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원 국민대 교수의 러혁 100주년 학술발표회 글인 <러시아혁명과 소련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그리고 체제 전환>에서 펌.


1.

[상략] 신자유주의 이념이 내세우는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의 제한이라는 것도 사실은 국가개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친시장적 국가개입을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 올바르다는 관점 하에서 볼 때, 푸틴과 올리가르히 간의 관계로 대변되는 국가와 자본 간의 관계는 대립적이거나 일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가 아님은 물론이며, 해외자본과의 관계 역시 국내자본과 해외자본 간의 대립으로 보는 것은 현재 러시아에서의 국가와 자본간의 관계에 있어서 올바른 분석을 방해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푸틴 정부는 이러한 구조 변화를 통해 경제 성장을 주도해 왔다.


옐친 초기의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식 급진 개혁 정책 기조는 단 수년 만에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자유화, 사유화, 탈규제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확고히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사회는 심각한 변형을 겪었다. 특히 서구 주도의 신자유주의에 의문을 갖는 푸틴 정권의 등장 이후에 강력한 국가가 자본을 지배하면서 마치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정책을 도입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분배적 측면이나 노동과 사회복지 영역 등 전 사회적 차원에서 민영화나 시장화, 유연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등 러시아는 명백하게 국가 신자유주의(state neoliberalism)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2000년대 중반 이후 고유가에 힘입어 러시아 경제는 급속하게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임금과 연금, 고용과 실업, 복지 예산 등등 많은 지표들이 크게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충격적인 사회경제적 지표들은 크게 개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회양극화 현상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는데, 이는 경제 성장과는 달리 분배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공식적인 통계 자료로도 1992년 지니계수는 0.289였으나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했다던 2000년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2년 0.420에 이르렀고, 10분위 배율로도 1991년 4.5배에서 1994년 15.1배에서 줄지 않아 1012년에는 16.4배에 이르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표면화된 2008년 가을 이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주가 하락과 단기금리의 급등, 루블 가치의 하락 등 금융시장의 동요와 함께 급속한 경기후퇴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석유와 가스 수출이 전체 수출의 약 60 % 이상을 차지하는 자원 의존형 경제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경제 제재에 이은 유가 폭락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러시아 연방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이후 빈곤 노출 인구(at-risk-poverty)는 거의 러시아 인구의 40% 이상, 약 64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3.

2000년대 푸틴 정권 출범 이후 서방 지원 하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비판적인 것은 수사일 뿐, 국내 정책 차원에서 볼 때, 오히려 푸틴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2001년부터 2006년의 기간 동안에 푸틴 행정부는 연금 개혁과 여타 사회보장 개혁 등 1990년대 내내 공산당을 비롯한 여러 반대파들에 의해 저지되어 이전 옐친 정부 때에는 실행하지 못했던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완수했다. 물론 동시에 정부는 모자 가정이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들이나 수당에 대해서는 더 많은 금액을 책정하기도 했다.


푸틴 정부는 소위 ‘(복지 시스템의) 합리화, 사유화, 보조금 삭감, 그리고 극빈층에 대한 국가 보조’라는 원칙 하에서 복지 시스템의 개혁을 추구했다. 푸틴 정부는 세계은행으로부터의 차관 도입 등을 통한 직접인 개입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사회 정책 개혁 방향은 본질적으로는 사실상 옐친 시대의 개혁 노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푸틴 정부는 빈곤층이 아닌 집단에 대한 다양한 복지 혜택이나 복지 급여 등의 축소를 철저하게 지향했다. 일부 공무원들에 대한 혜택들을 삭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일련의 법안들을 통과시켰는데, 특히 일부 수당의 현금화 보상 정책은 푸틴 행정부의 국가 신자유주의의 특징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정부는 연방 정부에서 지급하는 여러 사회 수당들을 축소하거나 아예 폐지시켰고, 수혜 자격도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안을 상정했다. 특히 최소주의적 잔여 복지 시스템으로의 전환 속에서 과거 전쟁 영웅, 노동 영웅 등에 대한 수급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2000년 초에 그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천명했는데, 그 예로 그는 연금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고, 주택과 각종 요금들의 자유화를 밀어붙였다. 2005년도에는 바로 소위 사회 복지의 현금화 정책이 선언된 바 있었다. 연금생활자들과 전쟁 영웅들에게 과거 무료로 제공되었던 복지 대신 국가의 계산에 따라 현금으로 지급되는 법안이 상정되었다. 소위 제 122조 법안으로 불리는 ‘현금화에 관한 법’의 도입은 매우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소비에트식 복지 수당 제도의 종말을 의미하는 이 현금화 정책은 연방 정부와 지방 정부 간의 노동 분업을 조절하고 재조정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여러 복지 수당 관련 재정의 상당 부분을 지방 정부의 책임으로 이관하는 것이 골자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 법안에서는 복지 개념에서 ‘개인화’ 논리가 포함되어 있어 국가의 책임 부담을 개개인의 수령자들에게로 전환시키는 논리가 강조되어 있었는데, 즉 현금화된 사회복지 혜택을 이제는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게 된 것이다. 이 법으로 인해 연금생활자, 전쟁 영웅들, 장애인, 한 부모 가정 등 여러 취약 계층들에게 있어서 전반적으로 사회 복지 혜택이 감소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 시기 동시에 진행되었던 주택 및 사용 요금(세금) 자유화로 인해 이들은 한층 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 외 거의 모든 사회부조 영역들은 엄격한 가계 자산 조사와 지급 대상자 설정에 기초한 기본적 안전망 구축을 목표로 하는 최소주의적 잔여주의 원칙으로의 후퇴라는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사회 부조는 현금 및 현물 지급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자 모두 지속적인 축소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에너지 수출로 인한 경제 성장으로 사회 복지 정책으로의 예산은 증가하였으나, 그 개혁의 방향은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잔여주의적 원칙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즉 석유와 가스의 수출 호조로 어느 구 소련 국가들에 비해 급격한 경제 발전을 하고 있는 등 사회정책 개혁의 물질적 토대는 확보되었으나, 비효율적이고 관료주의적인 후견주의(paternalism)적 방식은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채, 영미식 보다 더 자유주의적이고 최소주의적이며 잔여적인 사회복지 정책을 받아들이는 등 최악의 조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 주도 사회 정책의 형식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 정책 영역에 있어서의 대대적인 사유화 정책 대신 채택한 부분적인 상업화, 현금화 정책은 구 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