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주의자에게 대중의 의식은 주어져 있는 것이며 자신의 강령을 끼워맞춰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에게 대중의 의식은 그것이 허위이든 진실이든 대중의 물질적 생활과 사회적 존재의 결과이며 이것들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개량주의자에게 국가는 중재자이자 중립적인 의견대립의 무대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에게 국가는 지배계급의 도구이다.
개량주의자에게 자본주의란 끊임없는 풍요의 증가이거나 조금만 고치면 그렇게 될 수 있는(케인스주의) 체제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자본주의란 한때는 진보적이나 심지어 발전하는 중에도 그 자체의 생산력을 주기적으로 파괴하며(공황) 결국 더 이상 인류의 풍요를 증가시키지 못하며 오히려 전쟁 등으로 퇴보시키는 체제이다.
사회민주주의의 '우경화'는 실수나 우연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혁명이론을 거부하면 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을 거부하고 국가를 중립적 존재로 봐야 하고, 마르크스주의 경제이론을 거부하고 케인스주의를 받아들여야 하며, 결국 마르크스주의 철학 전체를 거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둘 사이에 공통된 기반은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이 테세우스의 배에 남은 건 무엇일까? 이제 독일에서는 아무도 기민당과 사민당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사민주의가 갈수록 우경화되는 것도 그들이 내재한 한계탓라는뜻이군
오호...
JA
맞말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