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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른슈타인이 부정한건 사회주의의 필연적 도래, 더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의 필연적 붕괴를 통한 사회주의의 도래'을 부정한 것임. 왜냐하면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 특유의 모순이 신용, 주식회사, 여러가지 형태의 카르텔을 통해서 완화되어가며 자산계급은 오히려 소규모의 형태로 분할되어간다고 본 것임. 갤주는 이에 대해서 분석론이 잘못되었다고 깠지만 베른슈타인은 자본론 3권을 인용하면서 이를 다시 깠음. 참고로 베른슈타인은 자신이 반마르크스주의적이라는 반론들에 하나하나 자본론이나 기타 마르크스or엥겔스 저작을 인용하면서 깠음. (내 기억이 맞다면 갤주는 자본론 3권을 1907년이 되야 읽었을것) 



2. 다만 주의해야하는 것은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가 영속할 것이라고 판단하지도 않은 것임. 오늘날 근대 사회는 수십년 사이에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복잡해져갔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마르크스와 같은 천재라도(그도 어디까지나 마르크스주의자였음) 그걸 분석하는건 불가능하며 사회의 모순과 그에 대한 해결은 그때그때 찾아가야한다고 본 것임. 즉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느냐 파괴하냐는 지금을 살아가는 대중들이 결정할 문제지, 누군가 훈수둘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음. (그렇기에 베른슈타인은 이상적 사회도 부정하였는데 사회의 모순이 그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상으로 삼는 사회도 달라질게 뻔하기 때문임.) 



3. 여기서 다시 갤주님과 베른슈타인의 입장차이가 보이는데 갤주가 당시 다른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자와 같이 결국 의회민주주의는 부르주아를 위한 것이라고 본 반면 베른슈타인은 장기적으로 보면 대중이 정권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음. 왜냐하면 점진적으로 무산계급의 힘은 성장하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의회에서의 영향력도 높아질것이라 본것.



4. 한편 베른슈타인은 급진적인 사회 변화 또한 부정했는데 대중의 가치관이 변화하는건 단기간안에 불가능하며 총생산량의 증가가 동반되어야 가능하다고 본 것임. 그런 의미에서 베른슈타인은 그 어느 누구보다 러시아 혁명이 빚어낼 재앙을 가장 먼저 예측해냈다고 볼 수 있음.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계급이 그들의 해방을 이룩할 정도로 성숙한 것이 아니며 그런 해방을 위한 경제적 전제조건도 아직 주어져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중략) 그럼에도 이들 두 전제조건이 거의 충족된 것으로 간주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전술을 계속해서 추구하였다. (중략) 따라서 아무리 극단적인 사회혁명가나 폭력적 무정부주의자까지도 그들을 옳지 않다고 볼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중략) 입법활동에서 무엇을 얻을지 혁명활동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원칙적인 논의도 아예 하지 않게 된다." 

즉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혁명을 하는게 아니라 혁명 그 자체의 생존을 위해 무제한적인 면책권을 받을 괴물의 탄생을 누구보다 빨리 캐치했다고 볼 수 있음. 베른슈타인이 민주주의에 매달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고 있음. 혁명의 정당성과 유지를 위해서는 대다수의 지지를 장기간 받아야 의미가 있다고 보았으며 그와 동시에 무산곅브의 경제적 성장과 정신적 성숙이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하며 그렇지 않을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클럽 연설가들과 문필가들의 독재를 의미한다."고 본 것임. 



5. 끝으로 인상적인 문장 하나. 프롤레타리아 문제에 대해서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에 대해서 결말 부분에서 "내가 바로 그 프롤레타리아다!" 베른슈타인 본인이 학교도 제대로 못다니고 은행원으로 끼역끼역 먹고살았는데(은행원이면 먹고사는데 문제는 없었겠다만은) 주변에서 화이트칼라는 고사하고 노동이라고는 1도 안한 인간들이 노동자 팔아먹는거 보면서 결국 폭팔하긴 했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