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이후로 씽먼런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온갖 진상규명 다 튀어나오고 그랬던데
1952년에 조사될 정도로 금방 알려진 거창만해도 2차 재조사 요구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김구암살 진상규명, 보도연맹 진상규명 등 다 튀어나올정도라함
그런데 5.16이 이걸 갈아 엎어버리고 왜곡되었는데
만일 5.16이 아니였으면 이 열기가 여러모로 더더욱 불타게 달아오르지 않았을까싶다.
프랑스도 비슷하게 드골체제 무너지고 비시체제 관련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국뽕팔이에 가려진 여러 흑역사들이 다 튀어나오고 심지어는 유대인 압송에 관한 사실도 튀어나온 나머지 90년대 후반까지 불타올랐던데
아마 비슷하게 가지 않았을려나 모르겠다
내 듣기로는 머한의 제노사이드 관련한 기억이 70년대까지 은근히 퍼져있었다고 하던데 말이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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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짱시기가 마지막시기긴 했음 자료 모으는것도 그렇고 듣기로는 띵박이가 은근 슬쩍 압력넣어서 띵박이집권 도중에 오래 못갔다하는 얘기가 있긴 함 ㅇㅇ
은근 슬쩍이 아니라 아예 문을 닫아 버렸지. 게다가 문 닫기 전에 뉴라이트 인사를 위원장으로 임명해서, 온갖 훼방을 놓았던 것은 덤이고.
모아둔 자료는 자료 였던걸로 싹 갈아버려서 후속연구 예정되어있는거 싹 다 엎어버리게되었지비 ㅇㅇ 주워듣기로는 보도연맹 후속연구, 지리산 지역에 터진거 연구 얼추 기타 등등 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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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되어있을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겠지비 ㅇㅇ
한국은 68혁명의 사조가 좀 늦게 들어와서 1971년에 사회 운동이 활발했음. 비록 1년 뒤 유신으로 완전히 짓밟히지만. 청바지, 생맥주, 통기타로 대표되는 1970년대 청년 문화 담론도 68혁명과 연계되어 있으니.
4.3이나 여순 관련 피해자들도 군사정권 내내 침묵 강요당했지
조금씩 연구되곤 있다곤 하는데 규모가 너무 작아서......
에초에 공식적인 지원이 없다시피 할 정도로 존나 열악하니께 규모가 작을 수 밖에 없음
좀 아쉽지
제2공화국 때 반짝 열렸던 과거사 청산 움직임이 5.16 쿠데타로 짓밟힌 뒤에, 다시 움직임이 생긴 것은 6월 항쟁 이후부터였음. 노태우 때부터 김대중 때까지 시민 사회에서 과거사 청산 운동이 계속 끈질기게 이어졌고, 그게 노무현 때 비로소 부족하나마 성과가 나왔지.
그으으나마 제주 4.3사건의 경우는 지역신문와 지역연구자들이 노오력한게 크긴 함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