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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는 늘 자신의 인생이 miserable하다고 자조해왔습니다. 그의 소원조차도 “수치스러운 과거를 지워달라”는 것이었고, 미라, 조이와 갈라선 이후 찾아온 루미에게도 “우린 그냥 평생 수치심을 안고 살아야 해. 이게 우리 숙명이야”라며 체념을 드러냅니다.

그런 그가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멈추지 않는 루미의 존재였습니다. 진우는 루미 역시 자신처럼 ‘존재 자체가 수치’인 인물로 동일시했습니다. 하지만 루미는 데몬화가 진행된 상태임에도 그 수치를 이겨내고자 했습니다. 이는 진우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400년간 닳고 닳은 족쇄를 찬 데몬의 입장에서, 이제 막 데몬으로서 깨어난 신입이 저항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도와주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마음,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또한 진우는 귀마가 약속을 강조하면서도 '진짜로 기억을 없애주고 자유롭게 해준다고 믿는 건 아니지?' 라는 뉘양스에 내심 당혹감을 느낍니다. (루미의 계획에 대한 반문과는 별개입니다.) 대화 중 귀마는 두번이나 진우의 과거를 언급합니다. 대화의 마지막 장면 조차도 진우가 그토록 지우고 싶어하는 기억으로 끝맺음하죠. 이는 귀마가 진우를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기억을 이용하는 것이며, 따라서 약속을 전혀 지킬 이유가 없음을 암시합니다. 자신이 바랐던 ‘기억을 지우고 더 이상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삶'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나마의 희망조차 기만이었다는 사실은, 그를 다시 무너뜨립니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노예가 되었다는 깨달음은, 다시 찾아온 루미와 마주친 순간 그에게 선택지를 하나 남깁니다.

"어차피 끝났다면, 가는 길에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팬사인회에서 한 아이가 건넨 그림, “당신은 아름다운 영혼을 지녔습니다”라는 말은 단순한 장면이 아닙니다. 수치스럽고 천한 존재로 살아온 진우에게조차, 누군가의 눈에 아름다운 존재로 비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그 한 줄의 인정이, 루미를 돕는 마지막 행동과 맞물려 진우에게 진정한 구원의 감정을 안겨줍니다. 진우는 루미를 돕는 행위를 통해, 자신조차 믿지 못했던 ‘아름다운 영혼’의 존재로 생을 마감합니다.

결국 진우는 두 가지 차원에서 해방됩니다.
첫째는 물리적 해방입니다. 더 이상 귀마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됩니다.
둘째는 정신적 해방입니다. 400년을 “존재 자체가 수치”인 채로 살았지만, 마지막에 스스로의 선택으로 숭고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에게조차 부정당하던 아름다움을 회복합니다.

그에게 진정한 자유란, 구걸하듯 연명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우는 루미에게 "이미 네가 자유롭게 해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합적 감정선과 서사가 분명히 녹아 있긴 하지만, 작품 내에서 이러한 맥락이 조금만 더 보완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파민에 민감한 관객들, 혹은 관계성의 개연성만으로 캐릭터의 선택을 평가하려는 이들에게도 진우의 여정을 더 깊이 설득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언제 봤다고 반해서 목숨까지 바치냐”는 식의 반응은, 진우라는 캐릭터의 고통과 삶의 맥락을 무시한 채 피상적인 관계만을 본 결과입니다. 그저 관계가 아니라, ‘같은 수치의 굴레 속에 있던 존재’로서 서로를 비추며 맺은 유대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