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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2월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을 위해 싸우는 카자크 부대는 프로스쿤고프에서 포그롬을 자행해 2,000명의 유대인을 살해함. 적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카자크 지휘관 세모센코는 부하 장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과 카자크인의 최악의 적은 유대인이었음.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유대인은 말살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이튿날 세모센코 부하들은 현지의 유대인들을 학살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증언이 나옴.

" 그들은 사브르(기병대 군도)뿐 아니라 총검도 썼다. 화기는 희생자들이 달아나려고 하는 소수의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 크로착의 집에는 여덟 명의 남자들이 들이닥쳐 유리창을 모조리 부수기 시작했다. 다섯 명은 집 안으로 들어가고 세 명은 밖에 남아 있었다. 집 안에 들어간 자들은 크로착 노인의 수염을 붙잡고 부엌 창가로 질질 끌고 가서 창밖으로 내던졌고, 밖에 있던 세 명이 노인을 죽였다. 이어서 그들은 노파와 두 딸도 죽였다. 그 집에 찾아와 있던 어린 소녀는 긴 머리채가 붙잡혀 다른 방으로 끌려간 다음 창밖의 거리로 내던져져 거기서 죽음을 당했다. 그 다음에 카자크인은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가 열세 살 먹은 소년한테 여러 군데 상처를 입혔고 그 애는 결국 귀가 멀게 되었다. 그 애의 형은 먼저 어머니의 시신 위에 쓰러트려진 다음 배와 옆구리 아홉 군데를 찔렀다. "

학살은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정부의 현지 대표가 개입한 다음에 중지되었지만 며칠 뒤 인근 마을 펠슈틴에서 재개되어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00명이 살해되었음.

한 식당 주인 요셉 압트만의 증언은 다음과 같음. "거의 모든 여자들이 강간당한 다음 죽었다. 사브르에 난자당해서, 길에는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 모니치 브렌만의 집에는 갈리치아 출신 유대인과 그의 아내가 있었다. 그들은 집 밖으로 끌려 나왔고 여자는 발가벗겨져서 알몸으로 억지로 춤을 춰야 했다. 네 명의 악한이 남편이 억지로 지켜보게 하는 가운데 그녀를 강간했다. 그다음 두 사람은 난자당했다. "

적백내전 분야는 내가 크게 관심 있는 주제는 아니라 뭐라 말하기가 그런데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포그롬은 공식적으로는 지도자 페틀류라는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는 지시는 했지만 군대에 대한 통제력이 개판이라 어차피 밑에서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았다는 얘기도 있음. 전체적으로 백군이 포그롬의 약 20%, 적군이 10%, 비정규군이 25%, 그리고 페틀류라 부대가 무려 40%의 포그로을 저질렀다고 하며 결국 한참 후에 책임자를 처벌하며 시정하려 했지만 실패.

출처는 로버트 거워스가 쓴 <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를 참고하고 세르히 플로히의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를 교차 검증용으로 활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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