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자들은 자유로운 인민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권위가 없으면 사람들이 사교성의 틀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부정하며 야만상태로 돌아가리라 주장합니다. 그건 분명히 헛소리입니다. 게으름뱅이, 권위와 노동에 대한 숭배자, 부르주아 사회의 어리석은 사상가들만이 그 주장을 관심있게 들을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 인민의 해방은 퇴화와 야만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특권이 빼앗아간 인민의 손과 혈육을 되돌려받아 현실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략) 1918년 11월 부터 1919년 6월까지 6개월이상 그들은 어떠한 외부의 정치적 간섭 없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회적 유대관계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자유노동자단체와 노동자 자유협외희를 만들어 새롭고 더 높은 형태의 사회관계를 만들었습니다.
해방된 지역에서 치안경찰을 추방한 후, 그 땅은 농민들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많은 농민들은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땅을 적절하게 분배해야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통해 적들이(적군,백군,우크라이나 정부군) 사방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함께 뭉쳐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 곳에서 공동체적 사회생활을 조직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공권력에 대한 적대심에도 불구하고 후라이아폴 지역에서 농민 코뮌이 형성되었는데 이를 노동자 코뮌, 자유 코뮌이라 불렀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라고 하는 최초의 자유 코뮌은 Pokrovskoe 마을 근처에서 형성되었습니다. 그 회원들은 모두 궁핍했습니다. 처음에는 수십명 정도의 구성원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곧 300명을 넘어섰습니다. 이 가난한 공동체는 가장 가난한 지역 농민들이 만든 것이며 그것을 로자 룩셈부르크를 기리는 뜻에서, 자신들의 공정함을 입증하기로 했습니다.
(중략) 코뮌은 반권위주의적 원칙에 기초하고 있었으며 코뮌의 발전과 성립은 지역 농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공산당이 코뮌에 개입하려했지만 그것은 그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코뮌은 모든 권위에서 자유로우며, 노동하며, 모든 권력과도 이국적이었습니다.
(중략) 공동체는 그 수가 결코 많지 않았고 소수, 특히 토지를 얻지 못했던 사람들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난한 농민들이 스스로 그것을 주도하여 결성했다는 것입니다. 마흐노의 군대는 결코 농민들에게 압력을 가하지 않았고 무정부공산주의를 전파하는데 집중했습니다.
그것은 변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혁명전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던 농민들의 필수적 욕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것이며, 승리 후 공통의 기반 위에서 경제생활을 체계화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공산당의 인위적인 공동체와는 다릅니다. 그들은 곡식을 낭비하고 지력을 손상시켰으며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중략) 남자, 여자,아이 모두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을 했으며, 동지들은 자신의 일을 끝내고 나서 코뮌의 남아있는 일을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맡았습니다.
출처는 볼린의 알려지지 않은 혁명.
1919년 초반부 마흐노의 군대가 동남부 우크라이나를 해방시킨 후에 벌어진 코뮌, 적군과 백군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마음으로 뭉쳐서 탄압하면서 와해됨.
그리고 마흐노의 군대가 없어지자 백군은 바로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악하고 적군은 빤스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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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러시아 내전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여성 군지휘관이 아나키스트 군대에 있었다는 것만 말해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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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건 마흐노의 운동에 있었던 특이성을 감안해야함. 최초의 기록은 그의 스승이자 동료였던 아르시노프의 기록인데 본인은 운동 도중 두어번 기록을 쓰다가 망실했고 망명 직후 쓰다가 날려먹은 이후 마흐노가 폴란드에서 재판받는다고하자 그를 변호하기 위해 후다닥 써서 어떤 미국인에게 후원받아서 개인출판해서 겨우 마흐노의 무죄를 증명했을정도로 열약한 상황에서 초기 기록이 작성되었음. 게다가 마흐노를 증언해줄 사람들이 몽땅 적군하고 백군에게 죽어버렸는데다가 전후 소련은 마흐노에 대한 연구 자체를 굉장히 불온한 시각에서 바라보았으니. 그리고 1차세계대전 종전 직전~직후에는 공백상태라서 주둔군하고 치안경찰이 거의 전부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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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아나키즘 운동에 대해서 이해를 잘 못했음. (사실 마흐노 본인조차도 아나키즘보다는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에 더 가까움.) 4. 귀찮아서 중략한 부분에 사실 농민들의 생활은 로자의 사상과 무관하다고 언급했음. 5. 우크라이나는 원래 부농이 주류임.(그래서 집단농장에 대한 저항이 가장 극심했던거고) 마흐노도 부계쪽은 부농이었음. 어렸을때 죽어서 생활이 곤궁해진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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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흐노에게 있어서 그건 "네들이 알아서 하세요." 농민의 생활은 농민 스스로가 하는거고 본문에 써져있듯 흑군의 역할은 반동분자에게서 자유지구를 수호하는거지 행정을 집행하는게 아니었음. 마흐노 본인은 농민 노동자 스스로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할수 있었던걸로 믿었던걸로 보임. (마흐노는 초등학교 중퇴라는걸 고려해주자.) 7. 집단농장까는거같은데.
'돌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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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흐노 아내가 우남충 재기해라고 하면서 살해시도 하려고했으면 볼장 다본것같은데. 혁명이란 춤바람따위에 신경쓰는게 아니라 이거지.
코뮌이란 소단위 위원회로 나눠서 자율적으로 관리하는게 기본인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