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의 불행
이제 한국의 젊은이들은 연애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 물론 하는 사람들은 잘만 하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만의 공간에 스스로를 가둔다.
물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데엔 경제적 현실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상식이니까, 여기에서는 문화적인 차원에서만 말해보려고 한다.
인간은 2만년, 20만년 전과 같은 뇌를 갖고 태어난다. 물론 몸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이빨이 쓸만한 건 치과가 있기 때문이지 이빨의 수명이 30년 이상이라서가 아니다. 영장류는 원래 그렇게 오래 사는 동물이 아니다. 그러니까 환경만 바뀌었지 우리는 그대로라는 뜻이다.
던바의 수는 원시 부족 혹은 부족연합체의 숫자다. 실제로 주변 어느 집단보다 문명의 수혜를 받지 못한 고려~조선시대의 동여진(생여진) 부락들이 딱 이정도 숫자로 형성되어 있었다(그래서 조선군이 각개격파하기 편리했다). 인간은 이 정도를 '내가 속한 사회 전체'로 인식하는 뇌를 갖고 태어난다.
인류는 대부분의 생존기간 동안 지금과 같은 전형적인 미인상이라거나, 누가 봐도 객관적인 미남상 따위가 없는 삶을 살았다. 있었다 하더라도 그 기준은 지금과 달리 무척 주관적이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약탈혼을 하지 않는 한 150명 안에서 나의 짝을 찾아야 한다. 그 중에 함께 자란 내 또래 이성은 불과 몇 명이 전부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 짝을 이루고 아이를 나으면 그만이다. 얼마나 만족했는지 모르지만 심리적으로 불행할 요소는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부족에 시집 장가를 간다 하더라도, 그동네 역시 인구가 150명이다. 지금처럼 수많은 잘난 사람들과 나와 나의 짝을 비교할 필요도, 그럴 방법도 없다.
실제로 TV에 나오는 시골의 노부부를 보면 배우자는 평범한데 젊은 시절 연애인급의 외모였던 노인분들이 계시다. 그러나 그들은 배우자에게 우월감이나 억울함을 느끼지도 않고, 상대 배우자도 열등감 따위 느끼지 않은 채 그냥 잘 사신다. 과거 시골 전통 커뮤니티의 미남미녀들은 자신의 외모를 딱히 아까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레거시 미디어와 SNS가 수없이 예쁘고 잘생기고 섹시한 사람들을 보여준다. 지금은 나와 나의 짝을 비교할 대상이 수천만명이다. 미(美)의 기준이 생기고 외모의 등급이 표준화된다. 현대는 자신보다 잘난 사람의 머릿수에 압도된 채 살아가는 시대다.
그러므로, 자신의 등급을 필요 이상으로 잘 아는 지금의 젊은이들은 연애를 해도 '더 뛰어난 상대와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이 사람과 만난다'는 '사실'을 잠재적으로나마 의식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즉 사실은 카리나와 사귀고 싶지만 재력, 인기, 외모가 카리나만 못한 여친과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여친이 '카리나가 예뻐 내가 예뻐?'라고 물으면 우리 자기가 더 예쁘다는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가진 것 없는 소시민 남성이 누가 봐도 깜짝 놀라는 미인과 결혼해 단칸방에서 시작한다거나, 원빈처럼 생긴 남자가 평범한 외모의 전업주부와 알콩달콩 잘 사는 경우는 내 기억에 수도권 기준 90년대까지였던 것 같다. 지금은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어떤 연애를 해도 수많은 윗등급 경쟁자들에게 패배중인 셈이 된다. 내 짝은 어느 정도 등급인데, 나와 만나는 이유는 나도 고작 그 정도일 것이겠으므로.
외모를 예로 들었지만, 물론 외모만이 아니다. 직업, 재력 등이 개입되어 인간이 등급화되고 심지어 '성격'마저 좋음-보통-나쁨 하는 식으로 계열화된다. 이제 연애와 결혼을 하려면, 결정사 매니저들이 유튜브에 나와 하는 말처럼 '자기 주제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주제파악은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미디어의 발달에 의해, 결국 젊은이들에게는 연애를 해도 안 해도 필연적인 불행이 잠복되어 있다. 해도 패배자, 안 해도 패배자라면 경쟁심 많은 한국인의 특성상 비교적 충격이 덜한 패배를 감수하기 위해 연애를 기피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이유로 미디어의 발달을 저지하거나 반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패배를 피하는 그럴듯한 방법이 있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다. 비정한 말이겠으나 나는 자만추라는 유행어가 자신이 맞닥뜨릴 공포-패배의 가능성과 자신이 속물이라고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를 피하기 위해 자가투여하는 마취제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사랑이 사라지고 거래만 남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현대인도 인간인 이상 사랑은 있다. 예컨대 어떻게 만났든 오랜 시간 함께한 후에 느끼는 신뢰와 우정은 진짜 사랑이다. 다만 사랑에 이르는 길에 비교의 불행이라는 장벽이 세워진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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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