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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도경


1123년 송나라의  사신이 고려를 방문해 그림과 같이 기록을 쓴 기행문임

원래는 그림도 함께 있었지만 그림은 여러 일들을 겪고 손실되었다 함

그래도 기록은 남았음


시간 아까워서 클로드한테 퍼오라고 했는데 얘가 문서를 못찾아서 대애충 발췌할테니 궁금하면 알아서 찾아보도록~





제23권 잡속2(雜俗二) — 한탁(澣濯, 목욕·세탁)

제23권 잡속2 한탁(澣濯)에는 옛 사서에 고려인은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지금도 그러하다며, 고려인들이 중국인들의 더러운 위생 상태를 비웃는다고 적어놨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하고 문을 나서며, 여름에는 날마다 두 번씩 목욕을 하는데 시냇물 가운데서 많이 하고, 남녀가 혼욕을 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한민족은 천년전에도 더우면 하루에 몇번씩 샤워 했음



그 외에 인상적인거 추가로 적자면



제19권 민서(民庶) — 서문 및 유학(儒學)

제19권 '민서'(民庶)의 서문에서 '사민(四民)의 업 중에서 선비[儒]를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그 나라에서는 글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한다.'하였고, 제40권 '동문'(同文)의 유학(儒學)에서는 국자감 같은 국립 교육기관 이외에도 민간의 교육열의 대단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간 마을에 경관(經館)과 서사(書舍)가 두셋씩 늘어서 있어, 그 백성들의 자제로 결혼하지 않은 자들은 무리 지어 살면서 스승으로부터 경서를 배운다. 좀 장성하여서는 벗을 택해 각각 그 부류에 따라 절간에서 강습하고, 아래로 졸병과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도 향선생(鄕先生)한테서 글을 배우니, 아아, 훌륭하기도 하다."



천년 전에도 모든 사람들이 교육열이 높았고 배움을 중시했음




제40권 동문(同文) — 악률(樂律, 노래 풍습)

일부 고려인들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는지, 배마다 10여 인이 밤에는 갑판을 울리고 삿대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서로 화답하는데, 자기가 듣기엔 시끄럽기만 할 뿐 소리의 곡조나 감정이 없다고 깠다.



천년 전에도 음주가무를 좋아했음



흥미롭지 천년전인데도 현대 한국인과 비슷한 구석이 있음

민족적 성향이라는게 분명히 존재한다 싶더라고

유전자가 전해내리는 기억이나 성향이 분명 있는거 같다


그 외  이것 저것 던져놓고 마무리 함



제8권 인물(人物) — 서문

제8권 인물 편에는 북송을 중심으로 동남쪽 이적(夷狄)들 중에는 고려의 인재가 가장 왕성하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척준경 등 만났던 벼슬아치들의 이름과 이자겸, 윤언식, 김부식, 김인규, 이지미 등은 따로 소개를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서긍은 인물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동남(東南)의 이적(夷狄) 가운데 고려가 인물이 가장 성하다."

이어 김부식에 대해서는:

"당시 고려의 제일가는 문장이다."



제19권 민서(民庶) — 색욕과 혼인 풍속

<민서>편에서 땅 대비 인구가 매우 많은데, 선비를 귀히 여기므로 고려인들은 글을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기록하면서도, 동시에 고려인들은 색과 재물을 좋아해, 남녀의 혼인도 경솔히 합치고 헤어지기를 쉽게 한다고 기록했다.





제20권 부인(婦人) — 귀부(貴婦)

귀부(貴婦)조를 보면, "부인의 화장은 향이 나는 기름을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분을 바르되 연지는 칠하지 아니하고, 눈썹은 넓고, 검은 비단으로 된 너울을 쓰는데, 너울은 세 폭으로 만들었다. 폭의 길이는 8척이고 정수리에서부터 내려뜨려 다만 얼굴과 눈만 내놓고 끝이 땅에 끌리게 한다," 고 하여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제23권 잡속2 — 어(漁, 해산물 식문화)

어(漁)에는 미꾸라지(鰌), 전복(鰒), 조개(蚌), 진주조개(珠母), 왕새우(蝦王), 문합(文蛤), 붉은게(紫蟹), 굴(蠣房), 거북이다리(龜脚), 해조(海藻), 다시마(昆布)는 귀천없이 잘 먹는 해산물로 소개하였다.




제3권 성읍(城邑) — 방시(坊市)·무역(貿易)

민간 무역 풍속과 관련하여:

"고려인들은 전포(錢布)로 물화를 사고팔되, 오직 약을 살 때에만 전보(錢寶)를 썼다. 송 조정에서 화폐를 내려 준 적도 있었으나, 백성들은 옛 풍속이 편하다 하여 화폐를 창고에 넣어 두었다."




제9권 관련 — 고려인에 대한 전반적 평가

서긍이 남긴 가장 유명한 총평 구절:

"고려인은 예의를 알아서 중국과 다름이 없다. 다만 그 풍속이 서로 달라, 혹은 취할 것도 있고 혹은 취하지 못할 것도 있다."




현대 한국인과 연결되는 특히 흥미로운 지점들:

  • 교육열: 글 모르는 것을 수치로 여기고, 마을마다 서당이 즐비했던 것 —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교육열의 원형
  • 청결 집착: 아침마다 목욕, 여름엔 하루 두 번, 중국인의 위생을 비웃었다는 것 — 현대 한국의 목욕·청결 문화와 직결
  • 해산물 식문화: 귀천 없이 다시마·전복·굴·대게 등을 즐겼다는 것 —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해산물 중심 식문화
  • 인재 자부심: 동남이적 중 인재가 가장 왕성하다는 서긍의 평가 — 외부인 시선으로도 확인되는 지적 역량에 대한 자부심의 역사적 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