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데오 보르디가
마력의 영혼
(1953)
일과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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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교리로 돌아가보자.
2천년 가량 존속된 로마 교회같은 기관에서는(지금은 이것을 일찍 제거하는 것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무오류의 교황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교구의 사제들이 모든 것을 가르친다.
웃고 싶으면 웃어라, 멍청아, 여기 웃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르크스는 물리적 개념과 함께 기계를 정의하기 시작해 역사적 정의로 나아가며,
이는 인간-기계 관계의 거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데 유용하다.
단순 기계의 기계적 이론은 그들에게 적용된 에너지를 부품을 통해 더욱 더 편리한 형태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다룬다.
그 부품은 사람의 손일 수도 있다. 이 부품들은 새로운 에너지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평범하게 들어간 에너지만큼을 반환한다.
그들은 지레, 쐐기, 도르래 등등이다. 한 사람이 1톤짜리 바위를 자기 힘만 가지고 들어올릴 순 없지만,
그것에 긴 지레를 사용하면 가능하다.
그는 자기 힘만 가지고 바위를 견인할 수 있는 더 작은 조각들로 나눌 수 없지만, 쐐기와 망치의 강타를 통해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단순 기계는 사업의 기반으로 둘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고전적인 정치경제학은 노동이 곧 가치라는 것을 안다.
노동(노동의 양)은 기계적 힘과 같은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말한다 : 힘 곱하기 거리(바위의 움직임)가 에너지를 준다고.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노동자의 수에 곱해진 노동시간이 가치를 준다고.
따라서 우리가 생산에 있어서 노동자들의 근력만 사용한다면, 단순 기계들 - 한 명의 장인이
다루는 사회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올바르게 더해질 수 있는 도구들- 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지레를 가지고, 그 사람은 8시간 동안 바위를 10미터 옮긴다 해보자 : 레버가 없는 8명의 노동자들도
한시간 동안 동일한 거리를 옮겼을 것이다.
기계적으로 복합적 기계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이런 비교적 더 크거나 작은 단순기계들의 복합체(바퀴, 톱니바퀴 등등)는
모터 기계가 연료의 열과 다른 형태의 에너지들을 기계적 힘으로 변환하듯이 새 에너지를 생산하지 않는다.
이제 가치의 존재로 하여금 인간에 의해 그토록 많이 물리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노동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공산주의적 기계화로만 가능하다. 자본주의적 기계화는 에너지 관계에 있어서 물리적으론 옳아도 사회적으론 옳지 못하다.
기계적 에너지가 노동에 있어서 인간노동을 더 적은 시간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소개되는 한은
그런 전환은, 이데올로기적이고 법률적인 표현이 어떠하든, 자본주의적 과정이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수공업자의 사회적 시대의 도구와 자본주의적 시대의 기계의 차이는
다른 에너지로 보조되는 근력의 사용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사회적인 의미에서 기계로 명명되는
다양한 현대 산업들과 공장들의 모터 기계 뿐이 아닌 에너지의 송신기(에너지를 더하지 않는 단순 기계들의 연속)와,
원자재가 변환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적용되며
통속적 테크놀로지가 기계 도구로 부르는 것들(선반, 프레스, 펀치 등)의 차이로 보았다.
게다가, 우리는 작업 기계들이 기계적 힘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크랭크와 페달을 통해 인간의 힘을 사용하는 기계화의 단계에는 이미 도달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우리는 비-인력 에너지로 작동하는 기계가 자본주의적 공장
오래 전에 존재했다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인류는, 사실 다른 자연적 에너지를 채용하는 것을 아주 빨리 배웠다.
단순히 쟁기를 끄는 황소 두 마리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고, 사람이 삽을 가지고 팔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영역을 갈아엎게 해주는 적절한 기계다.
그러나 다시,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한 명의 노동자가 1분에 69개의 가락을 짜내는 클라센의 원형 편직기는,
선사적이지 않은, 현대적인 인간에게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와트의 방직기가 바로 그러하듯 도구다.
전자는 모터가 동력인 경우에야, 후자는 1735년에 그러했듯이 ...당나귀가 동력인 경우에야 기계가 될 것이다.
동물은 인류가 생산을 위해 사용한 최초의 자연적 에너지원이었으며, 아주 먼 옛날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다른 것들도 있었다. 바람과 흐르는 물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력을 대신한 기계적 힘의 산발적이고 흩어진 사용을,
기계적 모터 (증기 엔진)의 그것을 오랫동안 선행한 기계 도구의 소개 대신에 자본주의적 기계화로 부를 수는 없다.
"이것은 기계 장치나 도구, 작업 기계의 마지막 파트이며, 도구나 작업 기계, 18세기 산업혁명의 시작과 함께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것은 수공업이나 매뉴팩처가 기계 장치가 이끄는 산업으로 전환될 때마다 그 시작점에
지속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자본론 1권 494p)
한 걸음 물러나보자. 무역과 , 독립적이고 고립된 장인 노동자들이 있는 우리는 전-자본주의, 길드-봉건제 체제에 있다.
매뉴팩처의 등장과 함께, 우리는 이미 완전한 자본주의에 도달한다.
지적된 조건들은 실제로 현실화되었다 : 노동자의 대량 집중, 건물을 빌리고 물질을 구입할 수 있고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주인의 손아귀에 있는 자본.
기계화 이전조차도, 단순한 매뉴팩처는 거역할 수 없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단순한 수도구만 가지고도 여러 노동자들이
다양한 과업을 수행하는 노동의 기술적 분업이 존재하는 조직화된 매뉴팩처로 바뀌었다.
노예제 사회의 '주인'이란 명칭은 덜 가증스러운 "경"을 비열하게 대체하며 부활했다.
경은 살아가고 싸워나가는 기사였으며, 한 인간이었는데, 주인은 종국에 가서는 괴물같은 오토마톤이 된다.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