다.
이들이 이 '상식'에 의존한 이유는 그들이 사회 현상을 설명해낼 만큼 충분한 이론적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것에 기인했다. 더 나아가서, 전근대 사회에 비해 선진적인 제도들, 그리고 근대적 국가 기관에 대해 이성이 사회에 뿌리내리는 한 계기(moment)로서 설명하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교 가치관을 부정하는 계몽주의의 산물이라는 이들의 반동적 기조는, 이들 스스로의 정치, 사회 이론을 발달시키는 데에 커다란 방해 요소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이들은 추상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실재적인 '상식'을 슬로건의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초기 포퓰리스트 운동이 동력으로 삼았던 전근대적 사고가 '상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당시 유럽 사회에서 통용되던 '상식'의 기원을 분석해보자.
1. 특정 정치인의 신격화는 봉건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진 전쟁영웅에 관한 음유시가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농촌에서 자유주의의 타락을 퇴치한 신화적 영웅을 갈구했고, 그러한 투사는 특정 정치인에 향하였다. 이는 한편으로, 파시즘이 영웅주의라는 성격을 갖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2. 한시적인 의미에서 '시혜적 복지'는 본래 봉건 사회에서 그리스도교를 주축으로 한 교회가 실시했던 구휼 활동과 관계된다. 농촌 포퓰리스트가 복지를 다루는 입장은 근대적인 기법의 동원을 고려하면서도, 그 사유 형태는 상당히 전근대 사고에 머무른 것이었다. 이들은 복지를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로서 파악하지 않았다. 이들은 복지를 종교적 관점에서 논해지는 선과 악의 실재적 측면에 끼워맞춰서 파악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3. 범죄에 대한 강력 처벌은 봉건 사회에서 이들이 생활의 안정의 영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세뇌당했던 내용과 일치한다. 그리스도교 가치관이 범죄에 대한 강력 처벌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봉건 사회에 대한 낭만적 관점을 기초로 갖기에 매우 단순한 사고로서, 범죄로부터의 자유를 범죄자에 대한 최악의 형벌, 즉, 사형제의 유지로서 파악한 것이다.
4. 사회에서 소비되는 단일 담론에 대한 몰입은 이들이 정치 운동에 관여하면서도, 정치 운동의 실체를 파악하기보다, 운동에서 보여주는 행동 양상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연결된다. 본래, 단일 쟁점에 몰입하는 이들의 행동 방식은 농촌 포퓰리스트 운동을 주도하던 몇몇 활동가가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고질적인 수단으로서 사용했던 것이다.
가령, 지역에 발생한 살인 사건에 대한 근시안적 해결책들에 관한 논쟁에 몰입하면, 이 사태에 관심을 갖는 대중을 모을 수 있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외국인과의 갈등에 관한 미시적인 사건, 그리고 그 논쟁에 몰입하면 마찬가지로 이 사태에 관심을 갖는 대중을 모을 수 있다. 이러한 행태는 일관된 이론 체계가 존재하지 않던 농촌의 포퓰리스트 운동이 대중이 갖는 일시적인 관심을 운동 동력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모순을 전체의 통일로서 파악하지 못 하고, 모순을 모순이 갖는 내용으로서, 그리고 그것의 현상적인 발로로서 그대로 마주하여, 그 현상에 압도된 상태로 수동성을 놓지 못 한다는 헤겔의 말처럼, 포퓰리스트 운동/파시스트 운동은 대립을 통일로서 파악하지 못 하는 '미개인'의 기계적 운동에 불과한 것이다.
5. 음모론 신봉은 농촌의 포퓰리스트 운동에서 가장 강조된 것이다. 애석하게도, 농촌 포퓰리스트의 진정한 주체들은 이들이 혁명적 자유주의의 공세를 걱정하기도 전에 현재 음모론으로 일컬어지는 설을 확고에 확실을 더한 사회의 진리로서 인식했다.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그들은 현재 음모론이라고 치부됐던 수많은 '지식'을 '상식'이라고 여겼다. 평생에 가깝게, 그리고 조상에게 전승을 받아서 믿고 왔던 이 '상식'이 파괴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괴로운 일이다.
유대인에 대한 음모론, 악마와 정치적 행위에 관련된 모든 음모론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음모론은 제1차 세계 대전 말기에 이어진 배후중상설을 구성하는 기초가 되었다.
종합해보자. 포퓰리즘이 말하는 한시적인 '시혜적 복지', 범죄에 대한 강력 처벌, 사회에서 소비되는 단일 담론에 대한 몰입, 음모론 신봉, 특정 정치인 신격화 등은 본래 현대 이후의 특수한 상황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식'은 전근대 당시, 봉건을 앞뒤 가리지 않고 파괴한 혁명적 자유주의에 대한 반발 심리로서, 근대 초기에 정체성을 획득하게 된 반동 기류 그 자체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상식'의 내용은 점진적으로 변했지만, 그것은 종교와 함께 '연합 전선'을 형성하였고, 그만큼 그 생명력 또한 종교와 다를 바 없었다. 오늘날까지 파시스트 운동은 대중이 '상식'을 추동하며, 대중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숟가락을 얹어가며 열심히 '투쟁' 중에 있다.
왜 대한민국 대중들과 일부 정치인들이 떠오르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