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읽는 중이라고 했던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다 읽음.
예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히키코모리화 + 읽고 독후감 안 제출하면 졸업 못함의 2중 압박으로 하루에 50페이지를 읽는 기염을 토하면서 다 읽는데 성공했다.
기본적으로 슘페터는 사회주의에 부정적인 보수주의자이지만, 동시에 사회주의의 학술적 가치와 체계의 엄밀함이 우파들에게 저평가되었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씀.
간단히 내용을 요약하자면
1부. 맑스의 이론: 맑스의 사상과 업적은 큰 족적을 남겼지만, 후대에 내려오면서 그 특유의 총체적 세계관과 이상향에 대한 예언 때문에 종교와 비슷하게 변했다고 봄. 계급론, 자본의 집중 경향, 이윤율의 등락에 따른 경기 변동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하지만 노동가치론과 그에 따른 잉여가치론, 노동자 궁핍화 이론에 대해서는 현실과 다르다고 봄. 그리고 맑스의 사상이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며, 단순한 법칙으로 모든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함.
2부.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성장력을 예찬하고 맑스의 공황에 의한 자본주의 붕괴에 대해 공황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지적하지만, 결과적으로 자본주의가 붕괴할 것이라는 맑스의 예측에는 동의함. 그러나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유지할 사회 구조를 파괴하는 형태로 자본주의가 붕괴할 것이라고 예상함. 자본주의는 '기업가'들의 혁신과 창조적 파괴를 통해 지속적으로 경쟁을 유지하며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데,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는 그 혁신의 비용마저 아끼기 위해 혁신이 관료화, 자동화되면서 '기업가 정신'이 사라진다고 봄. 그 결과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끌던 '기업가'인 부르주아들은 소수의 재벌과 다수의 관료(기업의 사무직, 중간관리자)로 분리되고, 이들은 모두 자본주의 제도를 유지할 동기가 사라진다고 봄. 그리고 자본주의가 양성한 지식인들이 그에 걸맞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서 체제 비판 세력으로 등장하고, 이들이 자본주의의 붕괴를 이끈다고 주장함.
3부. 사회주의는 작동할 수 있는가: 의외로 슘페터는 사회주의가 잘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함. 다만, 슘페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주의는 랑게-레너 모형에서 제안하는 중앙집권적 시장사회주의 모형에 가까움(사회주의 시절 헝가리를 생각하면 쉬울 듯)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비해 자본의 무정부성, 과잉 생산이 제거되고, 국가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경제 계획을 세울 수 있고, (특허 괴물 등이 없어서) 기술 혁신이 잘 전파되고,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갈등이 없어서 더 낫다고 주장함. 하지만 동시에 사회주의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관료제, 법적 강제, 임금제, 시장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함. 노조에 대해서도 '사회적 갈등 비용을 낮추기 위해' 노조를 국가 휘하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함.
4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슘페터는 민주주의를 이상이 아닌 권력을 얻는 제도라고 생각하고,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위해 혁명, 프롤레타리아 독재 등 비민주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일시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또 문제가 없다고 봄. 그러면서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의사결정이 자동화되고 관료제가 발달하면서 민주주의의 영역이 축소될 것이며, 결국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의 영역 역시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함.
5부. 사회주의 정당들의 역사적 스케치: (대충 로붕이들이 슘페터보다 더 잘 알아서 넘어간다는 내용)
전체적으로 읽으면서 슘페터의 주장에 상당부분 동의한 편이었다. 물론 나는 정 반대로 사회주의를 이룩하고자 하는 입장이지만.
슘페터가 주장한 자본주의 붕괴 이론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고 본다. 슘페터는 좁게는 '부르주아' 넓게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나머지 사회 구성원이하나의 이해관계를 갖지 않고, 그들의 직무나 수입원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르고 이들이 자본주의에 회의감을 느끼는 시점이 올 것이라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강남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부르주아들 역시 이미 분리되기 시작했다. '대치동 부자는 자식이 0점을 맞으면 과외를 알아보지만, 압구정동 부자는 자식이 0점을 맞으면 가게를 내준다'라는 농담이 이를 상징한다. 대치동으로 상징되는 쁘띠부르주아는 학벌과 인맥으로 자기 계층인 전문직 또는 기업의 중간관리직을 유지하려 하지만, 압구정동으로 상징되는 중심부 부르주아는 더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계층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 쁘띠부르주아가 스스로를 부르주아에 가깝게, 또는 노동자에 가깝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계급 투쟁의 승패가 갈릴 것이다. 한국에서 기득권이나 다름없는 판검사, 고위 공무원도 노조를 세우는 스웨덴에 개량주의나마 장기집권에 성공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거꾸로 그들이 부르주아 편에 선다면? 그게 지금의 한국이지 뭐냐.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가 붕괴한 자리에 등장할 체제라면, 마땅히 자본주의 하의 좋은 제도를 마다할 필요가 없고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시장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은 거고. 하지만 슘페터의 주장처럼 사회주의=국가가 자본을 소유, 중앙 통제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사회주의는 단순히 국가가 자본을 소유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담겨있고, 그렇지 않다면 왕이 모든 것을 가지던 전제군주정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함. 자본의 소유를 넘어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가 자본을 통제할 권력을 갖는 것이 사회주의라고 보고, 그렇기에 노조의 자주성, 산업 현장에서의 노동자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의 필수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봄.
그렇기에 슘페터의 민주주의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 슘페터는 민주주의=의사결정으로 단순하게 퉁치고 넘어갔지만, 나는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의사결정을 통해 충족해야 할 사회 구성원의 이해관계와 취향을 표출할 수 있는 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의사결정은 사회의 발전에 따라 합리적인 하나의 대안을 더욱 손쉽게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안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대안의 이해관계자인 민중 개개인의 입장과 의견이 잘 반영되어야 한다. 나는 민주주의가 이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제도라고 믿고, 그렇기에 의사결정의 자동화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중요한 영역을 차지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나는 현재 자본주의의 존속과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이 우리가 배워야 할 지점을 알려준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슘페터가 '나는 자본주의의 붕괴를 막으려고 이 책을 쓴다'고 한 것이 부응하듯 그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를 보수하는데 성공했다. 학술계를 후원하고 교육의 방향을 지식인 양성에서 기업을 위한 인재 양성으로 돌리면서 지식인들이 사회 비판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았다. 경쟁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스톡 옵션'이라는 지분을 임금 대신 주어 사무직 쁘띠부르주아들이 스스로를 노동자가 아닌 '소자본가', '경쟁에서 승리하여 마땅히 누릴 것을 누리는 자'로 인식하고 노동자들을 경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독점 금융 자본이 여러 기업과 자회사들로 나누어진 산업 자본을 통제하여 자유경쟁시장과 '기업가 정신'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혁신은 계속해서 자동화, 관료화되어가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대체 왜 수많은 대학들이 경영학과 '기업가 정신'을 연구할까?)
그러나 사회주의와 우리 좌파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요건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현실사회주의권은 사회주의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체계적인 생산, 분배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실패했다. (사이버네틱스! 사이버네틱스만 있었어도!....끄어어어) 사회주의자들은 중간계급을 노동계급에 포섭하고, 그들이 사회주의를 통해 자본의 '금발찌 찬' 노예에서 해방된 인간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선전하는데 실패했다. 사회주의의 첨병이었던 지식인들은 우파 사상에 물들거나 자본이 원하는 지식만을 생산하고 있다.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는 우파와 좌파 모두에게 서로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공략집이다. 우리는 저들에게 우리의 약점을 이미 파훼당했다. 지금이라도 저들의 약점을 알고, 우리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읽어볼만한 책이다.
서평 개추 - dc App
개추다 이거야
여기서 읽은 글 중에 젤 영양가 있는 글 중에 하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