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amu.wiki/w/%EC%9E%90%EC%9C%A0%EC%8B%9C%20%EC%B0%B8%EB%B3%80
무사히 전력을 보존해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는 거...
문제는
그렇게 잘 보존된 병력이 두 파벌간의 헤게머니 싸움으로 무너진 건 참으로 어색한 일이다.
나무 위키에 정리된 거 내용이나 잘 읽어봐라.
이만에서 자유시로 이동할때 홍범도, 이청천, 김승빈 등 500여 독립군은 앞서 최진동, 안무 부대가 그랬듯이 절차대로 이동 후(1921. 3월 중순) 무기를 되돌려 받았다. 그러나 북로군정서계 서일, 김좌진, 이범석, 나중소 부대는 무장해제에 반대하여 만주로 되돌아갔다.
참고로 무장해제를 거부한 독립군부대는 다시 만주로 귀환했다. 당연히 이 친구들이 자유시 참변에 휘말리지 않았지.
소련으로 들어간 친구들은 두 파벌의 헤게머니 싸움에 휘말렸으니 이게 바로 자유시 참변이란다.
상해파 vs 이르쿠츠크파인데... 이 친구들 다 좌익이여.
탈출? 도망 말하는 거냐?
병법의 줄행랑도 전쟁의 승산을 위해 병력을 보존할 때 쓰이는 것이지 그 버러지 병력 다 보존해도 만주 일대 영향력을 전혀 행사할 수 없고 일본제국 상대로 흠집도 낼 수 없는데 그걸 탈출? 도망이 맞다.
과연 뉴라이트다운 말이로닷.
반박 못하면 입을 닥치고 있어라
청산리 대첩(일본군에 개처발리고 빤스런함) 봉오동 전투(일본군에 개처발리고 빤스런함) ㅋㅋ - dc App
그당시의 좌익과 북괴의 빨갱이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억압&횡포에 다름 없었던 농본왕조체제하에서의 사유재산제를 겪어냈던 이들에게 사상적 받침이 될만한건 공산주의였다. 자본주의는 뭣도 없는 상태였고 혼란중이던 중국에선 더더욱 내세울만한게 안되었다. 남의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것도 웃긴 일이고~ 그래도 임정은 공화국제를 따랐으니 해방후 민주공화정을 추구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을것이다.