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가 모두 부르주아처럼 살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하는가?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부르주아들 또한 자기 소외를 경험한다. 

그들은 자본이 인격화된 존재이자 오토마톤으로, 끝없는 이윤의 추구에 종속된 존재들이다.

부르주아들은 이 자기 소외를 그 자신의 힘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경험하며 이 자기소외에 만족하고 이를 긍정하고,

인간 존재의 모습으로 이 힘에 빙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부르주아적 소외만 남은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소외를 없애고자 하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철폐해야 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철폐한 후라면 이런 소외는 남아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항상 작동하고 있는 것은 상품의 물신성이다.

상품은 우리의 노동이 만들어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상품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이 우리를 지배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의 축적에 사회적 관계를 종속시키며 인간관계 또한 상품으로 사고 판다.

이윤의 추구가 제일 중요한 것이 되어서 인간성은 파괴된다.

우리는 왜 사회주의자인가? 우리는 인간 위에 상품이, 인간 위에 이윤이 존재하는 사회가 존속해서는 안된다고 여긴다.

자유롭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노동자 조직이 상품 생산을 관리한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자본주의적 조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착취자가 없는데 누가 그들을 착취하는가? 시장이 존재하는 한 그들 자신이 그들을 착취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이들이 이윤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세상을 꿈꾸지 노동자들이 오토마톤이 되거나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세상을 꿈꾸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