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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씨인 여구 자기가 초고를 잇겠다고 근초고라고 한거지 여구가 초고계라는건 그냥 학계의 추측

백제는 초기엔 부여나 고구려에서 내려온 소노부 계통 사람들과 마한인이 연합한 마한계 소국인데 초기엔 온조 다루 기루 개루 해씨가 주도하다가 그 다음엔 초고 구수 사반 그 다음엔 요동태수 공손씨 사위인 구태(=구이)가 중국에서 배 타고 바다 건넌 100가지 가문과 함께 대방군 경영하며 그 힘으로 백제 왕계를 새로이 장악해 고이계 우씨가 장악. 고이 책계 분서 이어지다가 '우'씨이지만 고이계 직통은 아니며 오랫동안 민간에 살던 비류왕이 자기가 구수왕의 둘째 아들이라고 뻥치고 분서왕의 아들들은 모두 어리다고 하며 맘대로 왕좌에 앉음. 그 후 비류가 이복동생 우복의 반란으로 왕권 약화되고 끙끙하다가 죽고, 분서왕의 아들인 '계'가 왕이 됨. 근데 얼마 안 되어 죽고, 초고왕의 둘째 아들을 칭하는 여구가 왕이 되는거. 근데 여구는 여씨이고 비류는 우씨임. 서로 성씨가 다름.

중국 기록에 백제가 처음으로 중국과 정식으로 접촉하는건 여구 때부터(진서 간문제기). 진서 간문제기에 서기 4세기 후반에 백제 왕 여구가 동진에 사신 보내 조공해서 진동장군 령 낙랑태수 겸 백제 왕으로 책봉,제수함. 근데 그 전엔 백제는 마한에 속한 소국이라서 독자적으로 조공 온 적이 없고 그 전엔 '마한 왕'이 중국 서진의 요동군 양평현의 '동이 교위'에게 조공함. 위나라 이전엔 낙랑군이나 대방군이 마한의 조공을 받았지만 서진 때부터 그 관할이 동이교위로 옮김. 왜냐면 낙랑 대방이 위나라 싫어서 서기 3세기 중엽~후반 사이 독립해버림. 고이왕이 자기 아들 책계를 대방 왕의 딸 보과와 혼인시킨 것이 그 증거. 대방 왕의 성씨는 장씨나 왕씨로 추정됨.

여하튼, '부여'씨 혹은 '여'씨라는게 최초로 출현하는건 서기 4세기 후반으로 모용선비 요서 지역과 한반도 의 마한의 속국 백제. 자치통감 보면 부여는 처음에 만주의 녹산(사슴 산)에 도읍했는데. 백제의 침공을 받아서 연나라(모용선비) 가까이로 도읍이 끌려갔다고 나옴. (여기서 나오는 백제는 요서의 마한계 용병인듯) 그 후 서기 346년에 연나라 가까이 이사 와 있던 부여가 모용선비 전연의 황제 모용황의 팀킬로 멸망하고 부여 왕 '현'과 부여 백성 5만명이 끌려옴. 그 후 현은 모용황의 사위가 되고 그 후 전연에서 부여 왕자 '여울'이란 자가 등장함. 성씨는 부여씨이고 이름이 '울'임. 이 같은 해 서기 346년에는 같은 부여씨인 '여구'가 백제 왕이 됨.

여구 이전엔 백제 왕으로 '계'가 있는데. 계는 한자로 상나라 시조 '설'이랑 같음. 근데 '설(=계)'은 고대 중국 기록 '시경'에 상나라 시조 '현왕' 으로 나옴 이 현이 검을 '현'. 근데 부여 마지막 왕 '현' 이랑 한자가 검을 현으로 같음. 그리고 부여는 삼국지 동이전 부여 편에 따르면 지배층이 어딘가에서 나라 망해서 만주 부여 땅으로 떠돌이가 되어서 와서 만주 부여 땅의 토착민 예맥족을 '하호'로 삼고 노예 취급하며 부여의 지배자가 됨. 부여가 상나라처럼 흰 색 숭상하고 상나라 달력 쓴거나 상나라 처럼 가뭄 들면 왕 순장하고 그러는거 보면 기원이 상나라랑도 관련있을거.

(상나라 계통 고죽 영지 계통 피가 좀 섞인 요서 하가점상층 비파형동검 공병식동검 문화가 연나라에게 망하고 오래 북방에서 떠돌다가 만주 부여 땅으로 내려가서 스키타이 철기 선진 문화를 새로이 전파하며 부여 왕국이 태어난걸수도 있음. )

하여튼 여구 이전의 계왕은 실존 여부도 불투명한데 서기 346년에 죽음 그리고 여구가 백제 왕이 됨.

근데 같은 해 서기 346년, 계(=설=현왕) 이런 공식으로 설명될수있는 부여 왕 '현'이 모용황한테 잡히고 나라 망함. 안그래도 모용선비 때문에 요서 혹은 요서 인근으로 이사 와 있다가 나라 망함. 그럼 본래 부여 땅은 어떤 상태? 이미 고구려의 지배를 받고 있음. 내 말의 요지는 여구는 마한 소국 백제를 먹은 이주민 해적이고 여구 이전 계왕은 부여 왕 현을 모델로 만든 가공의 왕 느낌이 좀 나는 듯. 서기 346년 요서 부여가 멸망하자 한반도 백제에서 부여씨인 여구가 고이 책계 분서계 우씨를 몰아내고 왕이 되다. 근데 더 놀라운건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 편 보면 근초고 이전엔 백제는 나라의 일을 문자로 적은 적이 없다고 나옴.

아마도 근초고 이전 백제 왕들은 마한의 소국 백제랑은 직접적 관련이 없고 마한의 소국 백제 인근의 마한계 나라들의 유명했던 왕들을 서기 4세기 중엽 즉 서기 346년 부여씨 왕실이 나타난 후 하나로 쭈루룩 배열시켜 묶어서 마치 백제란 나라에서 여러 왕들이 대를 이어 차례 차례 집권한 것처럼 날조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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