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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bolshevik.org/hangul/Trotsky-writings/3rd%20International%20after%20Lenin.html


새로운 이론은 소련이 군사적 간섭 때문에 붕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경제적 후진성 때문에 붕괴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괴상한 생각을 으레 존중해왔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에서 자국을 방어하려는 근로대중의 준비성은 이 국가를 공격하려는 자본주의 노예들의 준비성보다 훨씬 더 클 것이므로, ‘군사적 간섭이 왜 우리를 재앙적 위험에 처하게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적(enemy)은 기술에서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부하린은 오직 군사 기술적 측면에서만 생산력의 우위를 인정한다. 그는 포드(Ford)사의 트랙터가 크뢰조(Creusot)사의 총과 마찬가지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총은 가끔씩만 작동할 것이지만, 트랙터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압력을 가한다는 점이 유일한 차이다. 게다가 트랙터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총이 자기를 후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중략)

[레닌은 이렇게 말한다] ‘소비에트공화국이 자본주의 세계 전체에 포위되어 있는 고립된 변방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의 완전한 경제적 독립과 우리에게 닥친 위험의 소멸을 상상하는 것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환상이고 유토피아주의 일 것이다.’(레닌, 《전집》, 제17권, 409쪽. 트로츠키의 강조)

따라서 주요한 위험은 우리에게 적대적인 자본주의 경제 안의 ‘고립된 변방’이라는 소련의 객관적 처지로부터 발생한다. 그렇지만 이런 위험은 줄어들 수도 있고 늘어날 수도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사회주의 건설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작용에 달려 있다. 물론 궁극에 가서는 두 번째 요소, 즉 세계경제 전체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우리 사회주의 체제의 생산성이 자본주의 체제의 생산성에 항상 뒤처지는 일, 그래서 결국에는 틀림없이 사회주의공화국의 붕괴로 이어지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일어난다면 어떤 특별한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가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요구되는 지도력을 발휘하여 독자적으로 산업적 기반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는 이런 새로운 국면에서 우리 경제를 훌륭히 꾸려나간다면, 우리의 노동생산성도 증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국가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유력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노동생산성이 우리나라에서보다 더 빨리 증대할 것이라고 상상도 할 수 없는가? 이 문제에 대해 똑똑히 대답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속도가 ‘그 자체로’ 충분하다(‘거북이의 속도’라는 어처구니없는 철학은 고사하고)는 맥 빠진 주장을 위한 어떠한 근거도 없다. 그러나 두 체제의 경쟁이 라는 문제에 답을 제시하려는 시도 자체야말로 우리를 세계경제와 세계 정치의 무대, 즉 소비에트공화국(이따금 인터내셔널에 대한 지원을 보증하는 자급자족적인 소비에트공화국은 절대로 아닌)을 포함하여 혁명적 인터내셔널의 행동과 결정을 위한 무대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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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소비에트 연방은 자본주의의 총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트랙터에 패배해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