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겁나게 많아지는 장문을 기피하는 현상을 보고 생각나서 싸봄
확대생산되는 가짜뉴스, 선동당한 사람들... 아 무섭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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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에 장문을 읽는 것을 꺼려하는 현상이 자주 보인다.
아니, 장문뿐만이 아니다. 그냥 텍스트 자체를 거부하는 현상이 보인다. 설사 거부하지 않을지라도, 기피하는 것은 확실하다.
‘3
줄요약문화의 확산, 신문기사/책 읽어 주는 서비스의 확산, 정보를 요약하여 전달해주는 매체의 확산 같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놓고 장문이라 안 읽는다거나, 기사(심지어는 영상매체에서도!)제목만 보고 댓글을 적는 등의 행위를 쉬이 찾아볼 수 있다.

어찌하여 사람들은 장문을 기피하게 되었을까?
크게 2가지의 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시간’. 당연하게도, 긴 글을 읽는 데엔 긴 시간이 소비된다.
현대 자본주의가 빚어낸 현상-1초의 시간이라도 경제적으로 쓰도록 하는-으로 인해 사람들은 가능한 한 시간을 단축하도록 강요당한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표어가 지금도 널리 쓰이는데, 어찌 사람들이 장문 읽기같은 비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쏟겠는가?
모든 시간은 자본가들의 이윤창출을 위한 근로, 그리고 노동자를 빠르게 재충전하여 다시 근로하도록 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여가시간으로만 귀결된다.
노동자가 자기계발을 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자기계발을 위한 독서, 신문 기사, 기고문-전부 장문-을 읽을 시간이 있겠는가?

두 번째는 에너지’. 이 또한 당연하다. 긴 글을 읽고 능동적으로 해석하며 자료를 정리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많은 생체적 에너지 소모가 필요하다.
위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모든 노동자의 에너지는 자본가를 위한 근로에 쓰이도록 강제된다.

헛소리라고? 노동자들은 단순히 노동과 휴식 외에 적극적으로 개인의 선호를 파악하고, 그 선호에 맞는 여가-효율적이지 않더라도-를 하고 충분한 여가 시간이 부여된다고?
어림없는 소리! 본디 궁극적으로는, 노동자들에게 여가는 허용되지 않다시피 하였다.
산업혁명기 영국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면, 여가는 오로지 잠 잘 시간만을 최소한(!)으로 보장해 주었다. 지금도 그 근본 원리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법적으로 강제적으로 줄여진 노동 시간으로 인해 노동자들에게는 추가적인 휴식 시간이 제공되었다.
하지만 이 휴식의 근본적 목적은, ‘보다 유용한 근무가 가능하기 위해이다.
휴식을 충분히 취하지 못한 노동자가 졸다가 기계 부수는 것보다는, 몇 시간 더 재우고 놀리는 게 낫다는 것을 자본가들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근무시간을-지금 그리도 급진적이라 평가받는-52시간까지 줄였으나, 이 역시도 주 5일 근무를 상정하면 하루 약 10시간 근무이다.
이동 시간 등 노동을 위해 부수적으로 소모되는 시간을 더하면 사실상 하루의 반이 노동을 위해 소모된다.
노동 시간이 더 적은 경우? 이는 노동시간에 비해 많은 급여를 받거나, 혹은 동시에 수 개의 직업을 병행하는-아르바이트, 투잡 등의-경우이다.
전자야 그렇다치고, 후자는 오히려 위보다도 더 적은 시간을 여가에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충 잡아 근로 및 부수 시간을 12시간, 식사 시간을 1시간 정도로 잡고 취침 시간을 8시간 정도로 하면 여가에 쓰일 수 있는 시간이 하루 3시간뿐.
3시간의 여가에 사람들은 극도의 효용을 줄 수 있는 여가를 찾는다.

노동자들 외에 잠시 학생에 관해서도 말하자면, 이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사상과 노동력을 가진 노동자가 되기 위한 교육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것을 강요받는다. 학생들의 경우는 이 과정에서도 약간의 장문 혐오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수능 국어-그 기다란 지문들-즐겁게 읽는 자가 몇이나 되리?
글을 지식 전달과 의견 피력의 수단이 아닌, 사회적합성을 평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다니. 학생들은 장문을 보면 피로해 할 것이다. 당연한 결과일지도. 아무튼.

이렇듯 여가시간이 짧은데, 짧은 시간 안에 최대의 만족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나름의 방법을 찾는다. 나름의 방식으로 여가를 즐긴다.
그러나 사회인으로써, 민주 시민으로써 시사에 대한 것도 알고 의견을 피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으로서, 상식을 늘리고 인격을 높이는 자기 계발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허나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대부분의 시사정보는 신문기사의 긴 글이나, 뉴스 프로그램의 보도로 이뤄지는데, 앞서 말했듯이 이를 원 정보-이미 언론사가 가공한 것을 이리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만-를 읽고(보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여 의견을 피력하기엔, 너무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된다. 신문-인터넷 신문이라도-을 읽으려면 글자를 보고 해석하여 정제해야 하고, 뉴스를 보려면(TV방영되는 것에서는) 프로그램 전체를 보며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한다. 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신문 사설의 제목만을 본다. 자극적으로 쓰여 눈길을 끄는 제목을 보고 내용을 유추해낸다. 한 두 줄이라도 읽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뉴스 프로그램을 모두 볼 시간이 없으니 유튜브에서 간추린 뉴스를 본다. 간추린 뉴스는 양반이다. 뉴스 같은 중립적(?)’이고 온건한 내용에 흥미가 없거나, 시사에 추가적인 관심이 있지만 현상 그 자체를 파악하여 의견을 낼 시간과 에너지가 없는 사람들이 발생한다. 이들은 남들이 가공해준 정보를 찾는다. 대표적인 정보 전달책으로 정치, 시사 유튜버들. 지식 뭐시기, 상식 뭐시기 같은 걸 달고 활동하는 사람들이나, 진짜로 정치인 유튜브 채널이나. 등등.
자기 계발도 마찬가지. 스스로 책을 읽고(애초에 책을 사는 데 드는 돈부터) 정보를 정제하여 받아들이기까지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 어렵다. 다른 일 하며 들을수 있는 책, ‘오디오북이던가? 그래도 원 내용이라도 들을 수 있으니 조금 나을지도. 더한 경우는 아예 남들이 책 자체 정보까지 가공하고 정제해서 전달해 주는 것을 수용한다. 3줄요약 같은 것도 큰 차이 없다. 어떤 내용을 선정하여 요약하는가. 이에 따라 글의 논조는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물론 3줄요약은 대부분 글 작성자가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만.

그렇게라도 읽고 듣고 알면 되지? 뭐가 문제라고 이리 글을 쓰냐고?
이제부터가 핵심이다. 왜 스스로 읽지 않는 것이 문제인지 주장해 보겠다.
1.
정보가 부정확해진다. 원문이 아닌 이상에야, 그 정보가 원문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2.
남의 입맛에 의해 가공된 정보. 요약을 할 때도, 어느 부분을 요약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바뀐다. 정보 제공자의 의도대로 가공된 정보일 수 있다.
3.
내 객관적 시각에서 보기 힘들다. 스스로 읽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니 당연하다.
4.
정보 전달자의 권위에 의해 정보 신뢰도가 비정상적으로 왜곡된다. 정보를 전달해 주는 사람들이, 아무 권위도 없이 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 인정을 받으니 하는 것이지. 그러나 이 인정을 맹신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맞는 말 하다가도 잘못된 말을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5.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이미 형성된 여론()을 무조건적으로 따르게 되는 오류 발생. 즉 요즘 많이 쓰이는 대가리 깨진 X’의 탄생이다. 부정확하게, 정보 전달자의 입맛에 맞게 왜곡되고, 신뢰도가 높아진 정보를, 객관적으로 검증해 낼 수 없어진다. 특히 반복적인 수동적 정보수용으로 같은 정보 전달자를 공유하는 집단이 형성되었다면, ‘집단의 입맛에 맞게 왜곡된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며,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집단의 의견에 동조하게 된다. , 어찌 그 집단의 프레임 바깥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것이 그리 힘들단 말이냐!
결국 집단에 의해 선동당한 이들은 서로를 가짜뉴스, 대가리 깨졌다고 비난하며 확대재생산된 정보와 분쟁이 충돌하며 회오리친다.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진 민중들의 풀(Pool)이 없어지고, 몇 개의 거대한 집단만 남는 것이다!
자유로운 사고가 없어진 민중의 정치는 엘리트주의에 빠지기 십상이다. 프레임 바깥에서 세상을 보는 자들이 박쥐라고 매도당하는 것도 눈에 선하다.
이는 먼 일이 아니다. 충분히 현실로 다가왔다고 생각한다.
민중이여! 스스로 읽자! 그리고 생각하자! 또한 우리가 읽기를 힘들게 만드는 자본주의 착취를 때려부수자!


긴 뻘글을 봐 준 동지들께 깊은 감사를.
오류 지적, 의견 제시는 언제나 항상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